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허진 씨 아버지 고 허촉, 어머니 고 윤말선 씨

입력 2022-04-07 12:22:47 수정 2022-04-12 13:59:34

아버지 기타 반주에 온식구가 설날 부른 노래 녹음 테이프 소중하게 간직

초등학교 1학년때 아버지가 카메라를 처음 사 오셔서 눈 오는 날 우리집 마당에서 어머니와 찍은 사진. 가족 제공.
초등학교 1학년때 아버지가 카메라를 처음 사 오셔서 눈 오는 날 우리집 마당에서 어머니와 찍은 사진. 가족 제공.

" 내 죽고 나면 주말에 어디 갈래?"

주말이면 특별한 일이 없으면 혼자 계신 어머니를 찾아갔던 나에게 어머니가 어느 날 하신 말이다.

4남2녀 중 다섯 째로 아들로는 막내인 나는 형들과 여동생이 모두 서울과 외국에 살고 있어서 대구에 사는 누나와 함께 어머니는 늘 마음속에 담고 살아야 했었다.

내가 제대를 하고 취직을 하던 해 아버지는 암으로 돌아가셨다. 발견 당시 이미 말기여서 어떻게 할 방법도 없이 아버지를 보내 드려야만 했다. 초등학교 때, 학교 대표 씨름 선수로 실내 체육관에서 시합을 하고 있는데, 멀리서 "진아"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 관중석을 돌아보니 언제 오셨는지 내가 시합하는 걸 보고 계셨다. 운동을 잘하는 아들을 꽤나 자랑스러워 하셨고 보고 싶어하셨다.

그 시대의 아버지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무척이나 자식들을 좋아하고 자랑스러워 하셨다. 명절에는 한 번씩 가족들이 모여 앉아 기타를 치면서 노래하며 놀던 기억이 난다. 어느 설날, 온 식구가 모여 아버지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녹음을 해서 당시 외교관으로 미국에 근무하던 둘째 형에게 보냈던 그 카세트 테이프는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언제까지나 옆에 계실 줄 알았던 아버지를 그렇게 갑자기 보내드리고, 남들 같이 용돈 한 번 드려 보지 못하고, 남들같이 차 한번 태워서 어디 놀러 가서 맛있는 것 한 번 사드려 보지도 못했던 미안한 마음에 흘렸던 눈물이 어느 조그마한 연못을 이루고도 남았을 듯하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많이 젊었을 때 두 분이 사이 좋은 모습으로 역시 눈오는 날 찍은 사진. 가족 제공.
지금의 내 나이보다 많이 젊었을 때 두 분이 사이 좋은 모습으로 역시 눈오는 날 찍은 사진. 가족 제공.

오죽했으면 어머니가 "죽은 사람은 생각하지 말아야 죽은 사람도 편하게 지낸다." 라고 하셨을까…. 그 때 나도 어느듯 주위 사람들이 한 사람씩 떠나는 모습을 보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내 선택은 아니었지만 부모님의 늙어가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되는 막내의 처지가 원망스러웠었다.

그 후 나는 주말이면 특별한 일이 없으면 꼭 혼자 계신 어머니를 찾았다..우리 6남매가 자랄 때 늘 자식들 많은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시고 했는데 모두 결혼해서 외국으로 서울로 떠나고 아버지마저 떠나시고, 말씀은 하지 않아도 혼자서 얼마나 외로울까 하는 생각에 주말마다 어머니를 찾아뵙는 건 나에겐 하나의 의무같이 되어 있었다.

가끔 우리 애들하고 같이 가는 날은 그렇게 좋아하시기도 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식들을 그렇게 보고 싶어했지만, 사람 많이 다니는 명절에는 위험하다며, 자식들 건강한 모습 보는 게 제일 큰 행복이라며 굳이 내려오지 말라고 하셨다. 어머니 손을 잡고 초등학교 입학 하던 날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오래 전 약 1년간 광주에 근무를 했었는데 광주로 떠나던 날, 당신 건강이 더 걱정이 되어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내 손에 봉투 하나 들려주며 "건강 조심해라"고 하던 그 날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차멀미가 심하고 몸이 좋지 않아 외출을 잘 하지 않았지만, 코스모스를 무척이나 좋아 하셔서 가을이면 늘 "지금 밖에는 코스모스가 많이 피었겠구나…" 라고 하셨다.

마지막 가시기 전 요양병원에서 몇 개월간 의식도 없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수액 주사에 의존하고 있을 때, 그 모습이 너무 힘들어 보여 더 이상 고생하지 말고 이제 떠나시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 모습이라도 좋으니 한 시간만이라도 보고 싶다.

지금 이렇게 보고 싶을 줄 알았으면 그 때 더 자주 찾아갔을 텐데. 그래도 막내아들이 보고 싶은지 두 분다 내가 보고 싶어 할 때마다 꿈에서 나를 찾아오신다.아버지가 그렇게 떠나시던 날도 어머니를 그렇게 마지막으로 보내던 날도 장맛비가 주룩 내렸다.

오늘 같이 내 마음속에 비가 내리는 날은 두 분이 더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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