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청와대 답사기

입력 2022-11-11 20:01:11

이대현 논설실장
이대현 논설실장

지난주 재구상주향우회 회원들과 함께 개방된 청와대를 다녀왔다. 주말 청와대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청와대가 넓다는 데 놀랐다.

공간적으로는 넓지만 대통령과 가족이 거주하는 관저 등을 보면서 폐쇄적이란 느낌을 받았다. 본관에서 멀리 떨어진 관저는 북악산 밑에 웅크리고 있었다. 공간이 정신을 지배한다고 했다. 폐쇄된 관저에서 생활한 탓에 대통령들의 사고가 폐쇄적이 됐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저 뒤편을 돌면서 열린 창문으로 옷장이 보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옷 문제가 도마에 올랐던 터여서 옷장에 관심을 보이는 관람객들이 적지 않았다.

1993년 철거된 옛 청와대 자리엔 '청와대 구 본관 터(경무대)'란 표지만 남아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역대 대통령들의 흔적이 깃든 공간이 사라진 데 대한 아쉬움이 들었다. 일제가 세웠다고 하지만 옛 청와대 건물도 엄연한 역사의 공간이었던 만큼 보존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란 생각에 이르게 됐다.

개인적으로 청와대 방문에서 가장 상념이 많았던 곳은 두 곳이었다. 우선 충무실. 대통령이 장관이나 수석 등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던 곳이다. 인사에 실패한 대통령들이 적지 않았던 만큼 충무실을 둘러보면서 대통령 인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다른 한 곳은 관저에서 오운정으로 올라가는 산길이었다.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근거 없는 논리를 내세운 세력을 중심으로 촉발한 2008년 광우병 사태 때 이명박 전 대통령이 광화문 앞 촛불을 보고 노래 '아침이슬'을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는 곳이다. 대통령은 고독한 존재이지만 나약한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함부로 눈물을 흘려서도 안 된다. 서독을 방문했을 때 독일에서 일하던 광부들, 간호사들과 함께 흘린 박정희 대통령의 눈물이 대통령다운 눈물이었다. 관저 뒤편 산길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의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지 오랫동안 상념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