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대통령 된 독재자 아들…"가족 말고 내 행동 판단하라"

입력 2022-05-11 11:50:14

시민들 불복운동…인권단체 "독재자 가문 혐오스러운 이미지, 거짓말로 미화한 결과"

독재자로 악명높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아들인 페르디난드
독재자로 악명높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아들인 페르디난드 '봉봉' 마르코스 후보(64)가 2022 필리핀 대통령선거에서 2위 레니 로브레도 후보(57)와 거의 2배 가까운 득표 차를 기록하며 당선을 확정 지었다. 마르코스 당선인의 임기는 내달 30일부터 2028년까지 6월까지 6년이다. 연합뉴스

필리핀 대통령에 당선된 독재자의 아들 페르디난드 봉봉 로무알데스 마르코스 주니어(64) 전 상원의원이 "가족의 과거가 아닌 대통령직으로 나를 판단하라"고 강조했다.

10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날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 된 마르코스는 "가족사로 나를 판단하지 말고 내 행동을 보고 판단하라"면서 "많은 표를 획득한 것은 모든 필리핀인과 민주주의를 위한 승리"라고 대변인을 통해 밝혔다.

전문가들은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유로 과거 아버지 마르코스 정권 하에서 자행된 잔혹한 고문과 살해 등이 현재 세대에 잊히고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고 봤다.

마르코스 당선인은 그간 독재 관련 과거사를 연상케 하는 모든 활동을 피했으며, 선거운동 기간 토론과 인터뷰를 거부했다. 계엄령 시대에 대한 질문에는 짜증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단체들은 독재자의 아들이 대통령이 되자 반대운동을 하고 있다.

대학생과 시민단체 활동가 등 400명은 이날 수도 마닐라의 선거관리위원회 밖에서 집회를 열고 마르코스 당선인의 대통령 당선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필리핀의 시민단체들은 지난해 11월부터 마르코스 당선인의 대선 출마를 금지해달라며 총 6건의 청원을 선관위에 제출했다.

이들은 마르코스 당선인이 공직에 있던 1995년 탈세 혐의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전력을 이유로 대선 출마 자격을 박탈해달라고 청원했다.

선관위는 근거가 부족하다며 모든 청원을 기각했다. 시민단체들은 선관위 결정에 불복해 이의를 제기했다.

인권단체 카라파탄은 성명을 내고 "마르코스의 당선은 거짓말을 통해 독재자 가문의 혐오스러운 이미지를 미화했기에 가능한 것"이라며 "시민들은 새로운 정권을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좌파 성향 단체인 아크바얀 소속의 한 활동가도 "이번 선관위의 결정은 제도적 결함이 있다.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했다.

마르코스 당선인은 독재자인 고(故) 페르디난드 에마누엘 에드랄린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이다.

아버지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1965년부터 1986년까지 장기집권했다. 1972년부터 1981년까지 계엄령을 선포해 수천 명의 반대파를 붙잡아 고문, 살해하면서 독재자로 악명을 떨쳤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과 그의 아내 이멜다 마르코스는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부정한 방법으로 모은 재산 100억달러(약 12조7천억원)로 미국 맨해튼과 뉴욕 일대 부동산을 사들였다. 그들이 살던 궁에서 명품백 등 사치품들이 발견돼 비난받기도 했다.

한편, 마르코스 당선인은 9일 치른 대선에서 약 6천750만명의 유권자 가운데 3천107만 표(개표율 95% 기준)를 얻어 10일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1천480만 표를 얻은 레니 로브레도 부통령을 크게 제쳐 압승했다.

그는 오는 6월 30일에 현 대통령인 로드리고 두테르테의 뒤를 이어 6년 단임 대통령에 취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