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호동 대구지검 기획검사
2015년 10월, 창원 무학산 등산로에서 등산 중이던 여성이 변사체로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산 정상에서 사과를 먹고 있다고 보낸 문자를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겨 가족들이 애타게 찾고 있던 분이었다.
경찰은 즉각 수사에 착수해 수십 명 규모의 전담수사본부를 꾸리고 연인원 8천 명을 동원해 등산객들에 대한 탐문수사를 벌였다. 이에 더해 수백 대의 CCTV와 기지국을 분석하고, 현장에서 발견된 물건 수백 점에 대한 국과수 감정도 벌였으나 범인은 오리무중이었다.
애타는 가족들의 마음을 몰라준 채 그대로 장기 미제 살인사건이 될 뻔한 사건은 몇 달이 지나 검찰에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예전 화성 60대 여성 살인사건에서 DNA를 활용해 범인을 검거한 적이 있는 DNA 분석 전문 검사는 기록을 꼼꼼히 분석한 다음 피해자의 유류품에서 피의자 DNA가 남아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17개 유류품의 감정을 대검 DNA 감정실에 의뢰했다. 생물학 분야 전문가인 감정관들은 수일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장갑에서 5개의 DNA를 채취했고 검찰이 보유한 수형·구속자 데이터베이스에 DNA를 넣어봤다.
'빙고'. DNA 일치자가 등장했다. '우리가 찾지 못하면 영원히 피해자의 한을 풀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신념으로 끈질기게 기록 더미 속에서 증거를 찾으려 노력한 검사의 노고가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전과가 화려했던 범인은 사건 당일 등산을 마치고 하산하던 피해자를 뒤따라가 성폭행을 하려고 했다. 범인은 피해자가 반항을 하자 목을 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감추려고 흙으로 시신을 묻었다. 그것도 모자라 피해자의 휴대폰을 훔쳐 달아난 범행의 전모가 밝혀졌다.
이 사건 담당 검사는 "DNA 감정 전문성이 크게 도움이 됐지만, 결국 밤낮없이 CCTV 등 엄청난 양의 증거를 분석하고, 이후 범인을 검거하여 범행 자백까지 이끌어낸 경찰의 노력이 없었다면 이런 성과도 없었을 것"이라며 "누구의 공이 아니라 검찰과 경찰이 모두 범인을 잡고 말겠다는 신념으로 노력한 결과"라고 했다.
'검수완박' 하면 국민들은 부패 범죄, 중대 범죄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겠지만 검사들이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하고 있는 일은 보통 이런 일들이다.
'검수완박' 이후에 이 사건이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경찰이 어마어마한 노력을 했지만 아쉽게 증거를 더 이상 찾지 못한 이 사건은 기록을 읽고 법정에 넘길지 여부만 결정해야 하는 검사 입장에서는 바로 '증거불충분, 혐의 없음'으로 처분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날이 갈수록 진화하는 조직범죄, 마약범죄, 강력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검사와 경찰이 함께 모여 수사를 한다. 1989년 검·경이 함께 수사를 하는 팀을 꾸린 미 연방검사는 이런 말을 했다.
"수사가 있고 그리고 재판을 하는 게 아니다. 수사 개시부터 유죄 판결 확정까지가 하나의 일체의 과정인 것이다."(It's not an investigation and then a trial. it's a unitary process, a case throughout.)
검찰이 경찰보다 우월해서 검찰 수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검찰과 경찰은 서로 협력해 때로는 건강한 경쟁을, 때로는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며 지난 세월 우리나라 국민들을 범죄로부터 보호해왔다. 이제 이런 모습을 다시 볼 수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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