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빛·파도 '억겁 시간'이 빚어낸 선물
바다를 접해 보지 못한 채 내륙지방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 바다는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입구이자 궁금하면서도 낯설고 두려운 세상이기도 했다. 바다는 고대인(古代人)들에게도 쉽게 접하기 어려운 다른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로 여겨졌을 것이다.
신라에 바다가 있다는 것을 알아도 경주에 바다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모른다. 경주 바다는 포항의 구룡포 끝자락에서부터 울산 북구에 이르기까지 30여km에 이르는 해파랑길이다. 그 바다는 동해안 해안선을 잇는 '해파랑길'이면서 동시에 철썩거리는 파도소리 들리는 '파도소리길'이다.
그 바닷길은 동해용왕이 된 문무대왕의 문무대왕릉을 품고 있고 우리나라 2번째 원자력발전소인 월성원전을 끼고 있는데다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주상절리'의 절경도 펼쳐진다. 수천 년 동안 어부들의 삶을 이어온 감포항을 비롯, 하서항, 읍천항 등 크고 작은 어항들이 줄지은 바다이기도 하다. 경주바다가 동해의 다른 바다와 다르게 느껴진 것은 그 때문이었다.
게다가 고대신라에 속하는 '탈해이사금'이 건너온 바다가 바로 이곳이다.
◆주상절리의 바다
바람은 매서웠다. 평소 경주는 다른 지방보다 따뜻했지만 시베리아 북풍이 덮친 탓에 겨울바람이 유난히 매섭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파도소리길'은 평소와 달리 인적이 뚝 끊겼다. 그래서 호젓하게 걷기에 더 좋았다. '파도소리길'은 읍천항에서 시작됐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걷기에 좋은 길이었다. 걷다보니 전망대가 나왔다. '주상절리'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였다.
제주도 서귀포 앞바다에서 본 주상절리가 이곳에선 바다에 누워있거나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형국이었다.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는 특별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제주도의 그것보다 더 다양한 아름다운 '주상절리군'이 그동안 왜 우리는 알지 못했는지 궁금했다.
무료로 개방되는 전망대에 오르니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발아래 펼쳐지는 주상절리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자연이 준 선물이었다. 압권은 파도가 철썩거리며 부딪치는 포말이 이는 '부채꼴 주상절리'다.
경주 양남 주상절리군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북한의 해안침투를 방어하겠다며 해안선에 세워진 군 초소를 2009년 대거철수하면서 해안출입을 가로막고 있던 철조망이 걷히면서다. 그 이전까지는 주민들은 물론, 문화재당국도 주상절리라는 최고의 보물의 진가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은 미스터리다.
2012년 9월 정부는 양남면 읍천항에서 하서항 사이 1.7km구간 해안에 형성된 주상절리군을 천연기념물 제536호로 지정했다.
'바람과 빛과 파도가 엉킨 억겁(億劫)의 시간'이 만들어낸 자연의 조화가 주상절리다. 제주바다에서 봤던 신전의 기둥과도 같은 주상절리가 여기서는 바다에 누워있거나 수직으로 서있거나 '부채꼴'모양의 아름다운 꽃모양으로 누워있는 등 다양한 주상절리를 만날 수 있다.
전망대에서 주상절리를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검은 칠흑같이 단단한 바위는 다보탑과 첨성대, 황룡사9층 목탑을 빚어낸 백제출신 아비지 등 석공들이 다듬은 또 다른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상상도 일었다. 잉카유적처럼 인간이 풀 수 없는 10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여김직도 했다.
읍천항을 출발해서 주상절리 전망대를 거쳐 하서항에 이르는 파도소리길 주변에는 따뜻한 커피와 빵을 파는 카페들이 옛 군 초소처럼 곳곳에 포진하고 있어 심심치 않다. 영하의 날씨 속에서도 찾아낸 한 두송이 해국(海菊)의 자태는 꿋꿋해 보였다. 파도소리길은 아직 지난 해 가을 몰아쳤던 태풍이 할퀴고 간 상처를 완전히 수리하지 못한 탓에 일부 구간이 막혀있었지만 걷는 데는 지장이 없다.
검은 벽돌을 수십 층 쌓아놓은 듯한 주상절리는 오늘도 거센 파도에 맞서 단련하는 중이었다. 자연이 만든 조화나 그 역사를 쌓아 온 인간의 의지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경주바다를 통해 재삼 확인하게 된다.
