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경찰서 안전 우려 보고서, 참사 일어나자 삭제 됐다

입력 2022-11-06 17:18:56 수정 2022-11-06 20:00:18

또 한번 바닥 치는 경찰 신뢰도…기동대 사고 85분 뒤 도착
마약 단속에 인력 몰린 탓…지휘부 보고 체계도 붕괴
서울청 간부들 늑장 출근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희생자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술잔을 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희생자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술잔을 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를 둘러싼 부실 대응이 끝없이 터져나오면서 경찰 신뢰도가 또 한번 바닥으로떨어졌다.

이태원 참사 당시 경찰 지휘부의 늑장 보고와 무능이 인명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핼러윈 기간 안전사고를 우려하는 내용의 용산경찰서 내부 보고서가 작성됐다가 이태원 압사 참사 이후 삭제된 정황도 포착됐다.

여기에 혼잡 경비를 담당하는 경찰 기동대는 참사가 벌어진 지 1시간이 지나서야 처음 현장에 도착한 것으로 드러났다. 예년과 달리 기동대를 현장에 미리 배치하지 않았고 마약 단속을 위한 형사 인력만 배치하면서 대응이 늦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용산서 '안전 우려' 보고서 삭제 의혹

6일 경찰에 따르면 용산경찰서 정보관들은 이태원 핼러윈 축제를 앞두고 '안전 우려' 정보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인파가 몰려 안전사고가 우려된다는 내용의 보고서는 참사 이후 삭제됐고, 서울경찰청을 비롯한 상부에 전달되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 특별수사본부는 지난 2일 용산서 정보과를 압수수색해 확보한 자료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정황을 파악했다.

특수본은 용산서 정보과 간부들이 일선 정보관들의 안전사고 관련 보고를 묵살한 책임을 피하기 위해 증거인멸을 시도한 것으로 보고 구체적인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다.

◆사고 1시간 25분 지나서 기동대 현장 도착

6일 서울경찰청이 더불어민주당 이태원 참사 대책본부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밤 10시 15분 사고 발생 이후 경찰 기동대 5개 부대가 현장에 투입됐다.

처음 도착한 곳은 11기동대다. 사고 발생(오후 10시 15분) 1시간 2분 뒤인 오후 11시 17분 11기동대가 용산경찰서의 출동 지시를 받고 오후 11시 40분 현장에 도착했다. 11기동대는 사고 당일 용산 일대에서 열린 집회 관리에 투입됐다가 집회가 끝난 오후 8시 40분부터 야간, 거점 시설 근무를 하고 있었다.

이태원 참사 당시 현장 인근에 경찰 형사인력도 배치됐으나 사고 발생 29분 뒤 현장에 투입됐다. 경찰은 참사 당일 핼러윈을 앞두고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와 용산·동작·강북·광진경찰서 소속 10개 팀 52명의 형사인력을 이태원에 배치했다

이들은 이태원파출소·119안전센터·이태원로·세계음식문화거리 등에서 클럽 마약류 점검·단속과 순찰 활동을 했지만, 정작 마약 단속은 '0건'이었다.

◆지휘부 늑장 보고가 원인

기동대 및 현장 경찰 투입이 지체된 이유는 지휘부 보고체계가 붕괴된 탓이다. 이태원 참사 당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뿐 아니라 서울청 주요 간부들은 사고 발생 약 3시간이 지나서야 청사로 출근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청장은 사고 당일 오후 11시 34분쯤 걸려온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의 전화를 세 차례 연속 받지 못했고 2분 뒤 네 번째 전화를 받고서 사고를 인지했다. 그가 참사 현장을 찾은 것은 사고 발생 약 2시간 10분 뒤인 오전 0시 25분쯤이었다.

김 청장뿐 아니라 서울청 다른 주요 간부들도 뒤늦게 사고를 인지했다.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실이 서울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지휘부 출입 기록' 문건에 따르면 서울청 간부들은 사고 발생 후 일러야 3시간, 늦게는 5시간 30여 분 뒤 청사로 출근했다.

천 의원은 "서울경찰청의 총체적 부실 대응이 이태원 참사 피해를 키운 원인"이라며 "지휘부의 공직 기강이 완전히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기동대 미리 현장 배치했어야"

기동대를 현장에 미리 배치하지 않은 점도 의문이 나오는 대목이다. 핼러윈 기간 각종 단속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유흥가에 기동대가 투입된 예년과 달리, 올해는 현장 인력운용 계획에서 제외돼 신속한 투입이 어려웠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민주당 이성만 의원이 서울경찰청에서 제출받은 '2021년 핼러윈 데이 클럽 등 유흥시설 집중 점검·단속 계획' 문건에 따르면, 지난해 핼러윈 기간에는 유흥시설이 밀집된 마포·용산·강남·서초 등에 경찰 기동대를 배치했다. 2020년 핼러윈 기간에도 강남역·이태원·홍대 등 3곳에 경찰 기동대가 투입됐다.

반면 올해는 기동대 없이 일선 경찰서 형사과와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강력범죄수사대만 투입됐다.

결국 경찰이 잘못된 예측에 기반해 계획을 수립한데다 지휘부 부재로 현장 대응도 안이하게 해 대참사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