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환 역사저널리스트
남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충청북도 단양팔경의 절경 '도담삼봉'(島潭三峯)에 이른다.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수변 풍경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도담삼봉 3개의 봉우리 앞 물가에 낯익은 이름의 동상이 위엄 있게 물가를 굽어본다. 삼봉(三峯) 정도전. 극도로 절제된 왕권의 도학정치를 구상했던 정도전은 고향 단양의 도담삼봉에서 '삼봉'이라는 자신의 호를 땄다. 정도전은 조선 건국 2년 뒤,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을 지어 태조 이성계에게 바쳤다. 조선경국전의 통치 철학을 담아 만든 조선의 법전이 성종 연간인 1485년 완성된 경국대전(經國大典)이다.
경국대전에서 정한 정부 주요 직제 3사(三司) 가운데 사간원(司諫院)과 사헌부(司憲府)가 눈에 띈다. 사간원은 왕의 인사와 정책, 행동거지에서 잘못을 지적하는 역할을 맡았다. 책임자인 정3품 대사간과 4명의 간원은 법에 따라 왕과 조정의 잘못을 논박하는 것은 물론 법을 어긴 관리를 탄핵했다. 왕이 전횡을 휘두르지 못하고, 법에 따라 도학정치를 펼치도록 하는 통제 장치였다. 요즘으로 치면 공영방송사와 감사원 기능을 합한 기관이었다.
사간원과 함께 대간(臺諫)이라 불렸던 또 하나의 권력 견제 장치가 사헌부다. 책임자는 종2품 대사헌, 그 아래 18명의 관리와 39명의 서리가 있었다. 경국대전에 법제화된 사헌부의 두 가지 핵심 직무는 언론 활동과 관리 탄핵이다. 언론 활동은 사간원의 주된 임무지만, 사헌부도 언론 활동을 겸했다. 사간원도 탄핵 기능이 있었지만, 인원이 많은 사헌부의 탄핵 기능이 훨씬 강력해서 오늘날로 치면 검찰과 닮았다. 복수의 기관이 왕과 조정 관료를 감시하도록 한 데서 조선의 왕권 견제 시스템이 얼마나 정교했는지 알 수 있다. 경국대전에 규정된 사간원과 사헌부의 언론 활동과 관리 탄핵 임무는 조선만이 아니라 고려, 더 거슬러 올라가 남북국 시대 신라와 발해에도 존재했다. 물론 2천 년도 더 된 중국 진나라와 한나라 제도를 원용한 것이니, 동양의 권력 견제 기구의 뿌리가 이렇게 깊다.
서울 도봉구 방학동으로 가면 왕릉으로 치기에는 초라한 부부 쌍릉이 쓸쓸하게 권력의 무상함을 들려준다. 조선의 10대 임금 연산군과 부인 신씨의 묘다. 견제되지 않는 무한 권력의 폭주를 자행했던 연산군은 조선 최고 교육기관이자 유생들의 상소, 즉 언론 활동의 중심이던 성균관을 없애고 흥청 기생들을 불러 놀이터로 삼았다. 간언 기관 사간원은 폐지했다. 국법이 정한 왕권 견제 장치를 아예 없애 버린 한국 왕조사 유일한 폭군이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이원욱 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지난 3월 21일 종합 편성 채널 4개를 2개로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비판 언론을 없애겠다는 뜻이다. 사간원을 없앤 연산군과 일란성 쌍둥이다. 민주당은 4월 국회 '검수완박' 법안 통과를 12일 당론으로 정했다. 검찰 수사권을 없애 민주당 출신 정치인에 대한 비리 수사를 원천 봉쇄한다는 의도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과거 검찰에 일부 무리한 수사가 있었다고 수사권을 박탈하는 논리라면 국민 저항을 불러온 임대차 3법 등의 악법을 자행한 민주당의 입법권부터 박탈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오죽하면 친정권 성향의 김오수 검찰총장(조선시대 대사헌)마저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검수완박을 반대하고 나섰을까. 연산군의 말로는 처참했다. 11년 8개월 절대 권력을 휘둘렀지만, 서른 살에 죽었다. 세자를 비롯해 열 살도 안 된 아들 4명이 사약을 받아 아비의 죗값을 대신 치렀다. 사법 체계를 연산군 시절로 후퇴시키는 민주당에 연산군의 비극이 데자뷔로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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