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은행 출입기자 시절 에피소드다. 부행장 승진 인사를 앞두고 은행장을 만났다. 승진 인사 내용을 물었더니 행장은 인사와 관련한 고충(?)을 털어놨다. "피인사권자였던 때엔 열심히 일만 하면 그만이었어요. 막상 인사권자가 되니 인사를 할 때마다 머리가 아픕니다. 어느 해엔 부행장을 할 만한 사람이 너무 많아, 어느 해엔 할 만한 사람이 없어 고민입니다." 이번엔 어느 경우냐고 묻자 행장은 "노 코멘트"라고 했다.
빈손으로 나올 수 없어 부행장 인사 내용을 다시 물었더니 행장은 "신문에 나온 대로 인사를 하겠다"고 했다. 기자가 은행 안팎의 평판을 종합해 기사를 쓰리라는 것을 행장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신문에 나온 것에 부합하게 며칠 후 인사가 났다.
어느 조직이나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인사가 그 조직의 흥망(興亡)을 좌우한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곤두박질친 원인 중 하나가 인사 문제였다. 잦은 인사 실패가 지지율을 끌어내렸다.
가장 잘못한 인사를 꼽자면 박순애 교육부 장관과 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인사였다. 박 장관은 음주운전 문제 등으로 취임 전부터 논란을 일으켰고, 취임 이후엔 취학 연령 5세 하향 학제 개편안으로 국민적 반발을 사 35일 만에 사퇴했다. 김 장관 후보자는 정치자금 유용을 포함한 각종 의혹에 이은 선관위의 검찰 수사 의뢰로 지명 39일 만에 사퇴했다. 남성 편중 인사 비판을 의식하느라 충분한 검토 없이 여성 인사 발탁을 서두른 게 화근이 됐다.
반면 윤 대통령이 가장 잘한 인사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꼽을 수 있겠다. 추 부총리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 민생과 물가 안정에 주력하고 민간·시장 중심 경제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 한 장관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을 분쇄하는 방안을 도출하고, 법치 확립에 고군분투 중이다. 두 사람은 해당 분야에서 잔뼈가 굵어 실력을 갖춘 데다 강단이 있어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비어 있는 장관 자리를 비롯해 윤 대통령은 앞으로도 많은 인사를 해야 한다. "아는 사람들 위주로 쓴다"는 비판이 안 나오도록 하는 것은 물론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을 중용하는 인사를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이제부턴 잘못한 인사는 그만하고 잘한 인사가 많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