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윤 수필가
윙윙윙~, 작은 몸집들이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밀원(벌이 꿀을 빨아 오는 원천) 숲을 찾아 오늘은 어디까지 가려나. 길 잃지 말고 꼭 돌아오라는 당부를 실어 보낸다. 온 산이 하얗다. 아까시꽃, 조팝꽃, 이팝꽃, 밤꽃, 감꽃까지 줄지어 꽃을 피운다. 만개한 꽃들은 벌들을 먼저 집 밖으로 불러낸다. 꿀을 따는 것에 길들어진 생(生), 꽃이 지천이면 벌에게는 지천이 일터다.
어렸을 적, 옆집 어른은 자두나무 아래 벌통 두어 개를 놓았다. 온 마을이 벌들로 요란했다. 벌은 우리 호박꽃, 앞집 오이꽃에도 날아왔다. 환하고 너른 호박꽃 속에서 뒹굴다가 노란 꽃가루를 흠뻑 덮어쓴 채 온 봄을 혼몽에 빠져 살았다. 벌들은 저물녘 집으로 돌아갔다. 꿀벌은 해코지하지 않으면 쏘지 않는다는 어른의 말씀을 나는 믿지 않았다. 윙윙대는 그것들이 궁금해, 먼발치에서 가만가만 엿보곤 했다. 요란하다 못해 극성스러웠다. 수만 마리 한집에 들어 사는 모습을 보노라면 긴장감이 맴돌다가도, 이내 비밀스럽고 환상적이기까지 했다.
어른은 늘 방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내가 벌을 해코지할 것을 감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벌에 쏘일 것을 걱정하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늘 궁금함이 넘쳤으므로 가만있을 내가 아니었다. 어른이 낮잠 든 틈을 타, 긴 꼬챙이로 벌집을 쑤셨다. 비명을 듣고 나온 어른이 다급히 나를 감쌌다. 눈두덩이 부풀고 몸 군데군데가 달아올랐다. 며칠 벌 독을 앓느라 징징댔다. '나쁜 벌들, 지구에서 다 사라져라.'
꿀벌이 사라졌다. 벌집이 통째 비는가 하면, 와글대던 군집의 개체마저도 줄었다. 세계 곳곳에서 행방이 묘연한 벌에 대해 원인조차도 알아내지 못했다. 왜 어떤 놈은 돌아오고, 어떤 놈은 돌아오지 못하는가. 이르게 핀 꽃, 천적의 공격, 면역의 저하, 해충이나 농약, 새로운 병원균, 또는 길을 잃은 것이 이유일 것이라 했다. 꿀벌이 사라지면 4년 내 인류도 멸망할 것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어렸을 적 철없던 나를 정신이 번쩍 들도록 모질게 쏘던 벌은 다 어디로 갔을까.
돌아오라 벌들아. 내 멀지 않은 언젠가 마당 있는 집에 살게 되거든 꽃밭을 가꾸리라. 그리고 그 곁에 벌을 키우리라. 꽃은 스스로를 위해 필 것이고, 벌은 제 집단을 위해 꿀을 따게 하리라. 내가 가꾼 밭에서 꽃과 벌이 어우러져 저들만의 오늘을 살게 하리라. 그리하여 흔하지 않게 귀하디귀하게 모시리라. 어떠한 목적도 없이 그저, 꽃과 벌들의 소리를 들으며 수수하고 무료한 봄을 살아보리. 일기장에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아도 좋을, 나른한 봄을 살아보리. 세상사 번뇌 떨치고 그야말로 무욕의 일락(一樂)에 푹 빠져 살아보리.
그러니 벌들아, 허공으로 힘차게 날아가던 그날을 그리워하며, 그와 비슷한 어느 날이 되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아도 좋으니 돌아오렴. 그리하여 저들의 실종을 알리는 세상을 비웃으며 저들의 아우라는 건재하다고, 세상을 향해 윙윙윙 비상하렴. 어서 오렴, 벌들아. 모든 날을 잘 견뎠구나. 호박꽃이든 오이꽃이든 네 멋대로 깃들어 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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