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규제개혁]대학 자율·특성화 기대 vs 비인기학과·지방대 위기 우려

입력 2022-12-19 17:47:55 수정 2022-12-19 21:17:48

교사와 교지, 교원, 수익용 기본재산 등 4대 요건 기준 완화
정원조정 자율화와 정부 대학 평가 폐지 등
평가 부담완화와 특성화를 위한 학과 구조조정 기대
지역·대학·학과 간 쏠림과 교육의 질 저하 우려

19일 대구시교육청이 대입 정시 모집을 앞두고
19일 대구시교육청이 대입 정시 모집을 앞두고 '2023학년도 대입 정시전형 대비 상담실' 운영을 시작한 가운데 학부모와 학생이 진학 전문교사와 상담을 하고 있다. 시교육청은 대입 정시전형에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있도록 사전 신청자 320명을 대상으로 1:1 대면 상담을 28일까지 진행한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대구대 경산캠퍼스 전경. 대구대 제공
대구대 경산캠퍼스 전경. 대구대 제공
경북대 본관 전경
경북대 본관 전경

정부가 대학의 학과 신설과 통폐합·정원 조정 등에 적용되던 규제를 대폭 완화하기로 하면서 지역 대학에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정부의 대학 평가를 없애는 방안에 대해선 환영하지만, 설립과 운영 규제를 푸는 것에 대해선 특정 대학·학과 쏠림과 수도권 집중 심화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학과·정원 자율로…설립·운영 규제 풀고, 정부 평가는 폐지

교육부는 지난 16일 대학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자율성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제3차 대학 규제개혁 협의회'와 '제9차 대학기본역량진단제도 개선협의회' 결과를 공개했다.

가장 먼저, 대학 설립을 위해 갖춰야 하는 교사(건물)와 교지(토지), 교원, 수익용 기본재산 등 4대 요건 기준을 전면 개편하기로 했다. 4대 요건은 1996년 제정돼 온라인 수업 확대, 대학 간 공동 교육 활성화, 지방자치단체·기업·대학 협력 등 최근 대학 교육 환경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교사의 경우 다른 국가 사례와 국토교통부의 최소 주거면적(14㎡)을 참고해 앞으로 인문·사회는 12㎡, 나머지 계열은 14㎡로 완화한다. 지금은 인문·사회 12㎡, 자연과학 17㎡, 예체능 19㎡, 공학과 의학 각각 20㎡로 규정돼 있다.

교지는 별도 규정을 없애고 건축 관계 법령, 지역 조례상 건폐율·용적률에 따라 산출한 면적만 확보하도록 했다. 교원은 다양한 강좌를 개설할 수 있도록 일반대학의 겸임·초빙 교원 활용 가능 비율을 현재 '1/5 이내'에서 '1/3 이내'로 확대한다.

수익용 기본재산은 학교법인이 수익을 창출해 대학에 투자한 점이 인정되면 요건을 만족한 것으로 간주한다.

아울러 교육부는 2024학년도 학생정원 조정계획에 대학 자율성을 확대할 방침이다. 총입학 정원 내에서 학과 정원을 자체 조정할 경우, 교원확보율 요건을 완전히 폐지하기로 했다. 현재는 학과를 신설·통합·폐지하거나 학과 간 정원을 조정하는 경우 대학 전체 교원확보율을 전년도 이상 유지해야 한다.

현재 총입학 정원을 늘릴 경우 4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하지만, 앞으로는 첨단기술 분야에 한 해 교원확보율 기준만 충족해도 정원을 늘리도록 규제를 완화한다.

지방대에선 결손 인원이나 편입학 여석을 활용해 새로운 학과를 신설해 신입생을 모집할 수 있는 특례가 주어진다.

이외에도 2015년부터 실시해온 교육부의 대학기본역량진단이 폐지된다. 318곳의 일반대와 전문대를 대상으로 한 대학기본역량진단은 재정지원의 기준이 됐다.

현재 진행 중인 대학기본역량진단이 2024년에 마무리되면, 2025년부터 대학들은 사학진흥재단의 재정진단,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와 전문대학교육협의회(전문대교협)의 기관평가 인증에 따라 재정지원 여부가 가려진다.

사학진흥재단의 '경영위기대학'이나, 대교협·전문대교협으로부터 인증 유예, 인증 정지, 불인증 등을 받은 '미인증대학'을 제외한 모든 대학에 정부가 일반재정을 지원할 예정이다.

