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했던 북한 노동당의 한국 흔들기가 정부의 '독자제재' 발표가 정곡을 찌른 모양인지 '서울 과녁' 운운하며 호기를 부리다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올 한 해 남북관계를 되돌아본다.
첫째, 북한 핵무기가 안고 있는 딜레마다. 비핵화는 카드로서의 유용성이 이미 임계점에 달했다. 그간 핵무기를 늘 '압살에 맞선 불가피한 자위력'이라고 해 왔으니, 그 범위를 넘어서는 어떤 시도를 하려 든다면 '금수산 태양궁전'은 한 줌 재가 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럼에도 북한 노동당은 핵정책을 법제화하면서 핵 사용의 문턱을 제거했다고 호언한다.
원래 핵개발의 동인이 대남용이었던 만큼 결코 자위력에 머물 수 없음이다. 그래서 '핵적수국인 미국을 견제'하는 목적으로 절대로 핵을 '먼저' 포기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핵무기를 만지면 만질수록 한미 확장억제는 정교해지고, 한국의 핵무장에 대한 국제적 용납성을 높일 것이며, 전술핵무기의 반입을 채근하는 꼴이 될 뿐이다.
묘혈만 파고 있는 핵 카드는 새로운 돌파구가 절실할 것이다. 핵실험 등을 넘어 보다 자극적인 실력 행사에 골똘할 것이다.
둘째, 북한에는 안정된 주변 정세보다 위기 국면이 필요하다. 지역 내에 우크라이나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이 발생한다면 미국의 힘을 분산시키고 핵무기의 존재감을 높이는 데 유리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미‧중 대결 구도야말로 호재일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은 해상교통로 보호, 자원 및 무역, 영유권 분쟁, 하나의 중국과 대만의 지위 문제 등을 둘러싸고 미‧중 간에 늘 긴장이 감도는 곳이다.
당면한 미‧중 대결 구도는 매우 절제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몽'을 향해 갈 길이 먼 중국은 '시진핑 3연임 체제'의 안정이 최우선이며, 냉전 시기 구소련처럼 대리전을 펼 가능성도 거의 없어 보인다. 미국 또한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이 우선이다. 최근 미국과 중국은 정상회담을 통해 몇몇 현안에 대해 이해를 나눈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근본적인 불안정 요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셋째, '조‧중동맹'의 비전과 신뢰 문제이다. 우선 중국에 대한 국제적 이미지는 그리 곱지 않다. 중국은 공산당이 지배하고 있으며, 미국을 숙주로 하여 각종 기술 정보를 빼내고, 서방 재원을 가지고 군사력을 급속히 증강하여 자유체제를 위협하는 '중화제국주의'를 지향하고 있다는 인식이 만연되어 있다.
특히 해운과 항만, 철도 건설에 역점을 둔 '일대일로'는 단순히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이나 생활수준의 향상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글로벌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각인되면서 강한 견제와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또 영토권을 자의로 확장하고, '역사공정'을 일방적으로 강행함으로써 주변국과 충돌, 빈축을 사고 있다. '공자학원'에는 공자가 없고 당 선전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여 여러 국가에서 퇴출되고 있다.
오만한 '종주국 행세'는 우리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영화 '안시성'에서 중국이 자랑하는 당태종이 눈에 화살을 맞고 패퇴하자 관중들은 우렁찬 박수를 보냈다. 시진핑의 장기 집권 행보는 북한의 세습 권력과 겹쳐져 이러한 '혐중 정서'를 보탠다. 중국 역시 핵을 가진 북한은 결코 달갑지 않다. 연명 수준의 후원 그 이상은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중국은 경제‧군사 강국이며, 동맹의 기반은 단단하다. 근자에 조‧중동맹 기념행사가 성대히 치러졌다. 조‧중동맹은 유사시 자동 개입을 설정하고 있다. '연루'의 위험이 있다.
넷째, '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이다. 한국은 소프트 파워 강국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K-팝 열풍으로 대표되는 한류는 영화, 시리즈, 한국어 배우기, 음식 등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서울은 세계적인 전시산업 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K-클래식 열풍 또한 대단하다. 세계 3대 콩쿠르에 미국을 제치고 세계 2위의 입상자(2002~2022)를 내는 기염을 토했다.
원전 기술은 물론 미국의 우주탐사선에 한국이 독자 개발한 고해상도 카메라와 같은 우주통신기술은 필수 아이템으로 알려져 있다. 한류의 창의와 융합은 또 다른 차원에서 핵무기를 넘어서는 폭발력이다. 북한이 김일성 이래 '4대 군사노선'을 천명하며 주민들을 '혁명'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때, 우리는 '누가 잘사는 체제인지 보자'며 기술 입국과 문화 창달에 힘써 온 당연한 귀결이다.
일찍이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안동 땅을 밟은 것은 한국의 '문화의 힘'에 관한 궁금점 때문이었고 '가장 한국적인 곳'을 원해서였다. 이렇다 할 소프트 파워가 없는 북한 노동당은 오직 핵‧미사일로 '한국은 위험한 곳'이라는 이미지를 국제사회에 심고, 한국 자본을 움켜쥐기 위해 합법, 비합법을 가리지 않고 금융질서를 교란하는 데 자나 깨나 골몰하고 있다.
다섯째, 온갖 자유가 넘치고 경계가 없는 자만심, 정치를 불신하는 한국 사회는 각종 공작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공권력을 약화시키는 데 별 장애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조선시대 민란의 역사를 결부시킬 수 있다. 친일 프레임은 결코 케케묵은 것이 아니며, 미군이 있는 한 반외세의 이름으로 한‧미동맹을 계속 이간할 수 있다.
각종 단체의 집단행동을 부추겨 경제에 타격을 주고 국제신인도를 저하시킬 수 있다. 다른 한편 북한에 대한 이미지를 개선한다. '민족 동질성 회복'은 매력 있는 주제이며, '북한 바로 알기' 운동을 전개한다면 얼마든지 북한과 민족, 통일에 대해 원하는 대로 정보를 심을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지금의 북한은 중국이 포기하지 않고, 한국 사회에 어떠한 '개입'이 먹혀들어간다고 판단하는 한 궁지에 몰린 쥐가 아니다. 북한 노동당 실세들은 진실과 변화가 두렵다. 이들을 겨냥하고 있는 '제재의 채찍'은 세습체제의 볼모가 되어 있는 '북한 주민 모두를 위한 사랑의 고육책'임을 이해하자. 또 한 해가 저문다. 한반도에 진정한 봄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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