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의 '코로나 끝나면 가고 싶은 그 곳'] 영국 런던

입력 2022-10-05 13:41:54 수정 2022-10-05 20:16:00

왕들의 거주지·집무실 역할한 버킹엄 궁…웨스터민스터 사원엔 왕과 위인들 잠들어 있어
템스강 런던탑은 왕위 찬탈·가족 상잔의 장소…현재는 전쟁박물관으로 사용 돼
세계 최대 크기 관람차 런던 아이, 런던 전경 내려다 볼 수 있어

타워브릿지는 개폐가 가능한 도개교로 양쪽에 고딕 양식의 거대한 탑이 자리한다.
타워브릿지는 개폐가 가능한 도개교로 양쪽에 고딕 양식의 거대한 탑이 자리한다.

나무들이 풀빛을 지워간다. 이제 수피(樹皮)가 검게 두꺼워지면 한없이 가을은 깊어갈 것이다. 가을 하늘, 하얀 뭉게구름이 먼지 낀 차창 밖으로 선명하다. 날 좋은 런던 하늘에서 보던 웨지우드 블루(Wedgwood Blue)다. 아, 갑자기 지금의 런던이 어떨지 궁금하다. 여왕이 없는 궁전은 많이 쓸쓸할까.

템스 강 위로 날던 그 흰 새는 아직도 괜찮을까. 버킹엄 궁의 로열 스탠더드 깃발은 이제 엘리자베스 2세가 아니라 찰스 3세의 머묾에 따라 걸리거나 내려질 테고 근위병들은 여전히 궁전의 열쇠를 주고받는 교대식을 하고 있을 것이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듯 지난 9월, 런던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표표히 떠났고 새로운 왕 찰스 3세가 즉위했다.

◆웨스터민스터 시티

버킹엄 궁은 원래 1703년 버킹엄 공작이었던 존 셰필드가 지은 775개의 방이 있는 대저택이었다. 1762년 조지 3세가 왕비와 아이들을 위해서 구입하면서 왕실의 건물이 되었다. 그 후 조지 4세가 개축을 시작했지만 궁전이 완성되기 전에 죽었고, 1837년에 당시 18세였던 빅토리아 여왕이 세인트 제임스 궁에서 버킹엄 궁으로 집무실과 런던 공식 거주지를 이전해 오면서 이후 역대 왕들의 거주지와 집무실이 되었다.

버킹엄 궁은 역대 왕들의 집무실이다.현재 매일 시행되는 전통 복장의 근위병 교대는 버킹엄궁전의 명물이다.
버킹엄 궁은 역대 왕들의 집무실이다.현재 매일 시행되는 전통 복장의 근위병 교대는 버킹엄궁전의 명물이다.

버킹엄 궁 앞엔 고풍스러움이 아름다운 신고딕 양식의 국회의사당과 런던뿐만 아니라 영국의 랜드마크인 빅 벤 그리고 대부분의 영국 왕들과 여왕들처럼 지난 9월 엘리자베스 2세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11세기 참회왕 에드워드가 노르만 양식으로 착공, 헨리 3세에 의해 개축된 성공회 성당인 웨스터민스터 사원은 정복왕 윌리엄의 대관식을 치른 이래 천년 넘게 에드워드 5세, 8세를 제외한 영국의 모든 왕의 대관식과 결혼식,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그곳에는 또 처칠, 글래드 스톤, 셰익스피어, 헨델, 워즈워스, 찰스 디킨스, 뉴턴, 다윈, 스티븐 호킹 등 나라를 빛낸 정치가들과 예술가, 과학자들도 왕들과 함께 잠들어 있다. 영국의 성당 중 가장 높은 본당과 16세기 초 지어진 아름다운 직립식 천장으로 유명한 헨리 7세 예배당, 사원의 역사가 그려진 대형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빛이 들어오는 팔각형의 챕터 하우스 등은 유럽 사원 중에서도 백미로 꼽힌다.

◆템스 강가에서

템스 강가에서 나는 내가 떠나온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공항에서 비행기에 짐을 실을 때까지 다퉜던 가족이 걱정이 되어서였다. 벨은 계속 울렸으나 받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을 고스란히 안고 런던 탑으로 갔다. 템스강 북안의 런던탑은 영국 왕실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이다. 1483년 13세 때 즉위한 에드워드 5세 형제를 리처드 3세가 탑에 유폐시켰다가 왕위를 찬탈하고 암살해버린 가족 상잔의 비극적인 장소였다.

더군다나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이며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인 앤 불린과 레이디 제인 그레이를 참수한 곳이며, 사상가 토마스 모어, 추기경 울지의 유폐 등 셰익스피어의 연극이나 영화, 드라마로 수없이 재해석되고 재현되는 드라마틱한 곳이다.

