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계 이시명 선생이 살며 조성된 '언덕 위 마을'
최초 한글조리서 '음식디미방'과 관련한 다양한 체험관 운영
소설가 이문열 씨 등 수많은 문인과 독립운동가 배출하기도
경북 영양군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여중군자로 불리는 장계향 선생이다. 장계향 선생의 일생에 대한 향취는 영양군 석보면 원리리에 있는 '언덕 위 마을'이란 뜻의 두들마을에 남아 있다.
장계향 선생이 남긴 최초의 한글요리책 '음식디미방'과 관련한 체험관과 고즈넉한 고택의 풍경을 모두 즐길 수 있다.
이곳은 1640년 인조 18년에 석계 이시명 선생이 병자호란의 국치를 부끄럽게 여겨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을 이루게 됐다. 이시명 선생의 부인이 장계향 선생이다.
◆학자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두들마을'
옛 고택의 모습을 고스란히 가진 두들마을은 석계 선생의 후손인 재령 이씨의 집성촌이다. 1899년 이곳에 국립병원 격인 광제원(廣濟院)이 있었다 해서 '원두들'이라 불리다가 '원리리'로 변경됐다.
두들마을에는 전통가옥 30여 채가 남아있고 1994년 정부로부터 문화마을로 지정받을 정도로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마을 옆 낮은 언덕에는 석계 선생이 살던 석계고택과 석천서당(石川書堂)이 자리하고 있다. 석계고택은 1990년 8월 7일 경북도 민속문화재 제91호로 지정된 380년이 넘는 유서 깊은 집이다.

석천서당은 이시명 선생의 넷째아들 항재 이숭일이 초당에서 강학을 하자 그의 뛰어난 학문에 매료된 선비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었고, 이숭일이 죽은 뒤 후손들이 선조의 뜻과 학문을 추앙하며 세운 곳이다. 이곳에는 안릉세전, 석계선생문집, 정부인안동장씨실기, 정묵제선생문집, 항제선생문집, 영천집과 같은 역사적 가치가 높은 목판 등이 소장돼 있다.
또 마을 앞으로 흐르는 지방하천인 화매천 주변 암석들에는 이숭일이 새겼다는 동대, 서대, 낙기대, 세심대 등의 글씨가 아직도 남아있어 볼거리를 자랑한다.
마을 내에 있는 주곡고택은 당시 산지 마을의 특성도 잘 보여준다. 'ㅁ'자 형 구조로 지어진 이곳에는 저장 공간이 많은 것이 특징인데 곡식을 안전하게 많이 저장하기 위한 구조로 전해진다.

마을은 일찍이 석계 선생이 이주한 후 크게 문풍이 일면서 많은 학자와 독립운동가를 배출해 관련된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조선시대에는 길암 이현일과 밀암 이재 등이 퇴계 이황 선생의 학문을 계승 발전시켜 후학에게 널리 전했고, 의병 대장을 지낸 내산(奈山) 이현규도 이 마을 출신이다. 유림 대표로 파리장서사건에 서명한 운서 이돈호와 이명호, 이상호 등 많은 독립운동가도 배출했다. 또 항일 시인인 이병각과 이병철, 소설가 이문열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아직도 이병각의 집인 유우당은 옛 모습을 고고히 보여주고 있다.
◆장계향 일대기 담긴 '장계향문화체험교육원'
지난 2018년에 문을 연 장계향문화체험교육원(이하 체험교육원)은 하나의 이름으로 담아내기에는 너무나 크고 아름다운 일생을 가진 장계향 선생을 바로 알 수 있는 곳이다.
서예가, 화가, 시인, 사상가, 교육자, 과학자, 사회사업가 그리고 어머니까지 주어진 삶을 오롯이 걸었을 뿐인데 시대의 한계, 성별의 굴레, 신분의 차이를 넘어 교훈과 감동으로 역사가 된 장계향 선생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체험교육원는 다양한 체험관들이 존재한다. 방문객들이 직접 옛 방식대로 음식과 전통주를 만들어 보고, 식사도 가능하다. 전통 예법에 맞는 우리의 다도 문화도 배울 수 있다.

