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주택공급 과잉의 기원, 빈집
달서구 두류1·2동, 10여년 전부터 재건축 지정됐으나 지지부진
"대구 10년치 주택 4년에 걸쳐 공급" 빈집 해소 위한 새 동력 필요
[대구 빈집 3546] 연재 순서
<1편> 바이러스처럼 번지는 빈집
<2편> 황폐화된 도시, 고립된 사람
<3편> 주택공급 과잉의 기원, 빈집
<4편> 있으나 마나한 빈집정비사업
<5편> 방치된 '빈집' 해법 찾아야

빈집의 증가는 대구시가 처한 주택공급 과잉현상과도 이어진다. 주택 경기가 좋았을 무렵 재건축·재개발에 성공한 단지들이 현재 시장에 쏟아지면서 대구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주택공급 과잉과 청약 미달 사태를 겪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주택경기가 식어버린 뒤 남아있는 빈집들은 기약없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기다리며 오랫동안 빈집으로 남는다. 빈집 주변에 고립된 채 살아가는 70~80대 노인들도 떠나면 그들이 살던 집도 다시 빈집이 될 가능성이 높다.
◆ 10년 넘게 지지부진한 재건축사업
지난달 22일 찾은 달서구 한 재건축사업구역. 외벽이 뜯어진 몇몇 건물에 '범죄발생 우려되는 공폐가 특별순찰구역'이라는 경고문이 붙어있었다. 성서경찰서 두류파출소에 따르면 이 경고문은 주민들로 구성된 '생활안전협의회'가 동네에 빈집들이 많아지자 범죄 예방 차원에서 붙였다.
두류파출소 관계자는 "빈집들에 청소년들이 들어간다거나 누군가가 쓰레기를 버린다는 민원이 있었다"며 "야간에는 집중순찰구역으로 지정해 강력범죄를 예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동네에서 빈집들이 많아진 시점은 지난 2019년쯤이다. 당초 2009년부터 아파트 재건축 정비사업으로 지정됐지만 10년간 지지부진했다. 그러다 조합이 구성되면서 사업이 본격화됐고, 2만9천516㎡ 부지에 580가구의 아파트 9개동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달서구청이 사업 인가를 검토 중이라 철거 또는 착공 시점은 여전히 까마득하지만, 몇몇 주민들은 일찌감치 이주했다. 한 빈집을 서성이던 가운데 이 집 주인의 가족이라고 소개한 김형국(73‧가명) 씨가 "사람 없는 지 몇 년 됐다"고 취재진에게 다가왔다.
김 씨는 "갑작스럽게 철거가 들어갈까봐 세를 받지 않기로 했다"며 "집이 너무 오래돼 지붕이 내려앉고 비도 세는데, 수리비도 만만찮다"고 빈집으로 남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인근 한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도 "투자로 구매한 이들도 많아 사업 시행 전까지 빈집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범어동 고급 주상복합아파트와 공존하는 빈집
다음날 찾은 도시철도 2호선 범어역 6~7번 출구 인근은 고급 주상복합아파트로 꼽히는 '범어W' 공사가 한창이었다. 2023년 1천340가구 규모로 공급될 예정이다. 이 사이에는 이들 아파트와 어울리지 않는 빈집들이 하나의 마을을 이룬 채 남겨져 있었다.
이곳 주택들은 30년 전 모습 그대로다. 실거주했던 주민들은 나이가 많아졌고, 리모델링보다 익숙함을 선호했다. 그러면서 단독주택들은 고요히 낡아만 갔다. 한평생을 이곳에서 지냈던 노인들이 세상을 떠나자 자녀들이 들어와 살기보다 빈집으로 두는 경우가 많았다. 여전히 도시가스조차 들어오지 않는 '옛날집'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최근에는 지역주택조합사업 시행으로 주변이 비어가기 시작했다. 시행사가 주민 설득에 열을 올리면서 빈집이 1~2년 사이 급격하게 늘었다고 현지인들은 말했다. 지역주택조합사업 특성상 95% 이상 토지를 매입하면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다만 95%라는 요건을 충족하기엔 그 속도가 지지부진하다. 보상가를 두고 시행사와 주민 간의 시각차도 크다. 수성구청에 따르면 이 사업의 주체인 시행사는 조합인가도 받지 못했다. 수성구청 관계자는 "현재는 조합원 모집승인만 들어왔을 뿐이고, 사업이 진행되려면 한참 멀었다"며 "또 토지를 95% 이상 매입하지 않으면 사업 자체가 진행될 수 없다"고 말했다.
