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토일드라마 ‘일타 스캔들’, 6회 만에 10% 대박 낸 비결
'일타 스캔들'은 오랜만에 보는 정통 로맨틱 코미디다. 그런데 한물 간 줄 알았던 이 정통 멜로에 대한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6회 만에 10% 시청률을 넘어섰다. 도대체 이 드라마의 무엇이 이런 힘을 발휘한 걸까.
◆일타강사와 반찬가게 사장의 로맨스
일타 수학강사와 반찬가게 사장이 만나 벌어지는 로맨스. tvN 토일드라마 '일타 스캔들'의 이야기 구도는 익숙하다. 무려 1조원의 경제를 움직이는 일타 수학강사 최치열(정경호)이 마치 아이돌처럼 춤을 추며 광고를 찍는 장면과, 반찬가게에서 강남 엄마들을 대신해 반찬을 만들어 팔며 딸 남해이(노윤서)와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동생 남재우(오의식)를 부양하는 남행선(전도연)이 병치되어 등장하는 장면만으로도 시청자들은 앞으로 벌어질 이 두 사람의 로맨스를 기대하게 된다. 로맨틱 코미디는 결코 쉽게 이뤄질 것 같지 않은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더 강력한 판타지를 만들기 마련이다. 실제로 최치열과 남행선이 만나 로맨스를 이룰 교집합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남행선의 딸(사실은 조카지만) 남해이가 최치열의 강의를 듣고 싶어 한다는 사실과 섭식 장애를 갖고 있는 최치열이 우연히 접한 남행선의 음식만을 먹을 수 있게 된다는 사실에서 그 먼 거리에 있던 두 사람의 교집합이 만들어진다. 결국 최치열은 남해이의 과외를 해주는 조건으로 남행선에게 하루 세끼 음식을 요구하면서 이 두 사람의 기막힌 관계가 만들어진다.
앞서도 말했듯 이 구도는 전형적이다. 즉 수학강사 자리에 잘 나가는 셰프를 앉히거나(파스타), 스타를 세우거나(최고의 사랑), 하다못해 백화점 대표를 앉히고(시크릿 가든), 그들과 어떤 위계를 갖는 인물들을 상대로 세워 놓으면 바로 그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구도가 세워지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해서 로맨틱 코미디에서 남자 주인공의 직업은 당대의 대중들이 갖고 있는 로망의 변화를 담을 뿐이다. 즉 한 때는 백화점 대표나 연예인 혹은 요리 잘하는 셰프가 로망이었지만, 최근 들어 이 대열에 '일타 강사'가 들어간 현 세태가 이 드라마에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서초동을 중심으로 한 사교육 일번지 학원가에는 아이돌 스타처럼 학생과 학부모들이 줄을 서는 일타 강사들이 존재하고, 최근 들어 인터넷 강의가 일반화되면서 화면 속으로 들어온 이들은 진짜 연예인 같은 매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잘 나가는 일타 강사들은 몇 백 억대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신흥 부호로서의 로망을 건드리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강남 사교육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들은 'SKY캐슬'이나 '그린마더스클럽'처럼 그 교육 현실을 꼬집는 사회극의 성격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일타 스캔들' 역시 이러한 입시교육을 둘러싼 강남 엄마들의 치맛바람과 그로 인해 생겨나는 부조리들이 빠지지 않는다. 시험지 유출 문제나 거의 학대수준으로 아이들을 몰아세우는 엄마들, 학원가를 쥐락펴락하는 맘카페 엄마들의 과잉된 간섭과 개입 등등이 드라마 곳곳에 깔려 있다. 하지만 그러한 현실적인 문제들에 깊이 빠져들기보다는 남행선과 최치열 사이에 벌어지는 달달하고 빵빵 터지며 때론 가슴 아픈 로맨틱 코미디에 더 집중한다.
