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미사일 사이렌에…울릉주민은 '참사 애도' 묵념하기도

입력 2022-11-02 16:19:06 수정 2022-11-02 21:51:01

울릉군 공습경보 매뉴얼 없다…발령 한참 지나 안내 문자 받아
민방위 기관이 자동으로 울려…영문도 몰라 일상생활 이어가
11분 뒤에서야 앱으로 알려…학생들 지하 아닌 운동장 대피

울릉도 전경. 울릉군 제공.
울릉도 전경. 울릉군 제공.

북한 미사일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울릉도 방향으로 날아오면서 경북 울릉군에 미사일 공습경보가 내려졌지만, 지역민들 상당수가 영문을 몰라 일상생활을 이어가는 등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다행히 미사일이 섬에 닿기전 바다에 떨어져 피해는 없었지만, 만의 하나 위협상황이 연출됐을 땐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어 비상상황 매뉴얼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오전 8시 55분쯤 울릉군 전역에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렸다. 훈련 상황 등 예고되지 않은 사이렌에 군민들은 그 이유를 알지 못했고, 공무원들조차도 사태 파악을 하느라 우왕좌왕했다.

공무원 A씨는 "우리도 사이렌이 울리고 얼마 후에야 북한 미사일 때문에 경보가 울렸다는 걸 알고 지하로 대피했다"며 "오전 9시 8분쯤 사이렌 소리가 멈추고 난 후에도 상황을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했다.

일부 주민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기 위해 사이렌이 켜진 줄 알고 묵념하기도 했다.

사동 주민 B씨는 "상황에 대한 설명 없이 사이렌만 울리다 보니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는 줄 알았다. 미사일 때문인 것인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이런 혼란이 야기된 것은 공습경보에 즉각적으로 대비할 매뉴얼을 울릉군이 갖추고 있지 않고, 심지어 이와 관계된 훈련도 제대로 진행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울릉군 등에 따르면 공습경보 등 위기 상황에 대한 매뉴얼은 행정안전부의 지침을 따를 뿐 지역 특색에 맞게 설계된 것은 없다.

이렇다보니 분초를 다투는 실제 상황에서 민방위시설을 통해 사이렌이 울리고 난 뒤 울릉군이 그 이유를 알게되기까지 6분의 시간이 지났다.

이어 경보 이유가 울릉군수에게 보고되고 관계 공무원들이 소집돼 비상회의가 열리기까지는 18분이 더 흘러야 했다.

울릉군이 회의 이후 주민에게 스마트폰 '울릉 알리미' 앱을 통해 공습경보 이유를 북한 미사일 때문이라고 알린 건 이날 오전 9시 19분으로, 이 때는 이미 공습경보 사이렌이 꺼진 지 11분이나 지난 후였다.

울릉군청사 전경. 매일신문 DB
울릉군청사 전경. 매일신문 DB

이런 늑장 대처는 학생들의 안전도 위태롭게 했다. 학생들은 공습경보 속에서도 학교에서 나오지 않거나, 나왔어도 지하시설이 아닌 운동장에 집결했다.

울릉교육지원청 관계자는 "갑작스레 경보가 울려 학교들이 상황 파악을 하지 못했다. 군청에 전화를 했어도 '상황 파악 중'이라는 말만 들어야 했다"며 "어떤 학교는 학생들을 대피시키려는 시도를 하긴 했지만, 장소가 운동장이었다. 그만큼 정보가 없었고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고 했다.

도동 주민 C씨는 "실제 상황이었다면 영문도 모른 채 큰 화를 입을 뻔했다. 한국, 울릉군의 재난 매뉴얼이 얼마나 허술한지 단적으로 보여준 예"라며 "지난 8월 전쟁 등 비상상황을 가정한 '을지훈련'을 치렀으면서도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건 매우 실망스럽다.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이날 오전 북한이 쏜 미사일 3발 중 1발은 울릉군 방향으로 가다가 섬에 닿기 전 동해 북방한계선(NLL) 이남 공해상에 떨어졌다.

미사일 최초 포착 당시 방향이 울릉 쪽이어서 탄도탄 경보 레이더 등과 연계된 민방위 관련기관이 공습경보를 자동으로 발령했다.

공습경보는 2016년 2월 7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직후 서해 최북단 백령도와 대청도에 발령된 지 6년만이다.

※2일 오전 울릉군 공습경보 시간별 상황(울릉군 제공)

(오전)8시 55분 중앙민방위통제센터 울릉군 공습경보 발령

9시 1분 울릉군 상황전파메신저(NDMS) 공습경보 발령

9시 2분 울릉군수 보고

9시 15분 울릉군수·부군수 안전건설과 비상회의 소집

9시 19분 울릉군수·부군수 비상회의 실시·울릉군알리미 주민 지하시설 대피 안내 발송

9시 21분 행정안전부 경보통제소 및 도 경보통제소 대피명령 해제 문의

9시 36분 울릉읍·면사무소 마을방송 안내 협조 요청

9시 40분 서면사무소 1차 마을방송 실시

9시 41분 울릉군 민방위 경보시설 1차 주민안내 실시

9시 45분~58분 울릉읍사무소 1차 마을방송 실시

9시 51분 북면사무소 1차 마을방송 및 서면사무소 2차 마을방송 실시

9시 53분 울릉군 민방위 경보시설 2차 주민안내 실시

10시 10분~10시 50분 울릉군 재난상황대책본부 소집 및 비상회의 실시

10시 55분 군수지시사항 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