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 호모 에스테티쿠스] <1> 길가메시: 영생 대신에 얻은 심미안

입력 2023-01-09 11:49:11

이경규 계명대 교수

※올해부터 서영처 교수의 '시인이 들려주는 클래식'과 이경규 교수의 '문학 속의 호모 에스테티쿠스'가 격주로 선보입니다. 이경규 교수의 '문학 속의 호모 에스테티쿠스'는 '문학 속의 미학적 영웅들'이라는 뜻으로, 세계의 유명한 문학 작품 속에 나오는 인물을 미학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한 내용을 연재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순례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순례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이경규 계명대 교수
이경규 계명대 교수

유사 이래 문학은 다양한 인간상을 주조해왔다. 진선미의 범주에 맞춰보면 진리를 추구하는 인간, 선을 구현하는 인간, 아름다움을 좇는 인간으로 대별해볼 수 있다. 물론 좋은 작품은 세 영역이 서로 중첩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진리는 철학이, 선은 종교가 별도로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문학은 미에 좀 더 몰입한다. 문학의 미적 지향은 인류 최초의 작품에서도 확인된다.

세계 문학사의 맨 앞장은 『길가메시 서사시』가 자리잡고 있다. 독보적인 앞자리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보다 1천500년, 창세기보다 1천 년 앞선다. 그런데도 놀라우리만치 문학적 완성도가 높고 인간사에 대한 통찰이 깊다. 길지 않는 텍스트 속에 사랑·우정·죽음·종교·자연과 같은 인간 보편적인 주제가 삼투되어 있다.

초반의 길가메시는 매우 나쁜 왕으로 서술된다. 청년들을 불러 두들겨 패는가 하면 첫날밤 신방을 쳐들어가는 둘도 없는 폭군이다. 그러다가 엔키두라는 친구와 함께 자연정복에 몰입한다. 그러나 신들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바람에 엔키두는 벌을 받아 병사한다. 절친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길가메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불사의 비밀을 찾아 순례에 나선다. 천신만고 끝에 만난 영생자 우트나피쉬팀은 인간에게 더는 불사가 없다고 못 박는다.

필멸의 운명을 깨닫고 귀향한 길가메시는 유한한 인간사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한다. 그는 자신을 태워준 영생자의 사공에게 인간 세상을 보여주며 자랑한다.

우르샤나비여, 성벽에 올라가 앞뒤로 거닐어보오. 그 토대를 살펴보고 기술을 눈여겨보시오. 정말 훌륭하지 않은가요? 일곱 명의 현인이 기초를 세운 것이오. 1제곱마일은 도시고, 1제곱마일은 대추나무 정원이고, 1제곱마일은 점토 채석장이고 반 제곱마일은 이슈타르 신전이라오.

세상을 보는 길가메시의 시선이 순례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다. 부정하고 내팽개쳤던 삶의 현실을 애정과 경이로 수용한다. 우선 인간의 지혜와 땀으로 축조된 건축물에 문명적 자부심을 드러낸다. 다음으로 자연을 주목하는바, 대추나무 정원이 도시 만큼이나 크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한때 정복의 대상이었던 자연을 문명적 성취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는다. 그러나 이것으로 삶의 공동체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초월적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다. 길가메시는 신전을 중심으로 한 종교적 터전이 도시의 절반 크기로 솟아 있음을 적시한다. 한때 여신(이슈타르)까지 모독했던 그의 오만은 겸손으로 대체되었다.

요컨대 길가메시는 험난한 순례를 통해 문명·자연·종교라는 삶의 보편적인 근거를 재인식하는 현자로 성장한다. 여기서 주목할 포인트는, 그러한 재인식은 유한한 현실을 수용하는 심미적 개안(開眼)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즉, 영생 대신에 길가메시가 얻은 것은 유한 속의 아름다움을 감득하는 심미안이다. 그는 건축의 정교함을 '눈여겨보라'라며 영생자의 수하를 아름다움에 초대하는 호기마저 부린다. 인류 사상 가장 오래된 문학의 주인공이 미적 주체로 수렴된다는 것은 놀랍고도 흥미롭다. 이 점에서 문학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