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안의 클래식 친해지기] <25> 존 케이지의 ‘4분 33초’

입력 2022-07-11 10:12:08

유대안 대구시합창연합회장
유대안 대구시합창연합회장

작곡과 학생들은 2학년과 3학년이 되면 학번 순서대로 자신이 쓴 곡을 중강당에서 발표를 한다. 이 발표회가 매주 월요일에 열리기 때문에 학생들은 '월요연주'라고 불렀다. 대부분 작곡과 학생들은 자신이 쓴 곡을 성악과나 기악과 학생들에게 맡겨서 연주하는데, 그날 한 동료는 자신이 쓴 곡을 직접 연주했다. 그는 무대에 악보도 없이 올라가 인사를 한 후 피아노 앞에 앉았다. 본인이 쓴 곡이니까 본인이 모두 외워서 연주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오른손을 펴서 이마 부분까지 올리더니 칼로 베듯 피아노의 건반을 내리쳤다. 가운 '도' 소리가 강하게 들렸다. 건반에서 손을 떼지 않고 한참을 그러고 있더니 잔여 음이 사라지자 건반에서 손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무대 중앙으로 나와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내려왔다.

이것을 지켜보는 작곡과 학생들은 웅성거렸다. 그리고 뒷줄에 앉아서 지켜보고 계시는 교수님을 일제히 쳐다보았다. 학생들은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교수님은 아무 말씀이 없었다. 채 1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의 표정은 매우 진지했다. 해프닝과 같은 연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 연주가 있기 얼마 전 21세기 아방가르드 음악에서 연주자에게 재량권을 주어 연주하게 함으로써 예기치 않은 소리를 발생하는 '우연성 음악'에 관한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한때 12음렬 기법을 창안한 쇤베르크의 제자였고,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스승이었던 미국의 작곡가 겸 철학자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는 피아노의 소리를 다양한 음향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준비된 피아노(Prepared Piano) '바카날'(Bacchanle, 1940)을 발표했다. 이 작품에서는 못이나 볼트, 고무조각 등을 피아노 현에 끼워서 연주하게 했다. 피아노에 미리 장치(?)를 함으로써 기존의 피아노 음향과 다른 예기치 않은 음향이 도출되었다.

존 케이지는 동양의 선(禪) 사상에 매료되었고 중국의 주역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우연적 요소나 불확정 요소를 연주자가 마음대로 결정하도록 하는 '우연성 음악'(Aleatory Music 또는 Chance Music)을 창안해 냈다. 음악적 절차에 있어서 주어진 법칙이나 한계를 초월한 무한한 가능성을 갖도록 한 것이다. 그는 역설적으로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정적의 공간을 찾았는데, 완벽히 소리가 차단된 하버드 대학의 녹음실을 찾았다. 하지만 그의 귀에는 여전히 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심장박동 소리와 숨소리다.

그는 이 세상에 무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4분 33초'(1951)라는 피아노곡을 내어 놓았다. 놀라운 것은 오선 위에 음표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악장마다 'Tacet'(침묵)만 써놓았을 뿐이다. 제1악장 33초, 제2악장 2분 40초, 제3악장 1분 20초 동안 피아노 연주자는 시계를 보고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닫았으면 연주가 끝난다. 그 사이에 자신의 숨소리든, 웅성거리는 소리든, 무슨 소리든 간에 들어보라. 얼마나 귀가 자유로운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 작곡가는 천재였고, 지휘자는 폭군처럼 연주자들을 쥐어짰고, 연주자들은 지휘자의 노예노릇을 했다. 그러나 우리 음악에는 폭군도, 노예도, 천재도 없다. 모두가 동등하게 함께 협조해서 만들어간다.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도 누구에게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지 않고도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구시합창연합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