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앞둔 권영진 대구시장 "미래 열어갔던 인간적인 시장 기억되고파"

입력 2022-06-19 15:34:17 수정 2022-06-19 20:03:12

'물·로봇도시'로 산업구조 혁신 발판…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서대구역·4차순환路 SOC 기반 구축…코로나 기간 주요 현안 답보 아쉬워
"그동안 돌아보지 못했던 사람들에 대한 감사하며 마무리 중"
"민선 8기, 지난 시정 계승하며 새로운 길 모색해야…"

이달 30일 임기를 마무리하는 권영진 대구시장이 14일 대구시청 별관 접견실에서 매일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이달 30일 임기를 마무리하는 권영진 대구시장이 14일 대구시청 별관 접견실에서 매일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권영진 대구시장은 남은 임기를 숨 가쁘게 보내고 있었다. 인터뷰를 진행한 지난 14일에도 전날 제주에서 열린 전국 시·도지사협의회 모임에 참석했다가 막 돌아온 길이라고 했다.

"시장직에 있을때 만나자고 요청들을 하니까. 그동안 대구를 도와줬던 분들이나 기업 대표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전하고 대구도 부탁하고. 요즘 같아서는 하루에 몇 끼씩 식사 약속을 해도 모자랄 정도로 바빠요."

권 시장은 "요즘 고은 시인의 '그 꽃'이라는 시를 자주 떠올린다"고 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라는 짧은 시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오며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을 다시 느낀다는 뜻이었다.

-남은 임기를 어떻게 마무리하고 있는가?

▶'사람'이다. 지난 8년 동안 오직 일만 부여잡고 살았던 것 같다. 남은 시간들은 일에 대한 마무리보다는 그동안 나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고, 그리워해 준 사람들에게 고마움과 감사의 표시, 그런 마무리가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퇴임 후에 계획들은 잡았나?

▶당분간은 인간적인 도리를 다하며 자신에게 재투자하는 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9월부터 대학에서 초빙 교수로 강단에 설 것 같다. 내 경험을 토대로 자유민주주의의 정치 과정이 어떻게 소통과 협치, 숙의민주주의의 형태로 발현되는가를 전해주려 한다. 청년들을 위한 멘토 활동도 병행한다. 대구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는 강의도 할 생각이다. 정당인으로서는 국민의힘의 미래와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일도 할 예정이다.

-재임 기간 동안 가장 큰 성과를 꼽는다면?

▶어려운 시기에도 오래된 대구의 숙원 사업들을 해결할 실마리를 만들었다.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건설, 취수원 다변화, 대구시청 신청사 건립 등 이런 문제들은 30~40년 동안 꼼짝도 못하던 문제들이었다.

산업 구조도 혁신했다. 8년 전 대구는 섬유산업과 기계부품산업 정도의 도시였다. 이제 물 산업은 대구가 대한민국의 중심이 됐고, 로봇 산업도 로봇도시 대구로 가는 발판을 만들었다. 나는 앞으로 5~10년 후에 대구가 대한민국에서 산업구조 혁신에 성공한 첫번째 도시가 되는 발판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대구의 역사 문화를 '현창(顯彰)'하는 성과도 거뒀다. 시민들과 함께 4대 역사문화 현창 사업을 추진해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했다. 2.28민주운동 기념일도 국가기념일로 만들었다. 신암선열공원을 국립 묘역으로 지정했고, 대구의 음악 자산으로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에 가입했다.

대구의 공간 구조를 바꿀 수 있는 SOC 기본망도 만들었다. 서대구역과 4차순환도로를 완성했고, 서대구역에서 국가산업단지를 잇는 대구산업선 철도, 통합신공항으로 가는 공항 연결 철도, 대구-광주를 잇는 달빛내륙철도는 계획을 확정하는 성과를 냈다. 도시철도 엑스코선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해 설계를 진행 중이다.

-출범을 앞둔 민선 8기 시정의 주요 공약들이 지금까지 추진해온 정책들과 방향이 다소 달라지는 것 같은데 어떻게 보는가?

