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비둘기와 함께 살아가기

입력 2022-12-28 14:05:30

최성규 미술중심공간 보물섬 대표

최성규 미술중심공간 보물섬 대표
최성규 미술중심공간 보물섬 대표

한 해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면 마티스의 비둘기 그림이 생각난다. 고양이와 비둘기를 좋아한 마티스는 말년의 삶을 니스 근처의 방스라는 곳에서 고양이 세 마리와 비둘기 한 마리를 키우며 살았다고 들었다. 마티스가 그린 비둘기 그림은 피카소에게도 영감을 주어서 피카소의 비둘기 그림도 유명하다.

코로나19 이후로 근처의 자연을 찾는 사람이 많다. 산이나 강, 바닷가 앞에 서면 인간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를 스스로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 엄청난 재난을 극복하는 슬기를 발휘하는 인류 역시 얼마나 강한 존재임을 느끼기도 한다.

경산시 남천 강변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필자가 운영하는 보물섬의 뒷마당에는 새들이 많이 날아온다. 뒷마당에 이웃해 있는 주택 중 2채나 빈집이어서 그 집의 울창한 나무는 새들에게 좋은 은신처가 되는 모양이다. 참새, 비둘기, 이름 모를 새들이 날아온다. 보물섬의 한편에 마련된 길고양이 급식소에 드나드는 고양이들에게 새들은 심심치 않게 도전해볼 만한 사냥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 한 번도 고양이들이 사냥에 성공한 것을 내 눈으로 보지는 못했다.

비둘기가 언제부터인지 우리에게는 유해동물로 불린다. 눈을 또렷이 뜨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비둘기는 자신들이 인간에게 해로운 동물이 되어버린 지도 모르고 뒤뚱거리며 마당 위를 걷는다. 어쩌다가 우리가 사는 동네에 왔고, 어쩌다가 이곳에 정착해서 새들에게도 이곳이 고향이다. 88년 올림픽의 성화대에 불타 죽은 비둘기의 이야기는 너무 끔찍하고 알려진 이야기다. 예전에는 평화의 상징으로 여긴 비둘기를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날려 보내던 시절을 기억하는데 어느새 비둘기들이 혐오의 상징이 되었고 '퇴치'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보다 비둘기의 문제가 더 심각한 독일의 경우 비둘기를 '퇴치'하기보다 비둘기들에게 깨끗한 집을 지어주고 먹이와 깨끗한 먹이를 주면 안락한 보금자리에서 알을 낳는다. 사람들은 그 알을 몰래 수거하고 대신 플라스틱 알을 갖다 놓는다고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개채 수를 줄일 수 있다. 남천 강변에 걸려있는 "먹이를 주지마세요. 비둘기가 생태계의 당당한 일원이 되게 해주세요"라는 막연한 문구보다도 실질적인 대안이며 사려 깊은 대안이다.

길고양이들의 뚱뚱한 몸짓을 보고 '얼마나 많이 먹었으면 저럴까'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모습이 짠 음식을 먹고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해서 신장이 안 좋아져서 부은 것이고 길고양이의 수명은 집 고양이 보다 5배나 짧다는 사실을 알면 깜짝 놀란다. 모든 동물은 야생이기에 생명력과 생존력이 강하다는 것은 우리들의 '착각'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이웃 동물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도 먹고살기 어려운데 다른 동물들을 생각한다는 것이 과연 사치스러운 생각만 일까?

우리는 시간을 들여서 깊고 사려 깊이 생각해야 한다. 가을이 되면 숲에 천지인 도토리나무의 열매를 싹쓸이하듯 가져오면 산 짐승들은 그야말로 혹독한 겨울을 나게 된다. 그러면 산에 사는 동물들은 사람이 사는 동네로 내려올 수밖에 없다. 새해에는 다른 생명들과 함께 사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