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염색공단과 검은 거래했다" 리베이트 업체 폭로

입력 2022-12-01 16:05:16 수정 2022-12-01 19:22:28

비자금 재판 과정서 양심고백
2010년 대구염색공단 내 무더기로 매립된 유연탄 채굴 발단
유연탄 채굴 과정서 공단과 채굴 업체 짬짜미로 공사 금액 부풀려
리베이트 제공 의혹 업체 "염색공단 간부 거짓진술 강요해"
위증 선언 판결 바뀔지 관심

대구염색산업단지관리공단 전경. 대구염색산업단지관리공단 제공
대구염색산업단지관리공단 전경. 대구염색산업단지관리공단 제공

"지금은 퇴직했지만 지난 2019년에 근무한 염색공단 간부가 제게 거짓 진술을 강요했습니다."

지난달 17일 대구지법 서부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임동한)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선 대구의 한 유연탄 채굴업체 전무 A씨의 양심선언 중 한 대목이다.

이날 재판에선 지난 2010년 대구 서구 염색산업단지관리공단 내에 무더기로 매립된 유연탄을 채굴하는 과정에서 매립량을 조작 및 은닉한 혐의를 받는 염색공단 전 이사장 등 간부들에 대한 결심 공판이 진행되고 있었다.

법정에 선 A씨는 "거짓 진술의 대가로 추후 변호사 수임료 등 1억3천800만원을 보전해준다고 해서 죄를 뒤집어썼다"며 "하지만 3년이 지나도 돈을 주지 않아 더 이상 거짓진술을 할 필요를 못 느꼈다"고 고백했다.

13년 전 대구염색공단 주변에 매립된 유연탄을 채굴하는 과정에서 염색공단 전 간부들이 리베이트 업체에 돈을 빌미로 허위 자백을 유도한 정황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재판에 넘겨진 공단 전 간부들은 줄곧 혐의를 부인해왔지만 업체 관계자의 양심선언에 따라 파장이 일고 있다.

◆2009년 염색공단 유연탄 매립사건, 무슨 일?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09년 염색공단 유연탄 매립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시민단체 제보로 염색공단 내 지하에 1만6천900톤(t)의 유연탄이 무더기로 매립된 사실이 알려지자 염색공단 측은 2010년 2월까지 유연탄을 모두 채굴해 연료로 사용하기로 했다.

시간은 흘러 지난 2017년 염색공단 전 회계팀장인 B(61) 씨로부터 염색공단이 유연탄 채굴업체와 비자금 조성을 위해 공사 금액을 부풀렸다는 내부 폭로가 나왔다. 당시 진행된 채굴 공사 금액(5억2천여만원)이 터무니없이 많았다는 것이다.

B씨는 "채굴비용은 넉넉하게 잡아도 1억원이 되지 않는다. 염색공단이 채굴 장비와 트럭 운행 횟수 등을 조작해 비자금을 조성하기로 마음먹고, 수의계약을 맺은 특정 유연탄 채굴업체에 허위 계산서를 발행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B씨는 2017년 대구 서부경찰서에 업무상 석탄 횡령 혐의로 염색공단 C 전 이사장을 고발했다. 이후 2019년 B씨는 대구지검 서부지청에 C 전 이사장과 공단 간부 3명, 보험사 직원 1명을 매립탄 횡령과 보험 리베이트 혐의로 추가 고발했다.

1일 대구염색산업단지관리공단 정문 앞에 공단 노조 측이 내건 현수막. 노조 측은
1일 대구염색산업단지관리공단 정문 앞에 공단 노조 측이 내건 현수막. 노조 측은 "전문 경영진을 도입해 이사장 등 간부들이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는 일이 앞으로는 없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배주현 기자

◆유연탄 채굴업체 직원 폭로, 추후 재판은?

거짓 자백을 한 A씨는 지난 2019년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가장 먼저 선고받았다. A씨가 유연탄 채굴 당시 부풀린 비용를 염색공단에 청구했고, 공사대금 명목으로 1억3천800만원을 중간에서 가로챈 혐의가 적용됐다. B씨가 주장한대로 공사대금 부풀리기가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문제는 부풀린 공사 대금이 어디로 흘러 들어갔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 2020년 업무상 배임 및 배임 수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C 전 이사장과 공단 간부 등은 "매립량을 조작한 적이 없고 돈과 매립탄을 횡령한 적도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관련 재판은 2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A씨의 위증 고백에 따라 재판 흐름이 뒤바뀔지 관심이 쏠린다. A씨는 매일신문 취재진에 "C 전 이사장과 함께 기소된 염색공단 간부 중 한 명이 나에게 돈을 전달해달라고 해서 몇 회에 걸쳐 총 1억3천800만원의 돈을 전달한 것 뿐"이라고 추가로 밝혔다.

반면 A씨의 폭로에도 염색공단 간부들은 "염색공단을 투명하게 경영하고자 노력했으며 부정한 방법으로 개인의 이익을 취한 바 없다"고 최후 진술했다. 재판이 끝난 뒤에도 C 전 이사장은 매일신문과의 통화에서 "A씨가 돈을 빼돌린 사실도 몰랐고 그 돈이 어디에 쓰인 줄도 모른다"며 "난 바른 일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이날 결심 공판에서 염색공단 전 이사장 등 피고인 5명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염색공단 피고인들에 대한 판결 선고는 내년 1월 12일에 진행된다. 염색공단 노조 관계자는 "전문 경영진을 도입해 이사장 등 간부들이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는 일이 앞으로는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