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사람이 바뀌어도 소용이 없다면

입력 2023-01-17 16:50:28 수정 2023-01-17 18:05:04

김병훈 서울취재본부 기자
김병훈 서울취재본부 기자

최근 국민의힘 소속 대구 지역 국회의원 12명에 대한 각 선거구민들의 의정활동 평가 여론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긍정 평가가 부정 평가보다 높은 의원은 5명에 불과하고 이 가운데 1명만 긍정 평가가 50%를 넘었다. 나머지 7명은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보다 높았다. 사실상 대구 정치권 전반이 지역민들로부터 낙제점을 받은 셈이다.

2012년 이맘때도 똑같은 여론조사가 실시됐다. 12명 가운데 2명만 긍정 평가가 우세했고 10명은 부정 평가가 더 높았다. 이에 그해 4월 열린 19대 총선에서 7명이 새로 교체됐다. 2016년 6명, 2020년 7명 등 대구 정치권은 잇따른 '물갈이'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지만, 시민들의 정치적 효능감은 10년 전에 비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사람이 바뀌어도 소용이 없다면 제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보수정당이 대구에서 일당 지배체제를 본격 구축한 건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1988년 13대 총선이다. 공교롭게도 13대 국회 임기 종료 이듬해인 1993년부터 대구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이 전국 최하위를 유지 중이다. 지역 일각에서 '문제는 소선거구제'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현행 소선거구제는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의 국회의원만 뽑는다. 문자 그대로 승자가 독식하는 구조다. 가장 최근인 21대 총선을 보면 국민의힘은 대구경북(TK)에서 56.0%(290만3천91표 중 162만6천422표)를 득표했지만 의석은 96%(25석 중 24석)를 가져갔다. 득표율과 의석률의 격차만큼 대표성이 하락했고 제2당의 출현은 봉쇄됐다.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되면 보수정당의 의석 독식이 불가능해진다. TK에서도 정당 간 경쟁은 물론 정당 내 경쟁이 발생한다. 더 이상 '작대기만 꽂아도 당선'되지 않기 때문에 공천권자의 눈치만 보던 국회의원들이 지역민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고질적인 지역주의 역시 자연스레 사라질 수밖에 없다.

흥미로운 건 TK를 핵심 지지 기반으로 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이 같은 문제의식을 가장 강하게 갖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대선 당시 중대선거구제를 선호한다고 밝힌 윤 대통령은 올 초 한 언론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를 통해 대표성을 좀 더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새해 벽두에 던진 윤 대통령의 선거제도 개혁론에 최근 국회에서도 관련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등 여야 5당 의원 60여 명이 참여하는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 모임'은 지난 16일 첫 회동을 갖고 선거제도 개편 필요성에 대해 뜻을 모았다. 극심한 여야 대립 상황에서 이례적으로 여야 의원들이 머리를 맞댄 것이다.

이에 앞서 원외 중심의 초당적 정치개혁 모임은 이미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2023 정치개혁의 해 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정치가 왜 이 모양이냐고 한탄만 하지 말고 정치를 바꾸고 싶다면 선거제도 개혁에 관심을 갖자"며 국회에 소선거구제 폐지를 주문했다.

이 자리에는 민주당 소속 이영빈 대구 달서구의원도 참석했다. 재선의 이 의원은 TK 민주당이 대약진한 8대 기초의회와 관련해 "보수정당이 독점한 7대와 비교해 조례 발의는 78건에서 237건, 5분 발언은 74건에서 300건으로 늘었다. 의회 내 다양성이 확보되자마자 나타난 변화"라고 강조했다.

국회의원이 4년마다 싹 바뀌어도 만족스럽지 않다면 선거제도를 바꾸는 데 관심을 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