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아침] 신약 개발의 마음을 읽는 자들

입력 2022-04-05 15:28:22 수정 2022-04-05 19:55:13

양진영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이사장

양진영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이사장
양진영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이사장

신약을 개발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흔히 신약 하나를 개발하려면 평균적으로 1조 원의 비용과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성공할 확률은 낮으면서 단계마다 확인해야 할 사항은 많고, 하나라도 빠뜨렸다간 결국 원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위암 치료제를 연구하려는 기업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사장은 '위' 연구 분야 석학을 채용하고 의욕적으로 위암을 정복해 보리라 도전을 결심한다.

그런데 채용된 '위 전문가'는 '간(독성) 전문가'를 뽑아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약물은 간에서 분해되면서 독성을 보이는 경우가 있어, 위암 세포를 치료할 능력을 가진 약물이 간을 먼저 죽여 버리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사장은 당황했지만 통 크게 적당한 전문 지식인도 채용해 볼 것이다. 하지만 곧바로 의약 합성, 단백질 구조, 분자설계, 유효성 평가, 생물리 분석 등 여러 전문가와 수백억 원대의 장비 구매를 요구하는 연구원들의 요청에 기절하고 만다.

이때쯤 사장의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저 두 명의 연봉으로 내가 아파트를 샀어야 했는데⋯.'

농담 같겠지만 이것은 현실이다. 신약 하나를 개발하기 위한 과정은 지난하고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들어간다. 신약이 등장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다행히 대한민국에는 케이메디허브(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가 있다.

신약 개발을 위한 험난한 과정 전체를 가이드해 주기도 하지만,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을 때 도움을 건네는 조력자 역할도 하고 있다. 위암 치료제를 개발하다 특정 분야에서 막힐 때면 독성 검사만 지원해 주기도 하고, 단백질 구조만 분석해 주기도 한다.

이러한 모든 지원은 '기술 서비스'라고 불리는데, 케이메디허브의 기술 서비스 몇 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케이메디허브는 단백질 확보부터 구조 결정까지, 단백질 구조를 분석해 주고 있다. 질병의 원인이 되는 단백질이 어떤 모양으로 접혀 있는지 분석해 치료제 개발 전략을 제시하려면 필수적인 과정이다.

인체 내에서 약물이 어떻게 흡수, 분배, 대사, 배출되는지 평가하는 약동학 평가와 유전독성, 심독성, 신경독성 등 안전성 평가도 지원하고 있다. 특히 외국과 달리 적은 수의 약물 평가도 가능하다.

임상을 위한 의약품 개발·제조·품질관리·인허가 지원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일반적 의약품 제조 위탁업체가 단순 생산만 지원(CMO)하는 데 비해 케이메디허브는 생산 공정, 임상, 상용화를 위한 개발까지 지원(CDMO)하고 있다. 의약품 생산을 지원하는 재단의 오아시스 사업은 서비스를 시작한 2015년 이래 770여 건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국가필수의약품 공급도 지원한다. 환자 수가 몇 명 없어서 약값이 비싸게 책정될 수밖에 없는 희귀 의약품이나 국가보건상 반드시 필요하나 시장 공급이 쉽지 않은 국가필수의약품 공급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케이메디허브의 기술 서비스는 신청 절차가 까다롭지 않고 가격도 저렴하다.

신약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리겠다는 국내 제약기업이 늘어나고 있지만, 실제 연구를 진행하다 보면 끝없는 투자에 막막할 때가 많다. 기업으로선 불확실한 개발 가능성에 수십억 원을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

신약 개발 과정은 길고 복잡하다. 정부가 케이메디허브를 만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난항이 많을 때 포기하지 말고 케이메디허브를 찾아주길 바란다.

제약시장을 선점했던 유럽을 제외하면 미국과 일본도 초기에는 정부가 막대한 투자를 계속해 의료 클러스터를 만들면서 기업을 성장시켰다.

그들이라고 왜 의료산업만 특별히 지원하느냐, 왜 특정 지역만 세금을 투자하느냐는 불만이 없었을까. 하지만 제약시장을 계속해서 유럽에 뺏길 수 없다는 목표로 한길을 걸었기에 미국은 화이자나 존슨앤존슨 같은 회사를 키울 수 있었고 유럽을 따라잡았다.

케이메디허브도 같은 길을 걸어갈 것이다.

신약의 길이 험난해 보인다고 해서 의료기기만 집중하자거나, 전국으로 분야별 세분화해서 나누자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연구개발은 관두고 제네릭(복제의약품)만 파고들자는 의견은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근 종영된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서는 마음까지 읽어내 범죄를 해결하는 프로파일러가 나왔다. 케이메디허브도 신약을 개발하려는 연구자들의 마음까지 세세히 읽어내 신약 개발의 속도를 높여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