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학교] 경북고…경맥(慶脈) 정신으로 위기를 돌파하다

입력 2022-09-04 14:24:13 수정 2022-09-04 21:23:03

〈9편〉 지역 최고(最高) 의 공립고, 1916년 대구관립고등보통학교에서 연유
대구고보 뿌리에 깃든 달성학교·협성학교의 정신 이어 받아 '경맥'으로 탄생
대구 3·1운동 당시 등교생 전원이 참여, 학도의용군 전사자도 경북에서 가장 많아
경맥 정신에서 비롯된 동문 사랑, 경맥춘추 발간 등 동호회 활동도 활발

대구 경북고등학교 전경 사진. 대구시교육청 제공
대구 경북고등학교 전경 사진. 대구시교육청 제공

대구 경북고등학교 전경 사진. 대구시교육청 제공
대구 경북고등학교 전경 사진. 대구시교육청 제공

오래된 학교는 그 시간만큼 다양한 변화를 거쳐왔다. 일제강점기와 동족상잔의 비극 등 파란만장했던 역사 속에서 몸부림쳤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오랜 전통을 간직한 채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어떤 외부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는 경맥 정신을 통해 격동의 시대를 이겨낸 지역 최고(最高)의 학교 '경북고등학교'를 소개한다.

1916년 대구고보 전경. 대구시교육청 제공
1916년 대구고보 전경. 대구시교육청 제공
1916년 대구고보 입학생 기념 사진. 대구시교육청 제공
1916년 대구고보 입학생 기념 사진. 대구시교육청 제공

◆지역 관(官)과 유지의 합작으로 탄생한 근대교육기관

경북고의 시초는 1916년 설립된 대구관립고등보통학교(대구고보)다.

고등보통학교란 1911년 8월 일제가 공포한 조선교육령에 의해 세워진 중등교육기관으로, 대구고보는 서울의 경기고보, 평양의 평양고보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문을 연 고보이다. 경북고 교표에 있는 세 개의 흰선, 백삼선(白三線) 역시 3번째 고보로서의 역사적 가치를 나타내는 것이다.

대구고보의 뿌리는 지역 개화 지도층에 의해 1899년 7월 설립된 달성학교(현 경상감영 공원 내)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달성학교는 1895년에 대한제국이 제정·공포한 소학교령에 따라 경상감영 북문의 무너진 관아의 터에서 신문화를 받아들여 국난을 극복해야 한다는 동도서기(東道西器) 정신을 바탕으로 세워졌다. 최극창, 윤필오 등 10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대구 지역 유지들의 모금과 경상감영 직속 교육기관인 낙육재(樂齋)·양사재(養士齋) 소유전답을 재정적 기반으로 해 개교했다.

심상과, 고등과로 구성된 4년제 달성학교는 지방관과 지역 유지의 합작으로 탄생한 근대적 교육기관이었다.

그러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일제가 식민지화 과정에 맞춰 교육정책을 본격적으로 개편하기 시작하면서 달성학교도 변화를 겪게 된다. 달성학교의 심상과는 대구공립소학교로, 고등과는 1906년 개교한 협성학교에 각각 흡수된다.

이 협성학교는 대구 주민의 독립에 대한 열망이 담긴 재정으로 탄생한 학교였다. 일제에게 진 국가부채를 갚고, 국권을 지키기 위해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선 서상돈, 양기탁, 정재학, 서돈순 등이 모금액 중 일부를 자금으로 해 협성학교 설립에 보탰다고 한다.

설립에 참여한 대구 유림이 향교의 명륜당을 빌려 교사로 사용했고, 유림의 관할 하에 있던 양사재와 낙육재의 재산이 재정적 기반이 됐다는 점에서 전통적 교육과 근대적 교육의 맥을 이었다고 볼 수 있다.

1916년 4월 대구고보는 신입생을 선발하는 한편, 협성학교의 재학생과 물품을 인수하고, 협성학교 부속 건물을 가교사로 삼아 개교하게 된다.

이후 대구고보(1925년 4월1일), 경북중(1938년 4월1일), 해방 후 학제 변경으로 3년제 경북고(1950년 6월 25일, 경북중학교와 분리)로 분리되는 시대를 거쳐 1985년 지금의 황금동 교사의 경북고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잦은 학제 개편 과정을 거쳤으나 이러한 뿌리로부터 물려 받은 구국 정신과 선비 정신의 명맥은 경북고 학생들에게 변함 없이 이어져 왔다. 경북고는 이를 줄여 '경맥(慶脈)'이라 칭하고 있는데, 5만3천382명의 동문들이 현재 사회 각계각층에서 이러한 경맥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경북고등학교 내 세워진 학도의용군 참전 기념비. 대구시교육청 제공
경북고등학교 내 세워진 학도의용군 참전 기념비. 대구시교육청 제공
1960년 경북고 학생들의 2·28 민주운동 시위 모습. 대구시교육청 제공
1960년 경북고 학생들의 2·28 민주운동 시위 모습. 대구시교육청 제공
1960년 2·28 시위 때 경북도지사 관사 앞에서 한 경북고 학생이 경찰차에 끌려가고 있는 모습. 대구시교육청 제공
1960년 2·28 시위 때 경북도지사 관사 앞에서 한 경북고 학생이 경찰차에 끌려가고 있는 모습. 대구시교육청 제공

◆일제강점기, 6·25 등 위기 속에서 더 빛났던 경맥 정신

민족과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경맥 정신은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빛을 발했다.

우선, 독립운동가 홍주일 선생이 가르쳤던 협성학교에 뿌리를 두고 있는 만큼, 3·1운동 당시 홍주일 선생의 항일애국정신을 이어 받은 대구고보생들의 활약이 대단했다.

