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광섭의 자명고] 비정상적인 남북관계의 청산, 한반도 당사자 문제②

입력 2022-07-29 14:30:00 수정 2022-07-29 19:11:27

지난해 1월14일 저녁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노동당 8차대회를 기념하는 열병식
지난해 1월14일 저녁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노동당 8차대회를 기념하는 열병식

먼저 한국군에 대한 작전권의 문제다. 연합작전에 있어 작전권을 일원화하는 것은 군사상식에 속하는 것이며, 이를 가지고 교전 당사자의 지위를 규정하려는 것은 참으로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은 연합군 총사령관인 아이젠하워 장군에게 작전권을 이양했으나, 이 작전권으로 연합국이 가지고 있는 교전 당사자라는 고유의 지위에는 전혀 영향이 없었다.

6·25전쟁 당시 참전국은 모두 미군사령관이 아닌 유엔군사령관에게 작전권을 이양하였으며, 한국군 역시 지휘통일을 위해 유엔군사령관에게 작전권을 이양했다. 작전상의 목적일 뿐이다. 이를 가지고 군사주권 운운으로까지 비약하는 무분별한 정치인과 그 동조세력이 있어 상황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둘째, 북한은 조약 서명자(Signatory)와 조약 당사자(Party)를 전혀 분간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1918년 11월 11일 연합군 총사령관 포쉬 장군(프랑스군)은 연합국을 대표하여 독일군 대표와 휴전협정을 체결했고, 이어 1919년 6월 28일 연합국과 독일간 평화협정을 체결했는데, 이 때 연합국에 가담한 모든 국가가 당사자의 지위를 가지고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서명자와 당사자는 전혀 혼동할 일이 아니다.

셋째, 한국 정부가 정전협정 체결에 반대했다는 점 또한 사실과 다르다. 당시 한국 정부의 반대는 정전협정의 전쟁 재발기능을 보다 확실하게 보증하기 위한 힘겨운 협상과 투쟁의 과정이었으며 그 산물이 바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이다. 이는 정전체제와 더불어 한반도 전쟁억제의 양대 축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한국 정부는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에 앞서 53년 7월11일 휴전 반대를 철회(이승만과 로버트슨 미국특사간 공동성명 발표)한 바가 있으며, 54년 4월 26일부터 개최된 제네바 평화회의에는 참전국 16개국과 함께 교전 당사자의 자격으로 참가했으나, 북한은 한국 대표가 회의에 참가하는데 대해 어떠한 반대 입장도 표명한 바가 없었다.

1991년 3월 이후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이하 군정위) 수석대표를 한국군 장성으로 조정하였으나, 북한은 형식상의 문제를 트집 삼아 일방적으로 군정위에서 철수하고 폐쇄한 것을 보면 북한이야말로 정전협정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과연 당사자로서 이를 존중하고 준수하려는 의지가 있는지를 알게 한다.

이처럼 북한이 한사코 한국의 당사자 자격을 부인하고 지난 2019년 6월 판문점 회동에서 본 바와 같은 행보를 고집한다면 정상적인 남북관계를 풀어가기는 어렵다. 미국만이 정전협정의 당사자라는 북한의 주장은 억지 선동에 불과하며, 그 저의는 분명하다. 즉 미국과 직접 상대(핵문제를 일으켜 통미봉남)함으로써 한국 정부를 예속화하여 정통성을 부정하고, 유엔군사령부(UNC)를 해체해서 유엔내에서의 입지를 확보하고 유사시 지원 근거를 제거하며, 궁극적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위한 명분을 쌓는 것이다.

2021년 1월 북한 노동당 8차 당대회 이후 비핵화 상황은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미국과 직접 해결하겠다는 북한식 해법은, 김정은이 극초음속미사일과 전술핵무기를 실전 배치하겠다고 공언함으로써 더이상 설 땅을 잃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정권은 주어진 상황을 애써 외면하고, 평화체제가 어려우면 남·북·미·중 4자가 모여 우선 종전선언이라도 하자고 집권기간 내내 매달렸다. 아무도 호응하지 않았다. 이러한 공허한 외침은 현 정전체제의 전쟁재발 방지 기능마저 무력화하는 위험한 '기대성 사고(desirable thinking)'에 불과할 뿐인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겠다고 수차 공언했다. 그러나 통일사업을 계획하는 정부 부처나 단체들은 모두들 꽁꽁 얼어붙은 남북관계에 뭔가 해야 하지 않느냐는 강박감을 가지고 생리적으로 바삐 움직일 것이다. 벌써부터 남북교류협력을 함에 있어 비핵화를 전제조건으로 내걸지 않겠다고 한다. '담대한 제안'을 한다는 당국자의 발표도 나온다.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다만 최소한의 원칙이 있어야 한다. 북한 핵문제는 남북간에 합의한 약속을 어긴 중대 기만행위이며 한반도 세력균형을 붕괴시키는 심대한 도발행위이다. 북한의 주장대로 미국의 적대시 정책의 산물인지를 따지기 이전에 남북간에 먼저 해결할 사안이다. 북한과 미국이 직접 만나 무슨 얘기를 하는지 정확히 모른채 안보의 공백을 자초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더욱이 북한이 실전배치를 공언한 전술핵무기는 미국이 아닌 한국을 겨냥한 것이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 북한이 더 이상 당사자 문제에 집착하지 않고 핵문제를 우리 앞에 올려 놓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놔둔 채 그 어떤 성과에 집착하려 든다면 비정상적인 남북관계는 결코 시정되지 않을 것이며, 북한 주민들의 고통만 가중되고 국력만 낭비하는 또하나의 정치이벤트에 불과한 백해무익한 역사의 페이지가 계속될 것이다. 지나온 경험 아닌가.

윤광섭 前 국가안보회의 위기판단관, (예)육군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