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훈포럼회장 김태열 (영남이공대 교수)
대구경북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왕산 허위, 이육사, 김동삼, 이상룡, 이상화, 이상정, 애산 이인 선생 등은 언론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갑성 선생의 경우 대구 출신으로 유일하게 2등급인 대통령장에 추서된 인물임에도 그 활동이나 큰 업적에 대해서 잘 모르는 시민들이 많다.
국가보훈처 공훈록에 근거해 이갑성 선생의 독립운동 활동을 살펴보자. 이 선생은 3·1운동 민족 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1886년 경북 대구에서 태어났다.
이 선생은 1919년 독립 만세운동 계획이 진행되자 서울 학생들이 시국의 추이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학교에서 영향력이 있던 학생들과 자주 만나 손병희 등이 주도하는 독립운동 계획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그러다 학생들이 따로 독립선언서를 만들어 독립선언을 할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듣고는 이를 중지하고 손병희 등이 주도하는 독립운동 계획에 참가할 것을 종용했다.
2월 28일 밤 손병희의 집에 모인 손병희·이갑성 등 민족 대표들은 당초에 독립선언 장소로 결정했던 파고다공원에 많은 학생들이 모이면 큰 혼란이 있을 것을 염려했다. 그래서 다시 그 장소를 인사동 태화관으로 정해 당일 이갑성으로 하여금 조선총독부에 미리 의견서를 제출한 뒤 회합 장소를 떠나지 않고 조용히 포박당하기로 약속했다.
이튿날인 3월 1일 민족 대표들은 태화관에 모였고, 이갑성 선생은 조선총독부에 미리 의견서를 제출하러 갔다가 체포돼 1920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 선생은 광복 후에는 여러 정당 단체의 고문으로 추대되었고, 1952년 10월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전시 내각 국무총리에 임명되기도 했다.
국가보훈처 공식적인 통계 자료에 의하면 대구 지역은 총 114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지역으로, 이갑성 선생은 1962년 정부로부터 공적을 인정받아 유일하게 건국훈장 2등급인 대통령장에 추서된 인물이다.
이처럼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 빛나는 공헌을 한 대구 출신 이갑성 선생의 명예를 대구시 차원에서 선양할 방안을 몇 가지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대구 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두류공원 인물 동산에 시민과 학생들의 보훈 교육 산실로 이갑성 선생의 흉상 및 공훈록 안내서 설치가 절실하다.
현재 인물 동산에는 백기만·이상화·이인성·현진건·최양해·박희광·우재룡·조기홍 선생만 있다. 그런데 이상화·박희광·우재룡 선생의 경우 각각 국가보훈처 건국훈장 3등급, 5등급으로 2등급인 이갑성 선생의 흉상 설치는 국가보훈학적 측면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기라고 보여진다.
둘째, 이갑성 선생의 독립운동 활동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보훈 학술 세미나 개최가 시의적으로도 필요하다. 대구시가 직접 이갑성 선생의 독립운동 활동과 보훈학적·역사적 평가 등을 주제로 전문가들을 초청한 심도 있는 학술 세미나를 열어야 한다
셋째, 보훈 교육의 주요 랜드마크로서 이갑성 선생 기념관 설립이 절실히 필요하다. 대구시가 지역 시민들이 주축이 된 기념관 설립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중장기적 계획을 수립하고, 늦어도 2027년에는 이갑성 기념관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필요한 예산을 연도별 단계적으로 확보하는 데 모든 역량을 기울여야 한다.
김근우 기자 gn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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