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과 자연이 빚어낸 사색의 시간…군위 '사유원'

입력 2022-09-06 10:46:38 수정 2022-09-06 18:04:34

건축물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조용한 공간…사색을 즐기기 안성맞춤

수백년을 산 모과나무 108그루가 전시된 정원
수백년을 산 모과나무 108그루가 전시된 정원 '풍설기천년'. 신중언 기자

경북 군위 부계면에는 산자락에 둘러싸인 수목원인 '사유원'(思惟園)이 있다. 법적으론 수목원으로 분류되지만, 단순히 여러 식물을 전시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이곳은 방문객들의 사유를 끌어내는 한국식 정원을 표방한다.

최근 기자는 범어도서관의 '길 위에서 사유(思惟)하다'라는 주제의 탐방 프로그램을 통해 사유원을 방문했다. 탐방은 사유원 조성에 힘을 보탠 윤광준 작가의 해설이 곁들여졌다.

사유원에 도착한 뒤 가장 먼저 마주하는 인공물은 붉은 코르텐강으로 만들어진 '치허문'(致虛門). 초입부터 '비움'의 의미를 곱씹게 된다. 도시에서 가져온 복잡함과 부산함을 덜어내고 들어오라는 것 같다. 일대는 한산하고 고요했다. 선선한 바람과 축축한 땅은 어느덧 찾아온 가을에 생생함을 더했다.

입구를 지나면, 가파른 꼬부랑길이 방문객들을 기다린다. 발걸음마다 형형색색의 꽃과 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렇게 20여 분 정도 걷다 보면 전망대 '소대'를 만날 수 있다. 포르투갈의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로 시자가 만든 건축물이다. 이곳에 오르면 사유원의 경치와 여러 건축물을 사방으로 조망할 수 있다. 20m 높이로, 15도쯤 기울어져 있는 모양새다.

소대에 다다르면 사유원은 꽁꽁 감춰두었던 의도를 슬며시 드러낸다. 잠망경처럼 우뚝 솟은 소대는 얼핏 보면 도드라져 보인다. 그러나 잠시 멈춰 서서 응시하면 생각이 바뀐다. 단조로운 외형과 바위, 나무 사이쯤 될 법만 색깔 덕분에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진다. 이런 조화는 자연물에도 해당하는 얘기다. 이곳에 자리잡은 나무와 바위는 대부분이 인위적으로 옮겨놓은 것들이지만, 하나 같이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양 자연스럽다.

사유원에서 만날 수 있는 전망대
사유원에서 만날 수 있는 전망대 '소대'. 알바로 시자의 작품 중 하나다. 신중언 기자

이러한 특징은 사유원에 마련된 여러 정원과 30여 점의 건축물에서 발견할 수 있다. 존재감을 과시하는 경우도 일부 있었지만, 다수의 건축물은 자연 풍경을 잘 감상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에 충실했다. 수백 년의 세월을 이겨낸 모과나무가 심어진 '풍설기천년'이나 한국 전통 방식으로 설계한 정자인 '사야정'의 경우가 더욱 그렇다. 멍하니 자연을 바라보면 일상의 분주함은 어느덧 아득하게 느껴진다. '나'를 잊고 한 자리에 머물러 고요한 사색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특히 대부분의 장소에서 팔공산의 수려한 능선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공간과 공간이 이어지는 데 막힘이 없어, 먼 산자락의 풍경도 정원의 일부처럼 즐길 수 있다. 한국의 고유한 정원 조성 기법인 '차경'(借景·외부 경관을 정원으로 끌어들이는 기법)의 철학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온갖 현대적인 건축물이 들어선 이곳이 한국식 정원으로 불리게 된 이유다.

사유원이 만들어진 배경도 알아두면 좋다. 조미료처럼 탐방의 즐거움을 돋운다. 사유원 설립자는 대구에 본사를 둔 중견기업인 태창철강의 유재성 회장이다. 30여 년 전, 유 회장은 300년 남짓 된 모과나무 4그루가 일본으로 밀반출된다는 소식을 듣고는 부산항으로 달려가 나무들을 사들였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귀한 나무를 수집했다. 그 규모가 커지자 2006년에 나무들을 옮겨심기 위해 이곳에 약 66만 ㎡(약 20만 평)가 넘는 땅을 사들였다. 이후 세계적인 건축가와 한국과 일본의 조경 전문가에 의뢰해 차근차근 가꾸어나간 게 지금의 사유원이 된 것이다. 이처럼 들어간 노력이 컸기 때문일까. 입장료는 주말 성인 기준으로 6만9천원이다. 점심과 저녁까지 먹는다면 20만원이 넘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 비싼 입장료지만, 누군가는 그 이상의 가치를 이곳에서 얻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