◆하서항 사랑海
'파도소리길'은 하서항에 이르면 울산으로 이어지는 해파랑길이다. 작은 어항인 하서항 방파제에 도착하면 하트모양을 한 거대한 열쇠고리가 반갑게 맞이한다. 하서항의 옛 지명은 '율포진리항'으로 신라시대 왜국에 사신으로 가서 볼모로 잡혀있던 왕자를 구한 충신 박제상의 충정과 눈물이 묻어있는 곳이다.
그가 고구려에 사신으로 파견됐다가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왜국으로 떠난 곳이 바로 이 율포항이다. 박제상의 아내 치술부인은 날마다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망부석이 됐다는 '치술령'이 지척지간에 있다. 그렇다고 그런 옛이야기에 혹할 필요는 없다. 하서항은 연인들이 방파제 끝에 자리잡은 하트형 열쇠에 찾아와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핫플레이스, '사랑海'로 각인되고 있다.
박제상이 바다를 건너기 훨씬 전에도 이곳은 신라를 이끈 귀인이 도래한 곳이다. 경주의 북쪽바다인 감포보다 남쪽인 양남바다가 당시는 외래세력이 드나들던 도래(渡來)지였다.
◆탈해의 바다
<삼국사기>는 신라 제 4대왕인 탈해이사금이 "혁거세 재위 39년이 되던 해에 아진포구(阿珍浦口)에 이르렀다"고 기록했다. 아진포구가 지금의 하서항 바로 인근 '나아 해변'이었다. 삼국사기는 '탈해왕'을 '다파라국(多婆那國) 출생으로 왜국(倭國)의 동북 1천 리 쯤에 있는 곳에서 왔다'고 적었다.
<삼국유사>는 탈해왕의 출생지를 '용성국'(龍城國)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다파라국이나 용성국은 같은 나라다. 왜국에서 1천 리 동북쪽에 있는 나라 역시 왜국 아닌가? 그렇다면 신라왕실 계보에 일본계가 있는 것이라고 봐야하는 것이 아닐까? 삼국유사는 한술 더 떠 탈해왕이 알에서 태어났다는 '난생설화'(卵生說話)까지 덧붙이면서 신화만들기에 일조했다.
"함달파가 적녀국왕의 딸을 맞아 왕비로 삼았는데 오랫동안 아들이 없자 아들구하기를 빌어 7년 만에 알 한 개를 낳았다. 그러자 대왕이 군신을 모아 묻기를 '사람이 알을 낳은 일은 고금에 없으니 길상이 아닐 것이다'라며 궤짝을 만들어 나를 넣고 또한 칠보와 노비까지 배에 싣고 띄어 보내면서, '아무 곳이나 인연 있는 곳에 닿아 나라를 세우고 집안을 이루거라.'라고 축원했다."
역사학계가 위서라 낙인찍은 <환단고기>는 탈해가 온 '다파라국'을 고구려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고주몽의 신하 협보가 구마모토에 세운 나라로 적시하고 있어 이채롭다. 그렇다면 탈해는 고구려계인 셈인가.
바닷바람은 거칠어지고 파도소리도 더 강해진다. 해안길 아래 바다는 더없이 깊고 깊은 푸르름으로 응대한다. 파도소리길의 끝에 다다랐다. 고개를 들어 해안건너편에 고층빌딩들이 주상절리처럼 보인다. 신기루인가? 착각이 일 정도로 지척지간이 울산이다.
바다를 건너온 것은 탈해왕만은 아니었다. 수많은 '처용'도 이 바다를 건너 경주에 왔고, 삼국을 통일한 후 해상왕 장보고가 이 바다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바다 전체를 장악했다. 신라 천년제국의 전성기였다.
문무대왕릉이 있는 봉길리 해변에서 읍천항으로 이어지는 나아해변까지 이어진 해안도로가 있지만 해안을 점령한 '월성원자력발전소'로 인해서 통행할 수가 없어, 우회로를 만든 봉길터널을 통해 넘어가야 한다. 수년 전 문재인 정부에서 '탈원전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조기 폐쇄시킨 월성원전 1호기가 있는 그곳이다. 1호기는 가동 중단됐지만 나머지 4기의 원전은 가동되고 있다.
괜스레 방사능 누출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나아해변에서는 날씨좋은 날 바다낚시를 하는 조사들의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월성원전입구에 있는 공원에는 '탈해왕 탄강(誕降)유허비각'이 있지만 눈썰미가 좋지 않으면 좀체 찾을 수 없어 아쉽다. 따뜻한 커피 한 잔 하면서 몸을 녹일 수 있는 해변 카페는 오늘따라 여유가 있다.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didero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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