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 경희대 교수
"국민의 한 사람으로 걱정이 많습니다. 정치인들은 왜 맨날 그 모양일까요? 억지를 쓰고 선동을 해서 국민을 갈라치기하고, 거짓말도 아무렇지 않게 하잖아요. 정치는 대본도 형편없고 연기자도 형편없어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배우 김혜자 씨가 한 말이다. 이런저런 눈치 보지 않고, 요즘 말로 진영 논리에 사로잡히지 않았기에 거침없이 말할 수 있었으리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하고 싶은 솔직한 말이다. 명색이 정치판을 분석하는 일을 하지만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아무리 비판을 거듭해도 정치인들이 변할 조짐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라의 미래를 놓고 벌이는 진지한 토론과 성찰 대신 조잡한 말꼬리 잡기와 조롱, 비아냥만 넘친다. 여당은 야당을, 야당은 여당을 정치의 라이벌이 아니라 전쟁에서 말살해야 할 적으로 여긴다. 대화와 타협, 상호 이해와 존중이라는 민주주의 규범은 실종된 지 오래다.
정권 교체 후 새 정부의 국정운영 능력도 우려스럽다. 무얼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려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에서 겨우 벗어난 것 같기는 하다. 화물연대 사태를 계기로 연금·노동·교육 등 '3대 개혁 추진'의 방향타를 제대로 잡기는 했다. 문제는 실천 능력이다. '비둘기같이 순결한' 마음이라도 '뱀같이 지혜로운' 실행 계획이 없을 경우 5년 단임 정부는 밥그릇 싸움에서 판판이 깨지게 되어 있다. 탄광 노동자 파업이 1년 이상 끌어도 소신을 꺾지 않았던 영국의 대처 총리, 당의 기반인 노동자들의 지지와 정권을 잃을 가능성이 있었지만 나라의 미래를 위해 하르츠 개혁을 추진한 슈뢰더 독일 총리. 이들처럼 뚝심과 함께 정치력이 절실히 필요한 게 개혁이다. '문재인 정부 탓'도 국민들 마음속에서는 시효가 다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북한 드론을 보고 전투기가 뜨는 건 모기를 잡으려 칼을 뽑는 황당한 대응이다. 전 정권에서 훈련 부족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 해도 대통령의 진노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북한의 다음 도발에 대한 대응을 보며 국민은 윤석열 정부가 무얼 했는지 물을 것이다. 미국 중국 등 세계가 국제 규범을 무시한 채 사활을 걸고 덤비는 반도체 전쟁에서 정부 여당의 안일한 모습도 우려스럽다. 조만간 날아올 성적표를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야 마땅하지만 점입가경인 여당의 집안 싸움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친박·친이 싸움에 이어 친윤·비윤으로 제목만 바꿔단 보수정당 자해극을 되풀이할 조짐이 보인다. 과거에 비해 정치인들의 자질이 점점 떨어지고 있고, 지금이 최악의 저질 정치인 전성시대라고 진단하는 사람이 많다.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이 "정치인은 4류"라고 일갈한 그때보다 더 나빠졌다고도 한다. "정치인들은 자기들이 최악이라는 사실조차 모르죠. 삼류 막장 드라마인데 나라가 걱정돼 안 볼 수도 없고. 불안해서 잠을 못 이룰 때가 많아요"라는 김 씨의 진단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새해부터 너무 걱정만 끼쳐 드리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이 나라가 망하지 않는 건 "열심히 사는 보통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국민은 골목 식당부터 대기업 사무실까지 어떤 역이 주어지든 최선을 다해 해내고 있어요"라는 김 씨의 토로에서 한 가닥 위안을 얻는다. 어떤 역이든 최선을 다하는, 열심히 사는 보통 사람들이 이 나라를 지탱해 온 게 사실이다. 세계인의 찬사를 받은 BTS도, 기생충도, 오징어 게임도 정치의 후광으로 탄생한 게 아니다. 김 씨와 같이 그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한 한국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업적이다. 뉴욕에 사는 한 지인은 BTS 등의 활약이 미국 사회에서 아시안 프라이드를 높여 주었고, 그 덕에 한국인에 대한 시선이 너무 달라졌음을 피부로 느낀다는 말을 들려 주었다. 정치를 보며 절망하다가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일이다. 정치가 삼류 막장 드라마인데 안 볼 수도 없다면 너무 과몰입하지 말고 그냥 한눈으로 슬쩍 보고 넘기면 될 일이다. 새해 우리에게 어떤 역이 주어지든 골목 식당부터 대기업까지 최선을 다하면서 말이다. 김혜자 씨의 당당함은 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닐까 싶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지탱해 온 나라임을 안다면 우리도 당당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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