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 지음/ 문학동네 펴냄
"나는 저 사람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 좋았다. 모르고 있고 모르는 와중인 것이. 하나를 알아도 그 다음이 축적되지 않았다. 그런 사람을 아는 게 즐거웠다. 아니 모르는 일이 즐거웠다."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화진 작가의 첫 소설집이 출간됐다. 표제작 '나주에 대하여'를 비롯한 단편 여덟 편을 묶었다. 저자는 민음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며 창작과 편집을 병행하고 있다.
이번 소설집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타인의 마음'이다. 그러나 알고 싶어서 온갖 노력을 해도 쉽게 가닿을 수 없는 게 그 마음이다. 대부분은 이 지난한 과정에 지쳐 떨어져 나가거나, 타인의 마음을 알게 되더라도 상처받고 낙담한다. 그러니까 남의 마음을 읽는다는 건 집요함과 용기를 모두 갖춰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이야기는 나의 마음과 너의 마음 사이를 오가는 진자운동처럼 보인다. 맞닿은 시간보다 맞닿기 위해 오가는 움직임이 더 크고 많은 것이 소모되지만, 그 찰나를 위해 반복하는 진자운동.
등장인물들은 누군가에 대해 하염없이 생각한다. 설령 알고 싶은 그 사람이 지금 내 옆에 없다고 해도 말이다. 책의 첫 문을 여는 '새 이야기'는 주인공의 환상적인 상상을 통해 '좋아하는 마음'이 무엇까지 될 수 있는지를 우리 앞에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만화를 그리는 '진아'는 빈티지 옷가게의 영화 상영회에서 만난 '천희'를 좋아한다. 얼마간 이어지던 두 사람의 관계는 천희가 파를 심은 화분 하나만 선물로 남긴 채 도쿄로 떠남으로써 끝난다. 그러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여기야…." 실연의 아픔을 겪고 있는 진아에게 말을 거는 파. 그렇게 진아는 말하는 파와 함께 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파는 천희가 사실은 사람이 아니라 진아를 좋아해서 사람이 된 청둥오리라는 얘기를 한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오가는 전개에 독자들이 혼란을 느낄 때쯤, 진아는 더없이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건 '매듭지어지지 않는 사랑'이 끝까지 미완성인 채 남겨지길 원하는 마음이었다.
"나는 그때, 천희가 떠나간다고 했을 때, 슬픔과 동시에 안도감을 느꼈다. 올 것이 오고 말았다는 생각. 상대방이 떠나갔으므로 이제 나 혼자서 맘껏 이 마음을 부숴보고 분류해보고 들여다볼 수 있다는 설렘. (중략) 천희를 만나고 나는 몇 번이고 다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다시 뭔가를 하는 이야기. 이왕이면 내가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도 나를 사랑하는 이야기."

표제작이자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나주에 대하여'는 출판사에 근무하는 '김단'이 같은 회사 신입 여직원인 '나주'를 관찰하는 모습을 그린다. 나주는 김단의 연인이었던 규희의 전 여자친구다. 규희는 약 1년 전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나주는 이 사실을 모른다.
김단은 나주가 같은 회사에 다니기 시작한 그 이전부터, 그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염탐해왔다. 블로그,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SNS를 통해 나주를 알아가는 게 삶의 일부가 된 김단. 남들에게 티를 내지 않지만, 나주가 도드라지는 광대뼈에 콤플렉스가 있다는 점이나 최근 본 영화나 좋아하는 책은 무엇인지까지. '입덕'이라도 한 것처럼 나주에 관한 모든 것을 찾아보던 김단은 나주에 강한 호감까지 느낀다.
"나는 네가 왜 좋았을까. 그저 규희의 전 애인이라서? 규희가 너를 자기가 만났던 어떤 사람보다 완벽한 파트너라고 평했기 때문에? 그런 말을 남기고 규희가 죽어버려서? 규희는 죽고, 규희를 공유했던 너만 남아 있어서?"
결국 김단이 나주에 집착하는 것은 규희의 흔적을 찾는 일과 다름 아니다. 이는 지난 상처를 헤집는 방식이었지만, 아픔을 피하기엔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가 너무 컸다. 그렇게 규희에 대한 애도와 그리움, 나주에 대한 알 수 없는 호기심과 미움, 애정은 한데 뒤섞여 낯선 색채와 모양을 띤 마음이 된다. 312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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