10년째 주민인 김구환(67‧가명) 씨는 "여러 시행사들이 아파트를 지으려고 뛰어들었지만 매번 실패한 곳이다"며 "입지가 좋아 땅값이 계속 올라가다 보니 주민들은 높게 받으려고 하고, 시행사들은 최소한의 금액으로 매입하려다 보니 사업이 진행될 수가 없다. 이번 사업도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 노후화된 빈집, 주택공급의 시작
빈집이 되는 직접적이면서도 표면적인 원인은 '건물 노후화'다. 오래된 주택이 낡아 더 이상 주거환경을 위한 공간으로 인식되지 않는 것이다. 한국지역학회가 2018년 펴낸 '개별건축물 데이터를 활용한 대구시 빈집 발생의 공간적 분포 및 발생요인 분석'에 따르면 빈집 발생의 원인을 집의 물리적 특성으로 꼽고 있다.
대구시 평균 건축물의 바닥면적은 일반집은 119.4㎡인 반면 빈집은 63.3㎡로 집계됐다. 빈집 면적이 일반집보다 절반 정도 작은 것이다. 층수도 일반집은 평균 2.7층이지만 빈집은 평균 1.2층으로 나타났다. 빈집의 86.6%가 1층 단층건물이었다.
건축물 연식도 빈집과 일반집은 15년 정도 차이가 났다. 빈집의 평균 연식은 46년이었고 일반집은 평균 31년이었다. 건축구조도 빈집은 대부분 물리적으로 취약한 블록·목·석구조(98.18%)로 이루어져 있었다. 견고한 구조인 철골·콘크리트는 1.82%에 그쳤다.
재건축‧재개발은 이런 노후한 빈집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다. 수십개의 빈집들이 한번에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되면서, 이전보다 나은 거주환경 속에 실거주자들이 유입된다. 노후화된 빈집이 주택공급의 시작이라고도 볼 수 있는 셈이다.
특히 대구는 최근 몇 년 사이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활발하게 이어졌다. 대구시 정비사업 추진현황에 따르면 연간 사업승인을 기준으로 2015년 5건, 2016년 8건, 2017년 19건, 2018년 11건, 2019년 4건, 2020년 8건, 2021년 4건, 2022년 3건으로 집계됐다. 2016년~2018년 호황을 맞은 주택 경기와 코로나19 사태로 반짝 수요가 급증한 2020년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문제는 그 여파로 주택 공급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미분양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2023년 대구 입주 예상 물량은 3만2천623가구로 1990년 통계 작성 이래 33년 만에 처음으로 3만 가구를 넘어섰다. 대구 미분양 물량은 5월 기준 6천816가구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가장 많았다.
◆ 1%대 처참한 분양율…빈집만 남겨진 '악순환'
이로 인해 주택 시장이 싸늘하게 식자 기존 재건축·재개발 사업도 줄줄이 취소됐다. 과거에는 빈집들이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하면서 자연스레 빈집이 사라졌지만, 주택시장 불경기 속에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좀처럼 탄력을 받지 못하자 빈집만 장기간 남겨지는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취재진이 지난달 20일 찾은 남구 대명5동 내 미군 캠프워커 주변 한 빈집촌은 800가구 규모의 주상복합아파트(2차) 건설 때문에 빈집화된 곳 중 하나였다. 하지만 바로 옆에서 진행하던 600가구 규모의 1차 사업이 1%대의 저조한 분양율을 기록하면서 언제 사업이 재개될지 알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그 사이 빈집들 사이로 노숙자들이 기거하기 시작했고 주변은 사람을 살기 어려운 동네로 변질됐다.

전문가들은 빈집 문제를 해소하는 데 정비사업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결국에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히는 고령화와 인구감소 문제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빈집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시사하고 있다.
조득환 대구경북연구원 연구위원은 "대구의 10년치 주택 수요가 중장기적으로 꾸준히 공급된 게 아니라 4년에 걸쳐 공급되면서 미분양이 늘었다"며 "정비사업이 지지부진하면 빈집 정비가 원활하지 못하고 방치되는 경우가 늘어간다. 대구가 새로운 동력을 창출해 청년 유출이 감소하면 주택 경기와 빈집 누적 등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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