투자비 세액공제 15%→25%…'대만 반도체법' 통과되면서 올해 R&D 투자 20% ↑ 화답
우리 정부도 K-칩스법 강화, 공제율 최대 25% 지원 계획
여야 기업 지원에 합심해야
반도체 업계에 '중국(시안)에서 2년, 대만(가오슝)·미국(텍사스)에서 3년, 경기도(용인·평택)에서 7~8년'이라는 말이 있다. 통상 반도체 공장 부지를 선정해 실제 가동에 들어가기까지 걸리는 기간이다.
속도는 경쟁력으로 나타났다. 대만 정부는 반도체를 대만 수출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핵심 산업으로 키워냈다. 그 중심에 세계 1위 파운드리(foundry·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 TSMC가 있다. TSMC가 '글로벌 공룡'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대만 정부의 전폭적 지지가 있다는 평가다.
세제 지원에서도 격차가 벌어진다. 대만은 올해부터 반도체 연구개발(R&D) 투자비의 25%를 세액공제해 주기로 했다. 반면 한국 대기업의 반도체 시설 투자 세액공제율은 8%에 그친다. 한국 정부는 세액공제 최대 25% 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전망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TSMC 신사업 거드는 대만 정부
대만 입법원(국회)은 지난달 7일 이른바 '대만 반도체법'을 통과시켰다.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기업의 R&D 비용 25%를 세액공제해주는 게 골자다. 기존 공제 비율 15%에서 10%포인트(p) 늘린 것으로, 대만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R&D 혜택으로 꼽힌다.
대만 반도체법이 통과되자 TSMC는 올해 R&D 투자를 20% 늘리는 등 국가 지원에 화답하고 나섰다. 반도체 시황이 좋지 않아 시설 투자액을 지난해 363억달러에서 올해 320억~360억달러 수준으로 하향 조정했지만 R&D 투자는 도리어 늘리기로 한 것이다.
웬델 황 TSMC CFO(최고재무책임자)는 작년 4분기 실적을 발표한 자리에서 "기술 개발에 집중하기 위해 R&D 투자를 올해 약 20% 늘릴 것"이라고 했다. 그는 "기술 리더십을 이어가기 위한 것 외에도 세금이 주요 이유"라며 "만약 정부의 세금 인센티브가 원래대로 종료됐다면 세율이 18~19% 수준이었을 텐데, 정부의 수정안 덕분에 세율이 15% 수준으로 떨어지게 됐다"고 부연했다.
대만은 자국 최대 기업인 TSMC 신공장 건설에 관해서라면 중앙 정부부터 지방 정부, 공기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 왔다.
앞서 국영기업인 대만전력은 지난해 8월 TSMC의 2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m) 공장 운영에 차질이 없도록 고압발전소를 추가로 지어 전력 공급에 나서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3나노 반도체 양산에 삼성전자보다 6개월 뒤진 TSMC는 2나노부터 다시 치고 나가겠다는 입장인데, 정부가 이를 물심양면으로 밀어주고 있는 것.
또 대만 정부는 반도체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국가 중점분야 산학협력·인재양성 혁신조례'를 제정하고 주요 대학과 공동으로 '반도체 대학원' 5곳을 신설, 매년 반도체 석·박사급 인재 550명을 배출하고 있다. 한국에서 배출하는 반도체 석·박사 인력은 연간 220여명으로 파악된다.

◆파운드리 시장 2강→4강 구도 재편
TSMC는 점차 미국과 일본 등 해외로 영향력을 넓히는 추세다. TSMC는 소니와 손잡고 지난해부터 일본 구마모토에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다. 이곳에서 구형 공정인 12~28나노미터 공정의 반도체 제품을 생산하게 된다.
대만은 앞서 2021년 미국, 일본과 반도체 협력을 선언했고, 미·일도 상호 반도체 기술 동맹을 맺었다. 미국과 일본이 파운드리 산업 부흥에 나서면서 파운드리 시장은 5년 안에 대만과 한국 양강 구도에서 대만‧한국‧미국‧일본 4강 구도로 재편될 거란 관측이 나온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미래전략산업 브리프'에서 "미국은 반도체 기업에 500억달러(약 62조원) 이상 보조금 혜택이 포함된 반도체법을 시행하고 일본도 핵심 소재와 제조 장비 분야에선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며 "미국 역량이 올라오는 2025년 대만-한국-미국, 2027년에는 일본을 포함해 파운드리 4강 구도가 될 것"이라고 했다.
파운드리 시장 2위 삼성전자도 작년 5월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메모리 산업에서 경쟁 업체의 도전이 거세져 '세계 최초는 삼성'이라는 상식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며 "거대 내수 시장과 국가적 지원을 받는 중국 메모리 업체의 성장도 위협적"이라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기술 측면에서 TSMC와 대등한 수준에 올랐지만 수율(생산품 중 정상품 비율)‧고객 신뢰도 등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만큼 고객사 주문을 감당할 '생산 능력'과 반도체 설계를 지원하는 '설계 자산(IP)' 등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삼성전자는 '2030년 파운드리 1위'를 목표로 내걸고 TSMC 뒤를 쫓는다. 신속‧탄력적인 수요 대응을 위한 '쉘 퍼스트(Shell First)' 전략을 앞세우고 있다. 주문을 받고 이를 위한 제조 시설을 짓는 기존과 반대로 주문이 들어오기 전에 미리 생산 라인을 짓는 방식이다.
서병훈 IR(기업 홍보)담당 부사장은 작년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쉘 퍼스트 전략 아래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 경기도 평택 공장의 생산 능력 확대를 중심으로 투자해 첨단 공정 수요에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한국 반도체 기업 지원 확대 관심
'반도체 강국'으로 떠오른 대만에 밀리지 않으려면 우리나라도 여야를 떠나 반도체 기업 지원에 합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에서 반도체 산업 시설에 투자하는 대기업은 올해부터 투자액의 8%를 세금에서 감면받는다.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반도체특별법, 이른바 'K-칩스법'에 따라서다.
여기에 더해 한국 정부는 지난달 반도체·배터리·백신·디스플레이 등 국가전략기술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15%까지 높이는 세제 지원안을 발표했다. 투자 증가분에 대한 추가 10% 공제 혜택을 고려하면 세액공제율은 최대 25%까지 올라간다. 중소기업 세액공제율은 25%, 최대 35%다.
정부는 이 내용을 반영한 입법 절차를 최대한 빨리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반도체 설비 투자 세액공제 확대를 골자로 한 '조세특례제한법'은 오는 14일 열리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될 것으로 점쳐진다.
의석 다수를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 부정적 반응을 보여 법안 처리까지는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당초 여당인 국민의힘은 대기업의 반도체 세액공제 비율을 20%까지 확대하고자 했다.
국민의힘 반도체특별위원회 위원장인 무소속 양향자 의원은 자신의 SNS에 "대한민국 최고 전문가들은 (반도체 세액공제율에 대해) 글로벌 스탠더드 25%를 말한다"며 "국회 첨단전략산업특위를 조속히 구성해 15%를 기준점으로 공제율 상향을 논의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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