▶나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시도를 존중한다. 다만 새로운 길이 미래로 가는 발걸음을 더디게 하거나 많은 논의 끝에 낸 결론을 다시 원점으로 돌리는 우를 범하진 말았으면 좋겠다. 존 F. 케네디와 윈스턴 처칠은 '현재가 과거와 싸우면 미래를 잃는다'고 했다. 원점으로 돌리는게 아니라 계승하고 보완해서 완성하면 좋겠다.

그동안 국가가 발전 전략의 중심이 됐다면 새 정부에서는 민간 중심의 성장 전략으로 바뀌고 있다. 지금 국내 5대 기업의 향후 5년 간의 투자 계획이 1천조원이 넘는다. 새로운 정부의 민간 중심의 성장 전략과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를 대구경북으로 가져오도록 모든 역량을 쏟아야 한다.

이달 30일 임기를 마무리하는 권영진 대구시장이 14일 대구시청 별관 접견실에서 매일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이달 30일 임기를 마무리하는 권영진 대구시장이 14일 대구시청 별관 접견실에서 매일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재임 기간 중 가장 아쉬웠던 일은 뭔가?

▶코로나19가 가장 아쉽다.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신성장 산업 육성이나 통합신공항 건설, 대구경북 상생협력 등의 문제에 큰 진전이 있었을 것이다. 나의 시정 철학이 소통과 협치였는데 코로나가 모든 사람들의 관계망을 다 단절시키니까 너무나 아쉬웠다. 신산업들도 해외 수출과 해외 투자 유치의 길이 모두 봉쇄됐다. 그래도 가장 먼저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었던 대구가 어려움을 극복해내고, 드라이브스루 코로나19 진단검사소나 생활치료센터처럼 세계 최초로 도입해 표준이 됐다는 점은 위안으로 삼고 있다.

-만약 시장이 처음 됐던 8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

▶너무 일만 하지 마라. 좀 더 여유 있게,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쉴 때 쉬고 일할 때 일하라고 하고 싶다. 그땐 너무나 절박했다. 대구를 생각하면 솔직히 쉴 틈이 없었다. 나는 주말, 휴일에 반나절 이상 놀아본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게 꼭 잘하는 건 아니었다. 쉴 때 쉬고 생각할 때 생각하고, 사람들과 정도 나눴어야 했는데….

-8년 동안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제일 마음을 졸였던 게 시청 신청사 부지를 공론화위원회에서 결정했을때, 그리고 모두가 승복했을때. 지역 간 갈등이 되거나 승복을 거부해서 대구 전체의 갈등으로 가는 걸 걱정했는데, 가장 민주주의적인 방식으로 결정을 내리고 모두가 승복했을때 굉장히 기뻤다. 갈등을 피하지 않고 중심에 뛰어들어서 대화하고 소통하고 설득한 면이 감동적이었다.

또 하나는 2018년 재선 당시에 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유세를 가로막고 집회를 하다가 떠밀려서 꼬리뼈를 다쳤을 때였다. 그 이후에 굉장히 조롱에 시달리기도 했는데, 지난 4월에 이 분들이 나를 찾아 감사패를 주셨다. 그 당시 생겼던 오해들에 대해서도 서로 위로하고 그런 기억도 감동적이었다.

-반대로 한계를 느낀 경험도 있는가?

▶미안한 기억이 있다. 공동체 전체를 위해서는 가야 될 길인데 개인에게 있어서는 가혹한 행정이 있을 수밖에 없다. 국가산업단지나 금호워터폴리스, 수성알파시티 조성 사업 같은 경우에는 본인 동의가 없어도 토지를 강제 매수했다. 그런데 그 분들 입장에서는 원하는 만큼 보상을 받지 못하고, 양도세까지 내면 인근에 그만한 땅을 구할 수가 없다. 그분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섭섭하고 저한테 원망도 많을 거다. 죄송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권영진 시장이라는 사람이 대구 시민들에게 어떤 시장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는가?

▶대구의 미래를 열어갔던 시장, 그리고 참 인간적이었던 시장, 두 가지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시장에서 퇴임하면 대구를 떠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떠나지 않는다. 대구시장을 8년 한 사람이 대구에 뼈를 묻어야지 어디로 가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