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포비아

입력 2022-05-16 11:11:06 수정 2022-05-16 11:42:09

김동혁 소설가

김동혁 소설가
김동혁 소설가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침대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위 문장은 20세기 환상문학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프란츠 카프카가 쓴 '변신'의 첫 구절이다. 주인공 잠자는 벌레로 변한 자신의 몸을 확인하는 충격적인 순간에도 만약 오늘 출장을 가지 못한다면 직장에서 해고되어 가족들이 진 빚을 갚지 못할 것이라는 서글픈 걱정을 하며 절망한다.

지난주 화요일의 일이었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 나는 침을 삼킬 때마다 칼이라도 심어 놓은 듯 뜨끔거리는 목의 통증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콧구멍 속은 꽉 막혀 있었고 두통까지 서서히 밀려들고 있었다. 근육들이 지독히도 지쳐있어 몸을 일으킬 힘도 없었지만 나는 불에 댄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거실 약통 옆에 쌓아놓은 마스크 하나를 꺼내 썼다. 그러고는 소파에 모로 쓰러져 눈만 깜박이고 있었다.

5월 초순의 새벽, 당연하게도 거실 바닥은 냉기가 서늘했지만 침대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왜냐하면 안방 침대에는 아내와 막내가 함께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걸리고 말았구나… 그간 잘 버텨 왔는데. 결국.' 허탈함도 잠시, 오늘은 1교시부터 강의가 있는 날이라는 사실에 나는 또 한 번 무너지고 말았다. 화요일은 1교시부터 8교시까지 풀타임 강의가 있는 날이었다. 학생들과 학과 조교에게 문자를 보내기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창밖으로 여명이 밝아오기를 뜬눈으로 기다렸다.

점점 심해지는 통증과 오한을 견디지 못한 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겨울파카를 꺼내 입고 '아세트아미노펜' 계열의 진통제 두 알을 빈속에 털어 넣었다. 노숙자 같은 행색으로 몸을 비틀며 자리를 뭉개던 순간, 불현듯 머릿속에 명징하게 들어와 박히는 한 단어. '격리' 글자의 모양새나 소리마저도 매몰찬 그 단어는 새벽의 차가운 거실을 찾아온 유령처럼 두렵기만 했다.

아직 일주일의 하루밖에 지나지 않은 화요일이었다. 확진자의 격리 규정이 행정적으로 어떻게 바뀌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런 상태라면 나는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토요일까지 빼곡한 일정이 모두 취소된다는 사실에 나는 여러 의미의 계산기를 머릿속으로 두드리며 손실의 폭에 절망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세상은 개인의 사정 따위를 용인할 리 없었다. 카드 결제일이 다가오고 있고 아이들 학원비 청구서가 허망한 벚꽃잎처럼 거실 이곳저곳에 흩날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허전한 자리 탓에 잠을 깬 것인지 아내가 거실로 나와 알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가까이 오지 말라며 힘없이 손을 회회 내질렀다. 잠시 멈칫하던 아내가 약통에 쟁여둔 자가검진키트 하나를 내밀었다. 힘겹게 일어나 결과가 뻔한 선고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일련의 과정을 마쳤다. 몇 번의 재채기와 함께. 그리고 몇 초 후, 판정키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아내가 픽, 웃으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들어와서 자. 추운데….' 나는 몸을 꼼지락거리며 마치 '벌레'가 기어가듯 겨우 안방으로 숨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