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가다 수필가(2021 매일시니어문학상 대상 수상자)
친절함과 배려는 사람의 인품을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다. 자잘한 일상생활에도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타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사람 그는 진정한 인격자다.
미국 본토에 사는 아이들과 하와이에서 휴가를 보내기로 했다. 인천공항에서 호놀룰루까지는 무사히 도착했다. 거기에서부터 걱정이었다. 마우이섬으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를 타려면 다른 건물로 이동해야 했다.
공항 본 건물에서 좀 떨어진 곳을 물어물어 찾았다. 영어를 못 하니 손짓과 표정으로 소통하느라 진땀이 났다. 안내 데스크에 티켓을 보여주고 가르쳐주는 곳으로 찾아가면 'NO'라는 대답을 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긴 줄을 서 있다가 혹시나 하는 불안감으로 물어보면 또 아니라고 했다.
외국인은 생긴 모습이 엇비슷해서 국적이 달랐지만, 똑같이 보였다. 하필이면 내가 물어볼 적마다 미국 사람이 아니었다. 이방인끼리 서로 소통하려니 더 혼동이 생겼다. 그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친절은 넘쳤다. 긴 줄 끝에서 겨우 탑승구 앞에 다다르면, 승무원이 검지를 까딱거리면서 "NO"하고 밀어냈다.
탑승 시간은 다가오는데 불안했다. 자칫 국제 미아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궁지에 몰리면 두려움이 용기로 바뀌는 법이다. 내가 생각해도 기발했다. 사람이 많이 모인 곳으로 가서 무조건 "안녕하세요?"하고 큰소리를 냈다. 작전에 반응이 왔다. 한 남자가 몸을 뒤로 젖히면서 돌아보았다. '옳지, 한국 사람이구나!'
남자 옆에 가서 "반갑습니다, 도와주세요." 눈치 볼 것 없이 손을 덥석 잡았다. 손을 잡은 정도가 아니라 마구 비벼댔다. 스킨십은 친근함의 표시 아닌가. 나의 절박한 구조신호에 그가 응답했다.
전후 사정을 말하면서 티켓을 보여주었다. 겨우 탑승 10분을 남겨둔 시간이었다. 남자가 앞서고 나는 뒤에서 캐리어를 끌고 뜀박질을 했다. 2층 계단을 숨이 턱에 차도록 날아가듯이 달렸다. 겨우 탑승구 앞에 왔건만, 줄이 건물 바깥까지 꼬리를 물고 있었다. 남자는 자신도 시간이 촉박하다면서 나를 데려다주고 뒤돌아섰다.
돌아서는 남자의 팔을 잡고 붙들었다. 체면도 염치도 없었다. 나 들어갈 때까지 가지 말라고 팔을 잡으면서 애원했다. 마치 떠나가는 연인을 아쉬워 매달리듯이. 애절하게 붙들었기 때문인지 남자는 빙긋이 웃었다. 맨 앞줄로 그가 내 손목을 잡고 다가갔다. 탑승구 직원에게 사정을 얘기했는지 나를 먼저 들어가게 했다. 그리고는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세계 각국 사람들에게 "Sorry"를 연발했다. 손을 흔들며 자신의 갈 길로 달려가는 남자를 향해 두 팔을 올려 하트를 날렸다.
재수 좋은 여자와 운수 나쁜 남자의 만남이 가능했던 것은 말이 통해서였다. 나 때문에 어정거리다가 비행기는 제대로 타고 갔는지 몇 년이나 지났지만, 지금도 궁금하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어디서 무얼하면서 사는지….
누군가 어려움에 부딪쳐 도움을 청하면 팔 걷어붙이고 나설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10분간의 만남을 '우리'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다. 같은 민족이라는 그 이유로 우리는 잠시나마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행운이 늘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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