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 백석예술대 교수
2001년 2월 '3일 만에 읽는 세계사'(서울문화사)라는 번역서를 출간했다. 일본 다이아몬드사의 '지식의 Basic 시리즈, 3일 만에 읽는 ○○○' 중의 한 권이었고, 표지에 '역자 고선윤'의 이름이 들어간 두 번째 책이었다.
20년도 더 된 이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낸 것은, 내가 번역자로서 만났던 한 문장을 소개하고 싶기 때문이다. '38선에서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소제목의 글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중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 3년에 걸친 6·25전쟁의 시작이다."
여기서 무엇이 문제냐고 묻는다면, 무엇이 문제가 아니기 위해서, 고민한 이야기를 하겠다. 특별히 역사를 전공하는 사람이 아닌 일반인이 사흘이면 읽을 수 있도록 세계사를 가볍게 소개하는 이 책에서 '6·25전쟁'에 대해서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지, 이른바 원서의 글을 그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위 38도선 부근에서 무력 충돌을 계기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3년에 걸친 조선전쟁의 시작이다. 갑자기 일어난 사건으로 어느 쪽에 개전의 책임이 있는가에 대한 의견이 지금도 나뉜다."
나는 역자이기 이전에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 이 글에 분노했다. 이 글은 마치다 다카요시 오베린대학교 국제학부 교수가 집필했으며, 사쿠라이 기요히코 와세다대학교 명예교수가 감수를 했다. 여기서 나는 멈추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책은 오롯이 이들의 작품이다. 그러니 원서의 글을 그대로 살려서 일본의 역사학자는 6·25전쟁에 대해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는 사실을 남겨야 할 것인지. 아니면 독자를 생각하고 우리의 상식을 관철해야 할 것인지. 역주를 달아야 할 것인지.
마치다 교수는 '실크로드의 비밀' '중국역사기행'과 같은 책을 출간한 사람으로 중국사가 전공이며, 사쿠라이 교수는 와세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다고는 하지만 미라를 연구하는 비교고고학자였다. 그들은 6·25전쟁에 대해서 얼마나 공부하고 이 글을 기술했을까. 나는 또 얼마나 생각하고 이 글을 옮겨야 할까.
사실 6·25전쟁을 '미국과 이승만 대통령의 공모에 의한 북침에 대항한 민족해방전쟁'이라는 북한의 주장은, 이미 1990년대 구소련에서 발굴된 수많은 자료로 힘을 잃었다.
1994년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800여 쪽에 달하는 한국전쟁 관련 문서를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달하면서 진실이 밝혀졌다. 이 문서는 김일성의 '무력 통일' 의지와 이에 대한 무기 지원 요청, 스탈린의 조건부 동의, 한국전쟁에서 마오쩌둥의 역할 등 개전 주체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이후 러시아와 중국도 한국전쟁의 개전 주체를 북한으로 인정하였다. 그러니 이제는 논쟁할 가치도 없는 사실이었다.
고로 나는 감히 원서에 칼을 대고 위와 같이 번역을 했다.
2002년에 '조선전쟁전사'를 발표한 와다 하루키 도쿄대학교 명예교수는 2012년에 '북조선현대사'(이와나미신서)를 출간했다. 제3장이 '조선전쟁'인데 여기에 '개전 허가를 구하는 북조선' '3단계의 작전계획' '개전' 등의 작은 제목의 글이 있다. 본문에는 "북 인민군의 공격 명령은 6월 23일과 24일에 있었다. 그리고 군사행동은 25일 미명 38도선 전선에서 시작되었다. 슈티코프 대사는 26일 모스크바에 보고했다. 북 인민군 부대의 공격은 불의의 습격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와다 교수는 2010년 한국전쟁 60주년 기획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한국전쟁에 관한 구소련의 문서들이 비밀 해제된 지 15년이 지난 지금 북한군이 전면전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고 확신을 했다.
지난 25일은 6·25전쟁 72주년이었다. 북한은 평양에서 군중집회를 가졌고,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따르면 집회에 참가한 연설자들이 "미제가 창건된 지 2년도 안 되는 청소한 우리 공화국(북한)을 요람기에 압살하려고 조국해방전쟁(6·25전쟁)을 도발하고 세계 전쟁 사상 유례없는 가장 잔인한 살육전, 야만적인 파괴전을 벌인 데 대해 준열히 단죄 규탄했다"고 전했다.
나는 70여 권의 번역을 했다. 번역가의 눈에 들어온 이 글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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