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청와대에 근무할 때, 전직 대학 총장 한 분을 찾아뵌 적이 있다. 대뜸 하시는 말씀이, 대통령 옆에 간신배만 있다고 힐난했다. 직언보다 대통령 듣기 좋은 말만 한다는 거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한국의 대통령은 지엄한 존재다. 대통령 앞에서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사람을 잘 보지 못했다. 대체로 목소리가 떨린다. 땀을 비 오듯 흘리는 고위 공무원도 봤다. 이러니 누가 감히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겠는가. 차지철 전 경호실장은 '심기 경호'라는 새로운 개념까지 창안했다. 단순히 몸을 지키는 걸 넘어 각하의 마음까지 챙긴다는 궁극의 경호다. 겉만 보면 대통령은 구름 위에 사는 범접할 수 없는 신처럼 보인다.
하지만 돌아서면 대통령도 사람이다. 상처 입고, 괴로워하고, 사랑받고 싶어 한다. 우리와 똑같다.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미녀와 야수'의 괴물도 사랑에 목말라하지 않는가. 하지만 대통령은 그런 인간적 욕구를 채우기가 매우 어렵다. 잘해도 건질 게 없다. 그래서 김종필 전 총리는 '정치는 허업'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운명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은 우리보다 사정이 훨씬 낫다. 하지만 케네디 대통령은 암살됐고, 레이건 대통령도 피격당했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당시 대통령인 그로버 클리블랜드와 만난 적이 있었다. 클리블랜드는 어린 루스벨트에게 "얘야,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하나님, 부디 절 대통령이 되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미국 같은 나라도 이렇다.
대통령직은 극한 직업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요즘 깊은 고뇌 속에서 불면의 밤을 지새울 것이다. 최근 국정 지지율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빠지기 직전 수준까지 하락했다. 지지율의 낙폭이 대구경북, 보수층에서 크다는 것. 대구경북에서조차 부정적 평가가 높다는 사실이 더욱 뼈아프다. 더욱이 더불어민주당이 국회를 지배하고, 여당은 자중지란에 빠졌다. 윤 대통령에게는 개딸, 양아들도 없다. 정말 위기다.
그런데 보수 언론조차 대통령을 비판하고 있다. 물론 그게 언론의 진정한 소임이다. 권력은 한여름 음식보다 더 쉽게 부패한다. 안에서 소금을 뿌리기는 어려우니, 밖에서 가혹해질 수밖에 없다. 필자 역시 윤 대통령의 오만과 불통 정치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대통령도 인간이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의 번민과 고통을 충분히 지켜봤다. 그에게도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 선한 목표를 갖고, 잘하려는 대통령에게는 특히 그렇다.
하지만 민심은 무섭다. 특히 대통령이 오만하다고 생각되면 국민의 회초리는 가차 없다. 그때마다 예외 없이 큰 정치적 위기가 닥쳤다. 우리 국민은 윤 대통령의 연줄 인사와 미숙함, 가벼운 언행에 실망했다. 그러나 취임 80여 일 만에 지지율이 24%까지 떨어진 것은 전례 없이 심각한 비상사태이다. 국민의 화가 폭발한 걸로 봐야 한다. 민심을 애써 외면하는 고집스러운 태도가 불을 질렀을 것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국정 방향은 옳다.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고, 탈원전 정책도 바로잡았다. 서민을 피폐화시킨 소득주도성장과 부동산 정책을 시장 친화적 정책으로 바꾸고 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귀순 어민 북송 사건의 진실도 밝혀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모든 비정상은 차례차례 정상화될 것이다.
우리 국민이 윤석열 정부의 실패를 바라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무능과 위선으로 나라를 망치고도 반성이 없는 민주당 정부를 지금 누가 원하겠나. 다만 윤 대통령의 태도가 문제다. 지난해 11월 5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된 윤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하면, 저에 대한 지지와 성원이 언제든지 비판과 분노로 바뀔 수 있다는 겸손한 자세로 임하겠습니다." 지금 윤 대통령을 위한 구급의 약방문은 이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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