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 진료 대란 현실화…트윈데믹에 환자 급증하는데 병원·전공의 인프라 붕괴

입력 2023-01-09 16:04:22 수정 2023-01-09 20:30:50

코로나19 방역 조치 풀리며 활동량 급증, 올해 감기·독감 환자 늘어
2022년 소아 진료 병·의원 25건…2000년 이후 최저 기록

5일 대구 남구의 한 아동병원이 진료를 보려는 어린이들로 붐비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5일 대구 남구의 한 아동병원이 진료를 보려는 어린이들로 붐비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9일 오전 9시쯤 대구 수성구의 한 소아청소년과 병원. 진료 시작 시간에 맞춰 병원에 도착했지만 이미 대기 번호는 20번대였다. 대기실은 칭얼대는 아이들과 이를 제지하고 달래는 보호자들로 순식간에 북적였다.

5세 딸과 병원을 찾은 보호자 A(39) 씨는 "감기, 독감이 유행하면서 요즘은 동네 어느 소아과를 가도 대기 1시간은 기본이라 갈 때마다 너무 힘이 든다"며 "유치원에 가기 전에 일찍 진료를 보려고, 아이 아빠가 출근길에 미리 병원에 대기를 걸어놓고 이후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진료를 보러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겨울철 코로나19와 인플루엔자(계절독감)까지 동시에 유행하는 '트윈데믹'이 이어지면서, 지역 소아청소년과 병·의원이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최근 낮은 출산율 등으로 소아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기관은 좀처럼 늘어나지 않는 반면, 환자는 급증하면서 진료 대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대구시의 '표본감시 감염병 주간 발생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8일에서 12월 24일 기준 환자 1천 명당 인플루엔자 의사환자(의심 증상을 보이는 환자) 분율은 58.9명으로 유행 기준(4.9명)의 12배에 달했다.

특히 대구의 경우 진료 환자 1천 명당 의사환자 수가 가장 많은 연령대는 ▷13~18세(193.6명) ▷7~12세(157.4명) ▷0세(76.9명) ▷1~6세(71.8명) 등의 순이었다. 소아·청소년 환자를 중심으로 독감 환자 발생이 높은 것이다.

올해 거리두기 등 각종 방역 조치가 완화되면서 감기 환자는 증가했지만, 최근 들어 소아 진료가 가능한 병·의원의 개업 건수 대비 폐업 비율은 증가했다.

매일신문이 행정안전부 '지방행정 인허가 데이터'를 통해 2000~2022년 대구에서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하는 병·의원(치과병·의원, 한방병원, 한의원 제외)의 연도별 개업·폐업 건수를 분석한 결과, 2008년까지는 폐업이 10건 미만이거나 아예 없는 해도 있었다.

그러다 금융 위기 이후인 2009년 폐업 건수가 30건으로 늘었고, 개업 대비 폐업 건수 비율은 2000년 이후 최다인 61.2%로 급증했다.

이후 출산율이 본격적으로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소아 진료를 실시하는 병·의원의 개업 대비 폐업 비율은 ▷2013년 63.9%(개업 36건 중 폐업 23건) ▷2014년 52.6%(38건 중 20건) ▷2015년 66.7%(33건 중 22건)로 상승했다. 이후 지난해까지 거의 매년 40~50대% 수준을 이어갔다.

지난해는 소아 진료를 실시하는 병·의원 개업 건수는 25건에 불과해 2000년(22건)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개업 대비 폐업 비율은 전년도(39.4%)보다 상승한 48%(25건 중 12건)였다.

이런 가운데 올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이 역대 최저를 기록하면서 향후 소아 진료 대란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올해는 대구 수련병원 5곳을 포함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를 모집한 전국 66곳 병원 중 55곳에서 지원자가 전무했다.

지역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소아청소년과를 포함해 필수 의료 분야가 의사들이 사명감만으로 유지되는 구조가 이어지면서 진료 체계 붕괴를 눈 앞에 두고 있다"며 "소아청소년과를 선택한 의사들이 소아 환자 감소, 저수가 등으로 인한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하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보상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