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경제] '먹방' 지고, '소식' 뜬다…요즘엔 소포장, 소용량이 대세

입력 2022-12-01 15:56:35 수정 2022-12-01 17:39:34

소식좌 열풍에 유통업계 소용량 제품 출시
김밥 네 알·도넛 두 입 먹고 "배불러"…적게 먹는 연예인 영상 핫이슈 부상
양 줄인 '쁘띠 컵밥' '와인 반 병' 등 2인분 기본인 밀키트도 1인용 나와

올해 중반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유행어가 있다. 바로 적게 먹는다는 뜻의 소식(小食)에 본좌(本座,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스스로를 높여 부르는 말)를 더한 '소식좌'다.

이 말은 지난해 예능인 김숙이 함께 '비디오스타'를 진행하던 박소현, 산다라박의 평소 식습관 모습을 유튜브에 올리면서 처음 거론됐다. 영상에서 산다라박은 김밥 네 알만 집어먹고는 배부르다며 한 끼 식사를 멈췄다. 박소현은 도넛을 두 입만 베어 물고서 "배불러, 배불러"라며 내려놓았다. 그는 또 다른 영상에서 치킨을 두 조각만 집어 먹고는 "배불러"라고 했다. 이 장면들은 최근까지도 인스타그램 등에서 회자한다. 이후 둘은 같은 콘셉트로 유튜브 콘텐츠 '밥맛없는 언니들'에 나온다. '밥맛없는 언니들'은 영상마다 기본 100만 뷰 이상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다.

고메 거멍 화산섬 피자. CJ제일제당 공식몰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도 한국어 '먹방'(Mukbang)이 등재될 정도로 세계적으로 꾸준한 인기를 끌었던 먹방의 시대가 저물고 소식 트렌드가 뜨고 있다. 한 끼에 곱창 16m, 라면 23봉지를 먹는 '푸드 파이터'식 먹방이 대세였다면, 이제는 한 끼에 김밥 네 알을 먹는 소식이 인기다. 유통업계도 적은 양의 식사를 즐기는 소식 트렌드에 맞춰 용량과 가격을 낮춘 0.5인분 제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소식좌 겨냥한 소포장·소용량 대세

지난달 27일 롯데리아는 4년 만에 신제품 '힙&핫 치킨버거'를 출시하고 광고 모델로 음악 프로듀서 코드쿤스트를 발탁했다. 먹음직스럽게 보여야 하는 음식 광고에 대표적 소식가로 꼽히는 모델을 기용하는 건 이례적이다. 하루 식사량이 고구마 2개와 바나나 2개에 그치는 소식가도 남기지 않고 먹는 제품이라는 걸 강조했다. 광고 속에서 코드쿤스트는 8시간에 걸쳐 햄버거를 한입씩 먹어가며 음악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과거에는 "깨작깨작 먹는다"는 등 소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었지만 대중매체를 통해 적게 먹는 연예인 이른바 소식좌가 인기를 얻으면서 식품업계가 소용량·소포장 제품을 앞다퉈 선보이고 있다.

먼저 편의점 업계는 용량도 값도 절반으로 줄인 상품을 내놓으며 소식가들과 다이어트 족 잡기에 나섰다. GS25는 중량을 과감하게 낮춘 도시락 '쁘티 컵밥'을 선보였다. 중량은 200g 안팎으로 기존 도시락 메뉴의 중량과 비교해 절반 이하다. 가격도 김밥 한 줄 수준인 2천300원이다. 회사는 딸기 샌드위치를 올해 처음으로 1조각 구성으로 내놓았다.

경쟁업체인 CU도 1인 가구를 겨냥해 음용량 부담을 줄인 '와인 반 병' 제품을 개발했다. 일반적으로 와인 1병의 평균 용량은 750㎖인데 반해 와인 반 병은 360㎖다. 기존에는 편의점 음식이 값싸고 양 많은 상품 위주로 선호했던 데서 흐름이 달라진 것.

쁘띠 컵밥 2종. GS리테일

하이트진로음료도 지난 10월 무알코올 맥주맛 음료 '하이트제로0.00'의 소용량 버전인 240㎖ 캔 제품을 출시하며 용량 다변화에 나섰다. 240㎖ 캔은 한 번에 마시기 부담 없는 소용량으로 휴대성이 높은 작은 크기다. 그래서 캠핑, 등산 등 야외활동에서도 활용도가 좋다는 것이 장점이다.

