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무공훈장·보국훈장 천수장 받은 '전설의 노병' 옛 부대 방문이 마지막 선물
어느 봄날, 불혹의 나이가 된 내 눈에 언제나 건강하신 아버님의 모습이 몸무게가 빠지고 늙음이 보였다. 얼마나 사실까? 내가 자주 찾아뵙고 식사라도 매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에 매주 식사한 것이 어느덧 20년이 흘렀다.
부모님을 차에 태워 식사자리를 갈 때마다 부모님과 나누는 대화 내용이 변함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버지 뭐 드시고 싶어예?"라고 아버지께 여쭈면 "너 엄마 먹고 싶은 대로 가자."라고 답하시고, 다시 "어머니 뭐 드시고 싶어예?"라고 여쭈면 어머니는 "너 먹고 싶은 대로 가자"라고 답하신다. 식사가 끝나면 "오늘 밥 잘 먹었다. 고맙다."로 마무리되는 자리.
매주 메뉴를 바꿔서 정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래도 삼형제 중 편안한지 막내인 내 전화만 기다리셨다. 아마도 밥이 아니라 자식에 대한 그리움일거라고 미루어 짐작해 볼 뿐이다.
20년을 매주 부모님을 모시고 식사하며 산책하던 시간이 이만큼 흘렀는지 몰랐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면 집에 와서 차 한잔 하지만 날씨가 좋은 날에는 늘 하는 말이 있다.
"아버지 오늘은 날씨가 좋은데 산책하고 갈까예?"
"그럴까?"
"어디로 갈까예?"...
날씨 좋은 낮에는 진밭골을 자주 걸으셨고 밤에는 수성못을 함께 걸으셨다.
매년 6월 25일에는 앞산 충혼탑을 찾으셨다. 예전에 참석하던 행사지만 퇴역후에는 오후에 사람이 적은 시간에 모시고 가서 참배하셨다.
나이가 들면서 눈이 안좋으면 멀리 크게 보셨고 몸이 안좋으면 뛰지 못해도 천천히 산책을 즐기셨다. 함께 하는 동안 그런 생활이 일상화 되었다. 말씀도 적으셔서 그저 물끄러미 미소만 지으셨다. 어쩌면 그런 생활이 나도 모르게 나에게로 젖어들었다.
늘 곁에서 묵묵히 따라준 고마운 아내 그리고 사랑스런 아들 딸들이 일요일 슬며시 혼자 나가는 나를 이해나 하는지 "잘 다녀오세요" 라고 말한다.
2015년 광복 70주년 되던 해 가장 오랜동안 군생활을 하셨던 추억이 어린 강원도 양구에 초대받아 1박 2일 모시고 갔었다. 6·25 전쟁시에도, 월남전 참전 후에도 줄곧 강원도에서 근무하셔서 나의 어린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화랑무공훈장 2회, 보국훈장 천수장을 수훈하신 아버님의 부대 방문에 '영웅의 귀환' 환영 영상을 사진으로 제작하여 상영했는데 41년만의 귀환한 '전설의 노병'은 눈시울을 붉혔다. 평생 국가에 충성한 노병은 후배 장병들과 함께한 그 시간이 퇴역 후 가장 큰 선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5년후 제 생일날 다시 오자는 약속을 10일 앞두고 소천하셔서 그 방문이 아버지께 드리는 마지막 선물이 되었다. 당시 사단장인 이종섭 장군에게 아버님이 하신 '고맙습니다' 라는 감사의 인사를 다시 한번 전하고 싶다.
묘비에 '평생을 국가에 충성하신 강직한 참 군인이셨고 근검과 성실한 삶으로 한 점 부끄럼없이 살으셨던 '전설의 노병' 이제 조국의 품에 편히 잠드소서 사랑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라고 적혀있다. 오늘 한자를 더 첨부하고 싶다. 마지막에 '그립습니다' 라고….
평생을 함께한 군생활이 몸에 배어있어서인지 퇴역 후에도 투철한 국가관과 규칙적인 생활로 강건하게 사셨던 아버지는 어머님을 먼저 보내고는 '외롭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
나의 가족들이 더 자주 찾아뵈어도 사랑하는 어머니를 먼저 보낸 허무함이 그리움으로 싹트나 보다. 그래도 자식 입장에서 부모님 곁에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할 뿐이다.
홀로 1년 6개월 보내시다가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님 곁으로 가신지 오늘이 2년째 되는 날이다.
살아 생전에는 수성못과 진밭골을 자주 산책하셨는데 저수지 옆 벤치에 앉아 묵묵히 하늘 보고 멍하니 그리운 얼굴을 그리셨다. 이제는 하늘 보고 내가 그려본다. 부모님 얼굴을.
매주 일요일만 되면 물어 볼 부모님은 없지만 그래도 "오늘 밥 잘 먹었다. 고맙다" 라는 나의 아버지 너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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