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인류학의 거장 칼 폴라니는 "문화를 전제하지 않고 시장을 이해할 수 없다"라는 명제로 유명하다. 그렇다면 같은 이치로 우리는 "문화를 전제하지 않고 복지를 이해할 수 없다"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논리에 의하면 스웨덴의 복지와 한국의 복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스웨덴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은 막 성인이 된 청년이다. 그 문화권에서는 성인이 되면 부모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이들에게 '보편적으로' 금전을 지급했을 때 이것은 합리적이다. 비슷하게 출발선에 선 청년들을 공평하게 대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문화는 다르다. 한국에서 청년이 성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는 편의점에서 담배를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국은 직계가족이 재산 혹은 가난을 느슨하게 공유한다. 주위를 둘러보라. 어떤 청년들은 등록금 걱정 전혀 없이 대학을 다니며, 원하면 어학연수, 대학원, 로스쿨도 간다. 결혼하면 형편에 따라 부모가 집을 사주거나, 전세금을 대준다. 복지가 이미 사적자치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혀 다른 청년들도 있음을 우리는 안다. 성인이 되는 순간부터 등록금 빚을 지고 시작하는 대학생들 말이다. 친구들이 유럽 여행을 간 사이, 밤새 편의점에 서서 삑, 삑, 바코드를 찍는 아가씨들 말이다. 여유를 가지고 공부할 몇 년이 아쉬워서 비정규직으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는 졸업생들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번 돈으로 부모님 생활비까지 쪼개서 드리는 그런 기특한 아이들 말이다. 이 청년들에게 한국의 문화는 수혜가 아닌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이 가슴 아픈 현실이다.
그렇다면 죽은 폴라니는 우리에게 어떤 전략을 조언할까. 너희 문화는 열등하니 다 북구식으로 바꾸고, 복지는 무조건 보편적으로 지급하라, 이렇게 말할까. 아니면 문화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니, 분배실패를 방지하고 싶다면 양지는 그냥 두고 음지를 최대한 보완하는 쪽으로 가라, 이렇게 말할까. 답은 100% 후자일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가용한 복지 예산을 우리 문화의 호혜가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집중하는 것이 옳다. 잘 돌아가는 쪽은 세금만 걷고, 힘든 청년, 어려운 자영업자, 외로운 노인들에게 정말 요긴한 복지를 최대치로 해야 한다는 거다.
민주당은 '보편적 복지'에 왜 그렇게 집착할까. 그렇게 정규직, 집주인, 고소득자에게 다 똑같이 80씩 나눠주는 파티를 벌이더니, 얼마 안 가 진짜 어려운 가구의 전월세가 폭등할 때는 속수무책, 결국 정권까지 빼앗기고 말았다. 애초 진정성을 가지고 우리 사회에 진짜 어려운 사람들부터 찾아갔다면 서울이, 자영업이, 그렇게까지 이반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민주당아. 이제 제발 정치가 문화를 뜯어고칠 수 있다는 망상에서 깨어나, 우리 문화와 잘 혼성될 수 있는 실효복지를 설계하자. 받았다고 찍어주고 못 받았다고 안 찍고, 우리 국민들 수준이 그렇게 낮지 않다는 것도 각골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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