3·1운동이 발생한 1919년, 대구에서는 같은 해 3월 8일 오후 1시쯤 서문시장에서 만세운동이 예정돼 있었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학교 당국은 결행 사흘 전인 5일 학교 근처 숲에서 소풍 행사를 진행하고, 그 다음 이틀 동안은 테니스 대회를 여는 등, 학생들이 만세운동을 준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애썼다. 이러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대구고보 학생들은 결행 전날인 7일 4학년 허범 학생의 집에 모여 태극기 수백 장을 만들고, 만세운동을 알리기 위해 친구들에게 연락하는 등 철저한 준비에 돌입했다.

그리고 8일 허범 학생을 비롯한 4학년 급장이었던 신현욱, 3학년 백기만 등 학생이 나서서 수업 중인 학우들을 손짓으로 불러내 만세운동 참여를 이끌었고 등교한 대부분 학생들이 교문을 박차고 서문시장으로 내달렸다.

경북고 117년사에 따르면, 당시 전교생 239명 중 만세운동 참가자는 200여 명으로 등교생 전원이 참가했다고 한다. 대구고보생들은 대구경찰서 앞과 종로를 거쳐 동성로를 지나 달성군청 앞까지 행진했다. 이날 일제 경찰과 기마 헌병, 80연대 병력까지 동원돼 강제 진압이 이뤄졌고, 이 사건으로 대구고보생 48명이 투옥됐다.

일제에 의해 세워진 관립학교였던 대구고보의 학생들이 3·1운동을 적극적으로 이끌었다는 사실은 큰 의미가 있었다. 대구고보의 백삼선은 그 전까진 일제 하부 경찰의 상징처럼 여겨졌으나, 3·1운동 이후 오히려 항일애국청년의 상징으로서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존경의 대상이 됐다고 한다.

이러한 항일정신은 불굴의 애국심으로 변해 1950년 한국전쟁이 발생한 경북중 시절에도 계속됐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존망의 기로에 선 나라를 위해 많은 경북중 학생들이 학도병에 지원하고, 전선으로 달려나갔다. 1957년 중앙학도호국단의 조사에 따르면 경북중 학도의용군 전사자는 모두 53명으로, 대구경북에선 첫 번째, 전국에선 두 번째로 많은 전사자가 경북중에서 나왔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 민주화를 이끈 주역으로도 활약했다. 2·28민주항쟁은 당시 야당 후보의 선거 유세장에 가지 못 하도록 일요일 등교 조치 한 것에 반발한 대구 시내 고등학생들이 시위를 벌인 사건이다.

경북고 학생들은 1960년 2월 28일 학교 교정과 경북도청 광장에서 결의문을 낭독하고 시위에 참여하는 등 2·28민주항쟁을 이끌었고, 독재 치하에서 침묵하던 대중들에게 큰 충격을 선사해 전국에서 시위가 일어나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경맥문인협회 단체 기념사진. 대구시교육청 제공
경맥문인협회 단체 기념사진. 대구시교육청 제공
경맥문학 표지. 대구시교육청 제공
경맥문학 표지. 대구시교육청 제공

경맥춘추 표지. 대구시교육청 제공
경맥춘추 표지. 대구시교육청 제공

◆끈끈한 경맥인들의 활발한 동문 활동

위기 속에서도 유지돼 온 경맥 정신과 유난히 끈끈한 동문 사이의 정 속에서 다양한 동호회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경맥에 흐르는 선비 정신 덕분인지, 다양한 문학 모임이 눈에 띤다.

우선 2010년 3월 결성한 동문 문학인 모임인 경맥문인협회는 2011년 4월 '경맥문학' 창간호를 발간한 이후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2009년 10월 전국 문학 애호 동문들이 주축이 돼 창립한 동문들의 문학·문화 예술 모임인 경맥문학회도 '경맥춘추'를 발간했다.

1964년 창립부터 2002년 해산될 때까지 38대를 유지해 온 문학 서클인 돌탑문학동인회도 있다. 1995년에는 졸업한 동문들을 중심으로 돌탑 동인회가 탄생했고, 이후 2006년 재경 동인 주축으로 돌탑 동인 모임을 발기해 지금까지 활동 중이다.

운동 모임도 빠질 수 없다. 동문 테니스 모임인 경맥테니스회는 서울에선 '경백회', 대구는 '경구회', 대전은 '경전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경맥 3도시 대항전'을 리그전 형식으로 개최하고 있다.

경구회는 모교에서 야구 선수 생활을 했던 동문과 야구를 애호하는 열성 동문들이 함께 하는 친목 모임으로, 1976년 12월 27일 한림정에서 모교 야구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 강문길 동문을 격려하기 위해 모임을 가진 이후 지금도 맥을 이어오고 있다.

동문 선후배 간의 친교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골프 모임 경맥골프회 역시 총동창회장기 골프대회, 재경동창회배 골프대회 등을 바탕으로 활발한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류시태 경북고 교장. 대구시교육청 제공
류시태 경북고 교장. 대구시교육청 제공

류시태 경북고 교장은 "2021년 교장 부임 전 1999년 3월 1일에 경북고와 첫 인연을 맺어 4년간 3학년 담임과 수학교사로 근무했다"며 "동문 선배들의 모교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과 총동창회의 지칠 줄 모르는 성원 속에서 이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담임교사로서 가르쳤던 학생들이 20년이 지난 현재 전국 방방곡곡에서 경맥 정신을 발휘하며 나라를 이끌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정말 뿌듯하다"며 "이제는 교장으로서 모든 능력과 열정을 기울여 경북고가 '대한민국 최고 명문 공립고'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미래 인재 양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