런던탑은 10여 개의 탑과 성벽으로 이뤄진 건축물. 왕의 거처, 요새, 왕족과 귀족들의 처형장 등으로 사용되었다.
런던탑은 10여 개의 탑과 성벽으로 이뤄진 건축물. 왕의 거처, 요새, 왕족과 귀족들의 처형장 등으로 사용되었다.

현재 전쟁박물관으로 이중 성벽 사이의 중세 대포를 그대로 둔 채 당시의 각종 무기들을 전시해 두고, 놀랍게도 그 피비린내나는 비극이 점철된 현장에 영국 왕실 보물관도 함께 두어 세상에서 가장 큰 530캐럿의 다이아몬드를 비롯 왕관과 홀, 검 등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헨리 8세와 앤 불린은 우리의 숙종과 장희빈에 비견되는 참혹한 영국판 러브 스토리다.

다시 버스를 타고 우리 현대와 삼성의 거대한 광고판이 번쩍이는 원형 광장 피카딜리 서커스에서 옥스포드 서커스까지 런던 최고의 쇼핑거리인 리젠트 스트리트를 지나면 버버리, 햄리, 워너브러더스 샵, 디즈니 샵, 리바이스, 로라 애슐리, 오스틴 리드, 예가 등 유명 브랜드 매장이 휙휙 스쳐가는 광장을 지난다. 1875년 설립되었다는 영국의 가장 오래된 리버티 백화점도 일별하며 지나며 헤롯백화점은 어디쯤이지 두리번거리다가 영국 박물관 앞에서 버스를 내린다.

한때 대영 박물관(The British Museum)으로 불리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이다. 1753년 왕립 학사원장을 지낸 의학자 한스 슬론 경이 남긴 수집품과 왕실에서 가지고 있던 콜렉션이 더해져 설립되었다. 작품이 많지 않던 초기에는 몬터규 후작 저택에 전시하다가 1824년 신고전 양식으로 지은 현재의 건물로 소장품들을 옮겨 왔다.

세계 3대 박물관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로마 등의 희귀 고고학 수집품들 그중에서도 이집트 미라와 로제타석, 람세스 2세의 석상과 그리스 신전 마블 부조물 등 과거 제국주의식 수탈 이력의 속죄와 그 보상이랄까 2000년대 초부터 관람료를 받지 않고 운영하고 있다.

영국을 상징하는 빅벤. 시계탑이 유명하다.
영국을 상징하는 빅벤. 시계탑이 유명하다.

◆천년 왕국, 밀레니엄 왕국

런던 아이(London Eye)는 21세기의 개막을 기념하기 위해 영국 브리티시 항공에서 세운 135m 높이의 세계에서 가장 큰 관람차로 마치 자전거 바퀴처럼 생긴 동그란 휠에는 32개의 캡슐이 달려 있는데 1개의 캡슐에 최대 25명까지 탑승할 수 있는데 우리 일행이 탔다. 한 바퀴 도는 데 30분,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면 런던의 모든 전경 40km까지 내려다 볼 수 있다. 게다가 해질녘이어서 노을이 아름다운 런던의 파노라마를 볼 수 있었다.

런던 아이에서 내려와 우리는 타워 브리지까지 여유롭게 산책을 하며 런더너들과 인사를 나누며 걸었다. 타워 브리지는 양쪽 끝이 들리게 되어 있는 도개교다. 1894년에 완공, 1976년까지는 증기력을 이용한 수압 펌프로 그 후로는 전동기로 작동하고 있다. 템스 강가에 앉아 타워 브리지를 바라보며 전화를 걸었는데 여전히 받지 않는다. 시간만 하릴없이 물 흐르듯 흐를뿐이다.

전화기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고개를 돌려보니 옥수수 모양의 현대식 돔으로 유명한 런던 시청이 눈에 들어온다. 온통 고풍스러운 런던에서 미래형 에너지 절약 친환경 건축물로 건물 전체가 유리로 이루어진 돔이라 일명 '유리 달걀'로 불리는 아름다운 건물이다. 최근 서울에 흡사한 건물이 생겼던데 아마도 동일한 건축가의 작품일 것이다.

◆웨스트 엔드에서 오페라의 유령을 보다

우리는 그날 쌕쌕버거로 저녁을 때우고 졸린 눈을 비비며 웨스트 엔드 '여왕 폐하의 극장'에서 오페라의 유령을 관람했다. 빠바바바밤~ 비몽사몽이랄까 베이커가 221B의 셜록 홈즈와 애비로드를 가로지르는 비틀즈와 킹스크로스 역의 9와 3/4 승강장에서 팬텀과 크리스틴 그리고 해리 포터와 헤르미온느가 함께 춤을 추는 환영을 보았다. 그날 밤 늦게 떠나온 곳에서 전화가 왔다.

박미영 시인
박미영 시인

박미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