아이스크림 브랜드 나뚜루는 기존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절반 이상 줄인 미니 사이즈 제품을 선보였다. 지름 7~8㎝ 크기의 '글라세 타르트 케이크'는 성인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다. 오리온도 미니 젤리를 10g씩 소포장해 담은 '과즙팡 꼬물탱 미니' 젤리를 온라인 전용으로 선보였다.

심지어 외식을 대신할 수 있는 1인분 밀키트도 나왔다. 이랜드는 지난 10월 애슐리 홈스토랑 1인분 파스타 밀키트 '퀵 앤 이지 1인용 파스타 밀키트' 3종을 출시했다. '애슐리 봉골레 크림 빠네 파스타'는 누적 판매량 40만 개를 돌파한 대표 제품을 기존 2인용에서 1인용으로 용량을 줄인 제품이다.

CJ제일제당도 제주항공과 협업해 '제주 미식 여행' 테마의 1인용 사각 피자인 '거멍 화산섬 피자'를 출시했다. 까만 도우에 땅콩 소보로와 페퍼로니, 모차렐라 치즈가 토핑으로 올라가 화산섬을 형상화했다. 혼자는 한 번에 남김없이 먹기 어려웠던 피자의 단점을 해결한 1인용 미니 사이즈 피자다.

◆먹방 지고 소식 마케팅이 뜨는 이유?

유통업계에서는 소식 마케팅이 뜨는 이유로 그동안 푸짐하게 차려 한꺼번에 많이 먹는 기존 먹방에 소비자가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고 분석한다. 여기에 때맞춰 가볍고 천천히 골고루 먹는 게 더 건강하고 친환경적인 식습관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식음료 업계도 발맞춰 변신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소식이 주목받는 배경으로 고물가를 꼽는 견해도 있다. 고환율·고금리·고물가의 3고(高) 탓에 먹거리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필요한 만큼만 구매하는 소비자가 늘었다. 결국 생활 물가 상승으로 가격 민감도가 커진 만큼 소비 흐름이 과시형에서 씀씀이를 줄이는 절약형으로 옮겨간 영향이라는 해석이다.

고메 거멍 화산섬 피자. CJ제일제당 공식몰

실제로 소식좌 박소현은 "하루 식비는 1만원 수준"이라고 밝힌 반면, 대식가 유튜버 히밥은 한 달 식비가 1천만원에 육박한다.

더불어 환경오염에 대한 인식도 점차 높아지면서 음식 낭비를 지양하자는 흐름 역시 소식 트렌드와 맞물렸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1인 가구는 음식을 구매하면 버리는 양이 너무 많고 밀키트도 2인 이상으로 나온다"면서 "MZ세대를 중심으로 가치소비 문화가 확산하면서 버려지는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버리는 음식 없이 한 끼에 먹기 적절한 양을 담은 '소포장 상품' 등 용량 선택 폭이 넓어지는 추세"라고 전했다.

◆소식, 정말 건강에 괜찮을까?

그렇다면 소식이 건강에는 정말 도움이 될까?

예부터 건강하려면 적게 먹고 많이 씹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음식 섭취 방식은 어떤 음식을 어떤 방식으로 얼마만큼 섭취하느냐가 건강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뜻한다.

소식은 필요 칼로리의 70~80% 정도의 적은 칼로리의 음식을 섭취하는 식사법이다. 소식하면 사용하지 않는 잉여 에너지가 몸 안에 쌓이는 것을 막게 되면서 비만을 예방할 수 있다.

쁘띠 컵밥 2종. GS리테일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비만을 '질병'으로 분류한다. 소식은 비만뿐 아니라 일반 질병을 예방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 의과대학 월터 윌렛 박사가 2002년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소식이 2형 당뇨를 90%, 관상동맥질환을 80%, 심장마비를 70%, 대장암을 70%를 예방한다.

반면 소식을 주의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청소년기는 풍부한 영양 섭취를 통해 성장 에너지를 확보해야 한다. 필수 영양소를 고려하지 않고 소식을 하면 키가 크지 않는 등의 성장 발달 지연이 오거나 뼈가 약해져 골다공증이 발생할 수 있다. 또 에너지가 부족해 몸속 면역체계가 약해질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대사 능력이 약해져 각종 감염병에 걸리기 쉬운 70대 이상 노인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면 대사기능이 떨어져 음식물을 많이 섭취해도 몸이 영양소를 흡수하는 비율이 크게 줄어든다. 중년층과 같은 양을 먹어도 에너지로 쓸 수 있는 양이 적은 것이다. 따라서 노인은 소식보다는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여 에너지를 공급하는 데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