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윤 수필가
두 사람이 공원 벤치에 앉아 옥신각신하고 있다. 중요한 자리에서 A가 했다는 말을 두고 B가 화를 내며 따지고 있다. A는 금시초문이라며 억울해했고 더 크게 화를 냈다. 내게도 가끔 일어나는 일이다. 상대방의 말을 내가 이해하지 못했거나 내 말을 상대가 잘못 이해한 탓으로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했다.
나는 중요한 자리에 참석할 때면 녹음하는 습관이 있다. 모든 내용을 다 기억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내가 확신했던 기억이 때로는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기억이 옳다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 뇌는 100% 정확한 것만 기억하지 않는다. 우리도 모르게 '기억의 왜곡'이 일어나는데,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대는 '거짓말'과는 구별된다.
미국의 코넬대 인지 심리학자 울릭 나이서(Ulric Neisser) 교수는 뇌의 확실 혹은 불확실한 기억을 입증하기 위해 실험을 했다. 1986년 우주 왕복선 챌린저호 폭발 참사 다음 날, 학생 106명에게 설문지를 주었다. '참사 당일 누구와 어디서 폭발 소식을 접했는지, 그때 기분이 어땠고, 그 후 뭘 했는지'를 자세히 적도록 했다. 그리고 2년 반 뒤, 같은 학교 106명의 학생들에게 똑같은 질문으로 인터뷰를 했다. 놀랍게도 20%의 학생들이 2년 반 전 설문과 완전히 다른 내용의 인터뷰를 했던 것이다.
'친구와 미식축구를 보며 맥주를 마시다가 뉴스를 접했다'고 기록했던 학생은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중 라디오로 소식을 들었다.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책 위로 눈물이 마구 떨어졌다' 고 인터뷰했다. 과거 설문과 비슷하게 기억하는 학생은 불과 10% 정도였다. 90%의 학생들은 과거 자신이 작성한 설문지를 보며 '본인의 필체는 맞지만 그때의 기록은 사실이 아니며 현재 기억하는 내용이 맞다'고 했다. 객관적인 증거 앞에서도 현재의 기억이 맞는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나이서 교수의 실험은 인간의 기억이 얼마나 쉽게 왜곡되고, 부실한지 잘 보여준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기억이 왜곡되었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람마다 정도는 다르겠지만, 기억이 오래 남아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것을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녹음한 자료를 확인하다 보면 깜짝 놀라곤 한다. 아예 들은 적도 없는 내용이 있거나, 내가 확신하는 내용 일부가 녹음과 완전히 다르기도 했다. 확신하던 기억이 왜곡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때로는 그것을 진실이라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억은 기록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기억의 오류를 막으려면 올바르게 습득하고, 대략적으로라도 기록해야 한다. 기억의 왜곡을 부정하기 전에 자신의 뇌를 먼저 의심해야 한다. 왜곡된 기억은 진실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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