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자마자 조기교육?" 만 5살 입학 추진에 학부모·유치원 등 반발

입력 2022-07-31 17:10:59 수정 2022-07-31 20:34:27

최근 취학연령 낮추는 방안에 곳곳에서 "유아 발달 몰이해" "불공정" 비판
1년 낮추면 2025년 대구 초등 입학생 2천명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상
찬성 입장도… 우동기 대가대 총장 "저출산 시대 생애 노동시간 연장 필요"

사진은 지난해 3월 2일 부산 동래구 내성초등학교에서 입학생이 학부모의 손을 잡고 입학식 포토존 앞으로 걸어가는 모습. 연합뉴스
사진은 지난해 3월 2일 부산 동래구 내성초등학교에서 입학생이 학부모의 손을 잡고 입학식 포토존 앞으로 걸어가는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2025년부터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한 살 낮추기로 하면서 학부모를 중심으로 반발 움직임이 일어나는 등 찬반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학부모와 유치원 단체 등은 "아이들이 입학부터 졸업과 취업 때까지 더 심해진 경쟁에 시달릴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낸 반면, 교육계 일각에선 "저출산 시대 필요한 정책"이라며 찬성 입장을 보였다.

◆2025년 대구 초등 입학생 2천명 증가

지난 29일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르면 2025년부터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기존 만 6세에서 만 5세로 낮추는 내용의 새 정부 업무계획을 보고했다. 입학 연령을 1년 앞당겨 영·유아 단계의 교육 격차를 해소하고, 사회 진출 연령도 낮추겠다는 취지다.

시행 초기 2개 학년 인원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교사와 교실 부족이 발생할 우려가 있어, 4년 간 순차적으로 입학 정원의 25%씩 입학 연도를 앞당기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다.

연도별로 보면, 2025년에는 2018년 1월∼2019년 3월생▷2026년에는 2019년 4월∼2020년 6월생 ▷2027년에는 2020년 7월∼2021년 9월생 ▷2028년에는 2021년 10월∼2022년 12월생 등이 각각 입학한다.

교육부 계획을 적용하면, 2025학년도 대구의 취학 대상은 2018년생 1만4천400명과 2019년 1~3월생 3천608명을 합친 1만8천8명이다. 이는 2학년에 올라가는 2017년생 1만5천946명보다 2천62명이 더 많은 수다.

통계청과 대구시 등의 출생아 통계에 따르면 학제개편 대상인 2018~2021년 대구의 출생아는 1만~1만4천 명 안팎이다. 올해의 경우 1~6월 출생아가 5천452명으로, 전체 1만 명 가량으로 예상된다.

오는 2025학년도 전국 취학 대상은 2018년생 32만6천822명에 2019년 1~3월생 8만3천30명을 합친 40만9천852명이다.

◆학부모 "특정 세대에 부당한 경쟁 유발"

이에 학부모들은 전환기 4년간 만 5세 아이들의 25%가 만 6세와 경쟁해야 하는 것은 부당하며, 다른 학년에 비해 인원이 많아 더 치열한 입시·취업 경쟁을 겪어야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인터넷 맘카페 등에서는 "아이들 학원 다니는 시기가 더 앞당겨지겠다", "태어나자마자 조기교육 시켜야 할 판" 등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대구 달서구에서 8살과 7살, 3살 등 자녀 셋을 키우는 구희정(35) 씨도 "주변의 초등학교 1학년을 보면 학원 2~3개가 기본이다. 입학 연령을 앞당기면 교육 격차가 해소되기는커녕 더 어린 나이에 아이들이 사교육 스트레스를 겪게 될 것"이라고 했다.

조승현 새싹부모회 대구지회장은 "특정 세대가 생애 전반에 걸쳐 입시와 취업에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며 "만 5세의 경우엔 태어난 개월 수에 따라서도 차이가 큰 데, 1살 차이가 나는 같은 반 학생들과 학력 격차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업을 못 따라가는 학생만 집중적으로 지도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부족한 부분을 사교육으로 보충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 "유아 특성·현장 상황 모르는 정책" 유치원·초교도 반발

유치원 관련 단체들은 어린 나이에 학업을 이수해야 할 경우 어린이들이 정신적·육체적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귀영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회장은 "연령별로 발달 차이가 큰 유아 단계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학제개편 방안이다. 유아를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유아 정책이 오히려 유아를 희생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은 31일 오후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모습. 연합뉴스
사진은 31일 오후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모습. 연합뉴스

이어 "사회 진출 연령을 1년 앞당겨 청소년들을 직업 전선에 빨리 내보내는 게 목적이라면 차라리 유아 발달 단계와 상관 없는 초·중·고 학제를 개편하는 게 낫다"며 "정부는 유치원 관계자와 학부모 등 현장의 당양한 목소리를 듣고 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늘어난 입학생을 수용해야 할 초등학교도 걱정이 크다.

달성군 한 초등학교의 교사 이모(59) 씨는 "유치원의 경우 수업 중 학생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 따로 데리고 나가서 돌볼 수 있는 유휴인력이 있지만 초등학교는 그렇지 않다"며 "현재도 초등학교 1학년은 수업 지도가 어려워 담임을 맡으면 가산점을 주는데, 학교 생활이나 교육 과정에 적응하지 못하는 5살 학생들이 대거 발생한다면 수업 진행 자체가 어렵게 될 것"이라고 했다.

◆ "저출산 시대 필요한 정책" 찬성 입장도

사회 상황과 교육 현장의 변화에 발맞춰 76년간 유지돼온 학제 역시 개편될 필요가 있다는 입장도 있다.

우동기 대구가톨릭대 총장은 "현재 저출산 문제로 인구, 즉 노동력이 자꾸 줄어드는 만큼 한 인간의 생애 노동시간이 연장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학제를 개편해 입직 연령을 낮춰야 한다"며 "점진적으로 중·고등 과정까지 학제 개편을 확대해 현재 6-3-3-4 체제에서 3년 정도만 앞당겨도 인구 10% 증가 효과를 볼 것"이라고 했다.

이어 "대학 4년간 쌓은 전공 지식만으로는 평생 일을 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제도 교육을 너무 오래 지속할 필요가 없다"며 "그보단 새로운 정보를 빠르게 흡수해 업무 현장에 적용하도록 전 생애에 걸친 평생 교육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학제개편의 장·단점을 신중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있다.

홍원화 경북대 총장은 "과거와 비교했을 때 요즘 아이들의 학습 능력과 성장 속도가 발전했기 때문에 이를 감안해 정부에서도 이번 방안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방안이 실제로 이뤄졌을 때 어떤 점이 유익하고 한편으론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면밀히 살펴 논의할 시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