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 채반에서 소낙비 내리는 소리가 그치면
금줄 친 고요가 머물렀다
터질 듯 탱탱하고 부드러운 몸
고개를 꼿꼿이 세워 좌우로 흔들며 섶을 찾는다
입으로 뽑아낸 부드럽고 질긴 명주실 가닥으로
망설임 없이 자신을 그 속에 가둔다
달빛이 차오를수록 고치는 두터워지고
제 몸의 진액으로 지어진 모서리 없는 집이 완성됐다
그것은 한 번의 찢김으로
미련 없이 버려질 정결한 산실
올올이 풀어내면 이천 배가 넘는다는,
끊어질 듯 이어온 실낱같은 나날이 아득하다
온갖 고생을 다 해 지어진 골방에
주름만 가득한 번데기로 남은 당신은
어느 날 훌훌 털어 하늘로 올릴 정결한 화목제
섶에 매달린 누에고치마다 그렁그렁한 슬픔이 둥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