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화 녹색당 대구시당 운영위원장
저녁 바람이 선선하다. 폭우, 폭염, 가뭄으로 점철되었던 여름도 끝물이다. 이제 '관측 이래 최고'라는 말에 더 이상 놀라지 않지만, 그럼에도 올해 여름은 또 달랐다. 시간당 100㎜의 폭우로 수도 서울, 그것도 럭셔리의 대명사인 강남이 침수되는 모습을 전 국민이 지켜보았다. 바로 이어 충남에 시간당 110㎜의 폭우가 내렸지만 대구에는 비 한 방울 오지 않았다.
폭우와 가뭄이 공존하던 그날, 반지하 집으로 쏟아져 들어온 빗물에 갇혀 일가족이 참변을 당했다. 출입문은 열리지 않았고, 방범 장치가 덧대어진 창문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었으며, 도로에 빗물이 가득 차 소방차는 진입하지 못했다. 2020년 영화 '기생충'의 영향으로 반지하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이 높아지자, 국토부와 서울시가 공공임대주택으로의 이주 지원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일상화된 기후변화의 속도에 비해 그 대책은 턱없이 느리고 부족하다.
2021년 기준 전국에 약 32만 7천여 반지하 가구가 있고, 7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지만 약 97%가 서울·경기·인천에 집중되어 있으니, 반지하는 사실상 수도권 주거의 한 형태이다. 대구의 경우 반지하는 흔치 않고, 쪽방으로 통칭되는 여인숙·여관·고시원 등 극소형 숙소들이 있다. 쪽방은 단열이나 환기 시설이 부족하고 냉난방 시설이 아예 없거나 집주인의 반대로 설치가 불가하다. 있더라도 전기료를 아끼기 위해 충분히 가동하지 못한다. 폭염과 한파가 닥칠 때, 쪽방은 안전한 집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을 위협하는 공간이다. 대구쪽방상담소에 따르면 현재 667명(2022년 5월 기준)의 쪽방 주민들이 평균 20만 원의 월세를 내며 장기 거주 중이고, 대개 만성질환을 갖고 있고 불안정 노동을 하는 50대 이상 노령층으로 월수입은 정부지원금을 포함해 평균 60만 원 정도다.
대구는 폭염에 익숙한 도시다. 최고기온이 40℃가 넘은 적도 있으나 예전보다는 덜 덥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무를 심고 담장을 허물어 도심의 온도를 낮췄다는 자랑 섞인 설명도 뒤따른다. 지하철마다 무더위 쉼터가 있고, 도로를 식히는 살수시설과 버스정류장에 안개분무시설도 있다. 매년 엑스코에선 쿨산업전이 개최되며, 한때 폭염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기후변화 시대, 안전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은 금물이다. 게다가 안전의 기준이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과 안정적인 주거를 확보한 사람에게 맞춰져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 보아야 한다. 같은 도시에 살아도 폭염에 더 취약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쪽방 주민들이 그렇고 폭염경보에도 불구하고 일을 찾아 뙤약볕으로 나서거나 환기나 냉방시설이 없는 고온의 작업환경을 견뎌야 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기후 위기는 바로 지금 여기의 일이다. 지구적 변화를 멈추기 위해 시민들의 개인적 실천만으로는 역부족이듯 기후변화의 위험으로부터 생명을 보호하는 것도 각자 알아서 대처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특히 가난한 이들이 가장 먼저 위험에 노출된다면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은 우선적으로 이들을 고려해야 한다. 가령 667명 쪽방 주민이 동사무소를 통해 주거 상향을 신청할 때 내야 하는 임대보증금 400만 원을 무상으로 빌려주고 이자(연 5%)를 지원한다면 1년에 1억4천만 원이면 충분하다. 참고로 올여름 나흘간 열린 치맥페스티벌에 대구시가 쓴 돈은 14억 원이다.
이번에 무사했더라도 폭염은 어김없이 다시 찾아올 것이다. 선선해진 지금, 이제는 맨몸으로 도시를 살아가는 이들을 살필 시간이다. 모두에게 안전한 그늘 같은 도시, 대구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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