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빌리 서머스

입력 2022-09-22 10:30:44 수정 2022-09-24 06:54:33

스티븐 킹 지음·이은선 옮김/ 황금가지 펴냄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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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서머스 1(스티븐 킹 지음·이은선 옮김/ 황금가지 펴냄)
빌리 서머스 1(스티븐 킹 지음·이은선 옮김/ 황금가지 펴냄)

세계 최고의 장르 소설가로 불리는 스티븐 킹이 신작 장편소설 '빌리 서머스'(전 2권)로 돌아왔다. '캐리', '샤이닝', '미저리' 등 호러 소설로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저자는 이번엔 공포나 오컬트(초자연적 현상) 색채를 배제하고, 누아르 스릴러를 선보인다. 전작들과는 다소 다른 분위기를 풍기지만, '이야기의 제왕'답게 이번 작품도 강렬한 흡입력으로 독자를 매료시킨다.

주인공은 미 해군 출신의 마흔네 살 청부살인업자, 빌리 서머스다. 그간 17번의 암살 의뢰를 성공한 베테랑 빌리는 단 하나의 신념만은 고수해왔다. 바로 '죽여도 될 만큼 나쁜 사람'만 상대한다는 것. 살인 이후 마음에 가책을 덜기 위한 방편이었다.

빌리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캐릭터다. 문학을 사랑하는, 치밀한 킬러라는 점에서 그렇다. 좋아하는 만화책 시리즈의 설정을 줄줄 꿰고 에밀 졸라와 윌리엄 포크너, 찰스 디킨스의 작품을 섭렵할 정도로 영민하지만, 본인의 판단에 의해 의뢰인들 앞에선 철저히 '바보 빌리' 행세를 한다.

소설은 빌리가 은퇴를 결심한 뒤 마지막 암살 의뢰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암살 대상은 그와 같은 청부살인업자, 성공 보수는 200만 달러. 빌리가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액수다. 첩보물에 흔히 등장하는 클리셰이기도 한 '이번이 마지막' 상황이다. 이 마법 같은 말만 나오면 늘 계획에 없던 변수가 갑자기 생기고, 돌발적인 문제에 부딪힌다. 빌리 역시 "영화에서 마지막 한탕은 항상 문제가 생긴다"며 찝찝해하지만, 엄청난 액수에 의뢰를 수락해버린다.

암살 대상을 처리하려면 법원의 인근 마을에 잠복해야 하는 상황. 의뢰인은 빌리에게 작가 지망생이라는 위장 신분을 부여한다. 장기간 거처에 머물러야 하는 상황. 빌리는 자신이 어릴 때부터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수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빌리가 쓰는 수기는 소설의 재미를 한층 깊게 만드는 장치다. 빌리가 어쩌다가 살인청부업자의 길로 들어서게 됐는지에 대한 서사를 뒷받침하면서도, 작문에 대한 저자의 고뇌를 투영하기 때문이다. 빌리는 어떻게 해야 이야기의 진행이 자연스러워지는지를 고민한다. 이미 써놓은 글을 수정하고 새로 쓰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몰랐고 심지어 고민한 적도 없는 부분이었건만, 그것이 글쓰기가 매혹적인 이유 중 하나다. 나를 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고 있잖아. 옷을 벗었어. 나를 드러내고 있어."

책은 글쓰기와 전혀 인연이 없던 인물이 작가로 변신하는 과정을 상세히 보여준다. 글쓰기에 대한 저자의 신념과 고민도 녹여낸 대목이다. 그는 책 출간 후 에스콰이어와 한 인터뷰에서 "나를 초심으로, 정말로 이야기를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걸 깨닫고 느낀 자유로움으로 되돌아가게 했다"며 "이야기를 쓸 수 있으며 자신의 일부를 드러낼 수 있다는 감각은 일종의 도취감과도 같다"고 말했다.

빌리는 이야기를 쓰면서 자연스럽게 잊고 살았던 기억을 떠올린다. 어린 시절 자신의 눈앞에서 여동생이 숨을 거뒀던 순간과 '첫 살인'의 기억. 군인 시절에 이라크에서 목격한 참상까지, 묻혀 있던 트라우마가 서서히 되살아난다. 그가 글쓰기에 진심이 되어버린 사이 의뢰에 숨어있던 음모가 모습을 드러내고 빌리의 '마지막 한탕'은 역시나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질주하기 시작하는데….

이 소설은 출간과 함께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할리우드가 사랑하는 작가답게 이 작품도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이다. 404쪽·424쪽, 각권 1만5천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