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교수 시절 아픈 아이 돌보던 엄마의 다짐
인간에겐 '살아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책임
외면하고 싶어도 '오늘의 나'가 진짜 나
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환자의 사적인 얘기를 듣게도 된다. 때로는 넋두리이고, 때로는 도와 달라는 요청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그 때 안 그랬더라면.."이라는 환자들이 있다. 내가 그 때 술을 안 마셨더라면, 내가 그 때 바로 병원에 왔더라면. 무한반복되는 '내가 그 때 안 그랬더라면'으로 내 환자들은 끊임없이 후회하고, 고통받는다. 내가 사는 오늘에선 다리를 못 쓰게 되었고 며칠 사이 아이는 나빠졌다. 마주하기 힘든 현실이다. 그래서 내 환자들은 갑자기 모든 치료를 거부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부모가 반대하는 남자를 사랑해 도망쳐 아기를 낳았는데, 잠깐 경비실에 다녀온 사이 혼자 자고 있던 아기가 경련을 해서 뇌 손상이 왔던 보호자가 있었다. 지옥 끝까지라도 함께 하겠다던 남편은 집을 나가버렸고 아기 엄마는 진료 때마다 '내가 왜 그 남자를 만났을까요'라고 눈물을 흘리셨다. 당시 초보 교수였던 나는, '엄마가 나쁜 생각을 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으로 불안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표정으로 "저 이제 다르게 생각하려구요"라며 보호자가 한 얘기는, 내게도 지금까지 버팀목 같은 기억이 되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힘들어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종일 울었다고 했다. 안고 있던 아기를 눕히면서 리모컨이 눌렸는지 TV가 켜지면서 개그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이 나오더란다. 눈물이 흐르는 채 멍한 상태로 한동안 TV를 보고 있는데 한 20분 지났을까. 눈으로는 눈물을 흘리면서 입으로는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단다. 자신은 힘든데 저 사람들은 유치한 개그나 한다는 생각으로 평소 약간의 반감까지 있었는데 말이다. 그 순간 보호자의 머리를 내려친 생각은, '아, 나는 진짜 죽고 싶다고 느꼈지만 이 감정은 순식간에 바뀌기도 하는구나'였다고 했다. 그래서, 일단은 죽지 않고 살아보기로, 한번 버텨보기로 했다고. 나는 이미 결혼을 했고, 남편은 사라졌고, 아픈 아이의 엄마인 게 현실이지만 더 이상 철없는 부잣집 외동딸로 돌아갈 순 없다고. 그 얘기를 듣고 나는 울컥해서 "대단하세요"를 반복했던 것 같다. 그날 이후 그 보호자는 더 이상 '그 남자를 안 만났더라면'을 안했고, 과거의 터널에서 빠져나온 것 같았다. 나는 진심으로 그 보호자가 존경스러웠다. 포기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 힘든 현실을 마주하고 걸어가겠다는 어린 엄마의 다짐이 지금 생각해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라도 그 상황에선 쉽지 않았을 거다.
나도 살면서 때로 나의 보호자들처럼, '그 때 안 그랬더라면'을 떠올리기도 한다. 지금 마주하는 현실이 힘들어 사실은 불가능한 그런 가정으로 지금의 이 곤란함을 외면하고 싶어 한다. 그때마다 애써 떠올리는 건, 자신은 더 이상 철없는 외동딸이 아니라고, 한번 살아보겠다고 얘기하던 어린 엄마의 빛나는 얼굴이다. '그 때 안 그랬다면'은 현실의 나를 더 아프게 할 뿐, 외면하고 싶어도 '오늘의 나'가 진짜 나인 것이다. 당신의 아픔이 무엇이건, 인간에겐 살아야 한다는 것만큼 가장 큰 책임은 없다. 그러니 일단은 한번 부딪혀 보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힘들고 못생겨도 내가 나를 돕지 않으면 누가 날 도와주겠나. 10년 전의 그녀가 보고 싶다.
손수민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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