유물전시관에서는 장계향 선생과 관련된 당시 복식과 사연 등도 소개돼 있다. 각종 분야에서 재능을 나타냈지만 이를 드러내지 않고 10명의 자녀를 모두 훌륭하게 키워내는 데 집중했던 장계향 선생의 다양한 사연들을 접하다 보면 어느새 숙연해지는 마음과 눈시울도 촉촉해진다.
모두 11개 관으로 구성된 체험교육원은 각각 다른 교육이 진행되고 코로나19 등 감염병 확산을 위해 철저히 관리·운영되는 만큼 사전 예약은 필수다.
체험교육원과 두들마을 사이에는 크고 많은 장독대와 음식디미방 체험관도 자리잡고 있어 자연스럽게 관람을 이어갈 수 있다.
탈무드 이야기 '나무 심는 노인'과 비슷한 일화가 두들마을에서도 벌어졌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난세를 겪던 시절 장계향 선생은 곳간을 열어 사람들에게 곡식을 나눠줬고, 많은 가족을 먹이고자 도토리나무를 심어 사람들에게 음식을 해줬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장계향 선생이 조성한 도토리 숲은 '도토리 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보전되고 있고 근방에는 도토리로 만든 음식이 아주 유명하다.

◆현대 문학의 거장 소설가 이문열의 고향
두들마을에는 문학인들의 발걸음도 끊기지 않는다. 이곳은 현대 문학의 거장이자 한국 문학사의 거목 등으로 일컫는 소설가 이문열 씨의 고향이기도 하다.
1948년 영양군 석보면 원리리에서 태어난 이문열 씨는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중퇴하고 1977년 단편 '나지레를 아십니까'로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가작으로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이후 다양한 작품활동을 이어가며 1980년대에 가장 많은 독자를 확보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문학 평론가들은 이문열 씨의 소설은 탄탄한 구성과 문장력이 우수하다고 평가한다. 대표작으로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젊은날의 초상', '시인과 도둑' 등 교과서에서 배웠던 작품들이 가득하다.

이곳 두들마을은 이문열 씨의 소설 '선택'의 직접적인 배경 장소이기도 하다. 아울러 '그해 겨울',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금시조', '황제를 위하여' 등 많은 작품 속 인물들의 삶의 역정이 펼쳐지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영양군은 문향의 고장으로도 불린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생가가 있는 일월면 주실마을과 서정적인 한글 시와 한시로 유명한 오일도의 생가가 있는 감천마을 등 다양한 문학인들의 발자취를 찾아보는 것도 영양 관광의 백미 중 하나다.
아쉬운 점은 두들마을 내에서 지난 2001년 문을 연 광산문학연구소 등 이문열 씨 관련 한옥 5개 동이 지난 7월 발생한 화재로 모두 전소했다는 것이다. 다행히 장계향문화체험교육원 유휴 부지에 조성돼 있는 이문열 문학관으로 자료들이 옮겨져 있기 때문에 큰 피해를 면했지만, 그의 손 때묻은 가구 등이 소실되는 일이 있었다.
두들마을의 재미있는 점은 마을 전체가 한옥으로 잘 보전된 곳인데도 불구하고 곳곳에 현대 조형물들이 어우러지게 조성돼 있다는 점이다.
1999년 국제슬로시티 운동(천천히, 느리게)이 시작된 이래, 영양군은 2017년 5월 슬로시티 연맹에 가입했고 두들마을에는 달팽이 모양의 조형물이 전시돼 있다. 또 대형 찻잔과 주전자 모형의 조형물과 소공원 내 포토존도 방문객들의 추억을 한껏 돋보이게 해주는 장소들이다.
댓글 많은 뉴스
'尹파면' 선고 후 퇴임한 문형배 "헌재 결정 존중해야"
안 "탈당해야" 김·홍 "도리아냐"…국힘 잠룡들 尹心 경계 짙어질까
이재명 "대구·경북의 아들 이재명, TK 재도약 이끌겠다"
전한길 "사전투표 규칙 개정해야…제2의 홍콩·베네수엘라로 몰락할 수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