◆평가 부담완화·학과 구조조정 기대

지역 대학들은 그동안 '살생부'로 불리던 정부의 대학기본역량진단 폐지를 반기는 분위기다. 정부 주도의 획일적인 평가가 아니라 대학 협의체를 통해 자율적인 평가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대학들은 그동안 3년 주기로 대학기본역량진단(상대평가)을 수행하는 데 대한 부담이 컸고, 평가 기준도 대학별 여건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비판해왔다.

사학진흥재단의 재정진단은 매년 대학들이 제출하는 예·결산 분석 자료를 바탕으로 평가가 이뤄지고, 대교협·전문대교협의 기관평가(절대평가)도 5년 주기로 진행되기에 대학들이 느끼는 부담을 크지 않을 전망이다.

지역 한 대학 관계자는 "그동안 3년마다 실시되는 정부 평가에 맞춰 각종 자료와 보고서를 준비해야 했다"며 "상대평가 결과에 따라 정부 재정지원이 결정되기 때문에 '대학 살생부' 역할을 한 대학기본역량진단의 폐지는 긍정적이다"고 했다.

정원조정 자율화를 통해 대학의 특성화를 추진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특히 국·공립대의 경우 정원을 조정할 때 교육부의 사전 허락을 받고 있지만, 앞으로는 자율적으로 조정한 뒤 사후 보고만 하면 된다. 자퇴 등으로 생긴 빈자리를 활용해 새로운 강좌를 개설하는 등 학내 구조조정이 가능해진다.

실제 경북대의 경우 올해 전자공학부 내에 인공지능전공을 신설했는데, 입학정원 60명 중 30명이 교육부로부터 승인받은 순수 증가 인원이다. 앞으로는 이같이 첨단학과를 신설할 때 자율적으로 정원을 조정할 수 있고, 또 교원확보율 기준만 만족하면 정원을 늘릴 수 있는 길도 열렸다.

◆지역·대학·학과 간 쏠림과 교육의 질 저하 우려

하지만 '빈익빈 부익부'의 심화와 교육의 질 저하를 걱정하는 목소리고 함께 나온다. 총입학 정원 내에서 학과를 신설·폐지하거나 정원을 조정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비인기학과는 통폐합으로 설 자리를 잃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원율과 취업률이 낮은 지방대 인문·사회계열의 위기는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결국, 취업에 유리한 학과나 대학으로 학생이 몰리는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

지역 내에서도 대학별로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 지역의 국립대나 주요 사립대의 경우 정원조정과 학과 신설을 통한 학생 모집에 더 유리해지지만, 중하위권 대학의 경우 지원율 하락 등 신입생 모집의 어려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지역 사립대들의 학과 구조조정을 보면, 한국어와 중국어, 일본어, 영어 등 어문계열 모집 인원을 줄이거나 통폐합했다. 이외에도 사회학과와 정치외교학과, 법학과, 무역학과 등 사회계열도 점차 축소되고 있다.

지역 내 양극화도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 9월 2023학년도 4년제 수시모집에서 국립대인 경북대의 경쟁률은 14.28대 1로, 지난해 1.28대 1보다 상승했다. 반면 다른 사립대 대부분은 경쟁률이 전년보다 낮아졌다.

규제 완화의 효과가 수도권에 집중될 우려도 있다. 교사와 교지 확보율 기준 완화의 경우 학생 모집에 어려움이 없고 과밀화된 수도권 대학들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반도체 등 첨단학과 개설 및 증원으로 지방의 인재 유출이 가속화될 수 있다.

지역 한 사립대 관계자는 "자율과 규제 완화라는 이름으로 지방대는 적자생존 경쟁에 내몰릴 처지에 됐다. 대학 운영의 유연성을 확보했다는 이점은 있지만, 비인기학과 몰락의 가속화로 인한 학문 다양성 위축, 수도권 집중화 등은 심해질 것"이라며 "특히 지역 내 중하위권 대학은 각자 특성화 추진전략을 세우겠지만, 수도권 대학과 국립대, 주요 사립대 등을 우선 선호하는 현상으로 인해 기반이 점점 약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구대 일자리더하기 취업박람회 취업 상담. 대구대 제공
대구대 일자리더하기 취업박람회 취업 상담. 대구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