◆가격과 가치, 무엇이 행복 줄까
그간 어떤 틀에 박힌 멜로는 그 자체로는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들이 적지 않았다. 그만큼 너무 많은 멜로들이 등장하면서, 시청자들이 그 코드들을 꿰기 시작했고 따라서 평이한 구도는 식상하게 느껴지게 됐다는 것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일타 스캔들'이 6회 만에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화제성도 뜨거운 건 이례적인 일로 보인다. 하지만 그건 '일타 스캔들'이 갖고 있는 외면적인 구도만으로 이 작품을 그저 평이한 로맨틱 코미디로만 보는데서 갖게 되는 오해일 뿐이다. 이 작품은 잘 들여다보면 그 멜로 관계 속에 숨겨져 있는 사회적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그건 한 마디로 정리하면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것이다. 최치열은 '1조원의 남자'로 불릴 정도로 초단위로 가격이 매겨지는 스타강사다. 그래서 그 '가격' 때문에 이 인물의 삶이 갖는 가치도 그만큼 클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최치열은 그 치열한 삶 속에서 어마어마하게 넓은 집에 좋은 차를 끌고 다니며 일거수일투족을 챙겨주는 개인 비서까지 있지만 정작 그 삶은 행복하다 말하기 어렵다.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로 인해 약을 달고 다니고 넓은 침대 대신 침대 아래 놓인 침낭에서 수면제를 먹어야 잠이 들며, 섭식장애로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 시간이 돈이지만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 사랑할 시간조차 없다. '1조원의 남자'라는 엄청난 가격으로 매겨지는 인물이지만, 그 삶은 1만 원짜리 도시락 하나의 행복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처지다.
반면 핸드볼 선수였지만 엄마의 갑작스런 사고사와 덥석 그에게 맡겨진 언니의 딸 때문에 선수의 꿈을 포기하고 반찬가게를 열어 살고 있는 남행선의 삶은 정반대다. 그는 매달 내야할 월세를 걱정해야 하고, 딸 삼은 남해이의 학원비를 위해 아끼며 살며, 또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남동생을 부양하며 살아야 하는 현실이지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렇게 살아가는 인물이다. 과거 함께 선수로 뛰었던 절친 김영주(이봉련)와 함께 반찬가게를 운영하며 더할 나위 없는 우정을 이어가고, 딸 삼은 남해이와 진짜 모녀 같은 끈끈한 관계를 만들어간다.
그래서 드라마는 '가격과 가치'라는 두 관점을 통해 남행선과 최치열의 위계구도를 뒤집어 놓는다. 가격의 관점으로는 이 관계에서 최치열이 주도권을 잡지만, 가치의 관점으로 보면 남행선이 오히려 최치열을 압도한다. 익숙한 로맨틱 코미디라는 틀을 갖고 있지만, 이 드라마가 뻔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이러한 틀 자체를 전복시키는 관점의 변화를 담고 있어서다.
◆준비된 연기자들이 극대화한 멜로
'일타 스캔들'은 가벼움과 무거움, 웃음과 슬픔 같은 이질적인 요소들을 시시각각 태세전환하며 시청자들을 잡아 끈다. 남행선과 최치열이 그 관계를 진전시켜 나가는 과정은 빵빵 터지는 로맨틱 코미디로 흘러가지만, 그 이면에는 두 사람 모두 숨겨져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 같은 들이 존재한다. 밝게만 보이지만 딸 삼은 조카와 장애를 가진 동생을 위해 자기 삶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남행선의 삶은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화려해 보이지만 학생의 자살로 인한 트라우마와 슬픔을 여전히 버텨내고 있는 최치열 역시 짠한 면모를 숨기고 있다. 그래서 밖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는 짐짓 명랑 쾌활하거나 허세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어느 순간 자신으로 돌아올 때의 쓸쓸함 같은 것들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연기가 요구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일타 스캔들'이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감정들을 가능하게 하는 건 이를 연기하는 정경호, 전도연 같은 준비된 연기자들 덕분이다. 정경호는 등장부터 실제 일타 강사 같은 목소리와 제스처, 농담 같은 것들을 충분히 구현해낼 정도로 준비된 연기를 보여줬고, 전도연은 웃기다가 울리기도 하며 시청자들의 감정을 쥐락펴락하는 연기의 공력을 보여줬다. 이밖에도 여러 조연들의 연기까지 빈틈없이 채워진 '일타 스캔들'은 그래서 정통 로맨틱 코미디의 묘미를 극대화해 보여주면서도, 어딘가 하려는 메시지가 분명한 '진심'까지 느끼게 해주는 웰메이드 작품이 되었다. 똑같은 로맨틱 코미디를 해도 어떻게 만들어내고 어떤 새로운 관점을 담느냐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댓글 많은 뉴스
이낙연 "민주당, 아무리 봐도 비정상…당대표 바꿔도 여러번 바꿨을 것"
'국민 2만명 모금 제작' 박정희 동상…경북도청 천년숲광장서 제막
위증 인정되나 위증교사는 인정 안 된다?…법조계 "2심 판단 받아봐야"
尹, 상승세 탄 국정지지율 50% 근접… 다시 결집하는 대구경북 민심
"이재명 외 대통령 후보 할 인물 없어…무죄 확신" 野 박수현 소신 발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