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동인동 화재 피해 17가구 '발 동동'…엄동설한에 교회에서 생활

입력 2022-12-20 17:38:53 수정 2022-12-20 20:40:02

폭발 및 화재로 살림살이 불에 타고 전기, 수도, 가스 공급 등 끊겨
집안은 엉망진창, 복구는커녕 당장 지낼 곳조차 마땅찮아
지자체, 경찰 지원은 거북이 걸음 “도움 손길 절실”

20일 오후 동인동 가스폭발 화재 사고 피해자들이 인근 교회 교육장에 머무르고 있다. 한소연 수습기자
20일 오후 동인동 가스폭발 화재 사고 피해자들이 인근 교회 교육장에 머무르고 있다. 한소연 수습기자

20일 오후 대구 중구 동인동의 한 교회, 70㎡ 남짓한 교육장에는 두꺼운 외투를 껴입은 남녀노소 10여명이 둘러앉아 있었다. 단열이 되지 않고 난방도 약해 실내인데도 한기가 돌았다. 아늑하게 몸을 뉘기는커녕 추위조차 피할 수 없는 이곳은 인근에서 가스폭발 화재사고로 피해를 입은 동네 주민들이 임시로 구한 거처였다.

◆방화 의심 화재, 심각한 피해

지난 16일 대구 중구 동인동 한 3층 다가구주택 건물에서 불길이 솟았다. 불은 건물을 태운 뒤 50분 만에 꺼졌고 1층에서 4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소방당국은 2번의 폭발음 등 목격자 진술을 근거로 LP가스 폭발을 화재 원인으로 보고 있다. 1층 가스호스에 절단 흔적이 발견되는 등 1층 세입자가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폭발과 뒤따른 화재로 인한 피해는 심각했다. 불길이 인 다가구 주택은 전소되다시피 해 옷가지는 물론 가전, 가구 등이 온통 불탔다. 인근 건물들 역시 유리창이 깨지고, 폭발 충격에 문틀이 휘어져 문이 닫히지 않는가 하면 수도관이 내려앉는 등 주거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이렇게 불길이 직접적으로 번져 연소 피해를 입은 9가구와 폭발 충격으로 인한 간접 피해를 입은 8가구 등 17가구, 40여명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피해자들의 몸과 마음에 남은 상처도 상당하다. 폭발 당시 커튼을 달다 추락한 70대 여성은 왼쪽 무릎이 골절돼 수술을 받고 입원 중이다. 다른 40대 남성은 오른쪽 발목인대가 파열돼 치료를 받고 있다. 직접적인 상해를 입지 않은 주민들도 폭발소음으로 인한 심리적 충격, 이명현상 등을 호소하고 있다.

◆더딘 피해자 지원

피해는 심각하지만 피해자들이 지금까지 얻은 도움은 미약한 수준이다. 살던 집의 수도·가스·전기 등은 공급이 차단돼 기본적인 생활도 불가능한 탓에 이들 중 상당수는 인근 교회를 통해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임시 거처를 구하지 못한 주민 20여명은 교회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밤이면 교회 신도들이 살고 있는 인근 아파트에 흩어져 잠을 청하는 실정이다.

주민들에게 임시 거처를 제공한 문순기 목사는 "세면도구가 부족하고 이마저 세수와 양치만 가능하다. 샤워는 며칠째 못하고 계신 분들이 많다. 적십자에서 구호물품을 보내줬지만 사고 수습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바람에 물품이 너무 부족하다. 한파 속에서 얇은 모포만으로 견디기는 너무 가혹하다"고 했다.

어린 자녀가 있는 가구는 생활이 더욱 힘들다.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피해자 임모 씨(41)는 "애들 학교를 보내야 하는 상황이라 멀리 친척집에 갈 수도 없고 교회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며 "일상 복귀가 늦어지면서 아이를 돌보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아이들은 요즘 집에 못 가냐고 물으며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현주건조물방화 혐의를 받고 있는 여성은 이미 사망한 탓에 피해보상을 받을 길이 막막한 것도 문제다. 화재가 발생한 건물 주인 성모 씨는 "불낸 사람이 죽는 바람에 화재 보상 받을 길도 없다"며 "세입자들이 나간다면 전세금까지 물어줘야 하는 상황"이라며 난처해했다.

반면 지방자치단체나 경찰 등에서 할 수 있는 범죄 피해자 및 긴급 복지 서비스 제공은 더디기만 하다. 동인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사고 직후 몇 가지 긴급 물품을 지원한 게 전부다.

피해 주민 A씨는 "4일이면 누군가에게는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한테는 하루가 1년 같다. 4일이 지난 현재까지 교회에서 지내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며 지자체의 느린 지원에 분통을 터뜨렸다.

중구청 긴급복지지원팀 관계자는 피해 주민들에 대한 지원과 관련해 "상담을 진행한 후 지원 기준에 충족되면 1인당 58만3천400원의 화재피해 지원금이 지급된다"며 "아직은 피해상황을 파악하는 중이라 확실히 결정된 부분이 없다"고 밝혔다.

화재사고로 인해 불탄 건물 모습. 한소연 수습기자
화재사고로 인해 불탄 건물 모습. 한소연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