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K-팬데믹, 정치 방역의 말로(末路)

입력 2022-02-23 20:13:24 수정 2022-02-27 17:20:16

이상준 사회부장

이상준 사회부장
이상준 사회부장

23일 0시 기준 국내 코로나19 하루 확진자가 17만 명대로 치솟았다. 21일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확진자 수가 10만 명을 넘고 있지만 당초 예상 범위에 있다"고 말한 지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다.

한 달여 전 정부는 오미크론발 코로나19 대유행의 정점을 3만 명 선으로 전망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달 25일 "10만∼20만 명 (예측은) 아주 비관적인 사람들이 그렇게 보는 것"이라며 "정부와 같이 일하는 분들은 3만 명 정도에서 피크(정점)를 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고 했다.

영국, 프랑스, 미국 등에서 오미크론 정점 때까지 걸린 시간은 짧게는 3주, 길게는 5주 정도다. 한국의 유행 전개 속도는 상대적으로 길다. 오미크론 국내 검출률이 50%를 넘어선 건 지난달 셋째 주(1월 16∼22일). 한 달이 지났지만 다음 달 정점 때까지 최대 30만 명 안팎의 폭증세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국이 오미크론 우세종화 이후 정점 때까지 더 오랜 기간이 걸리는 배경은 실제 감염을 통해 '자연면역'을 획득한 인원이 적기 때문이다. '적은 확진자' '코로나 제로'에 집착한 K방역의 역설이다.

그동안 정부와 여당은 유럽과 미국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해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적다는 점을 K방역의 최대 성과로 꼽았다. 검사(Test)-추적(Trace)-치료(Treat)의 '3T' 시스템을 골자로 하는 K방역은 집단 감염이 아무리 빨리 확산해 봤자 그 속도에는 한계가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 속도보다 빠르게 조치를 취해 감염병 확산을 막는 것에 목적을 둔다.

그러나 하루 확진자가 1천 명대를 넘어서면서 K방역의 3T 시스템은 사실상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국가 자문 기구인 중앙임상위원회가 발생 억제 정책이 아닌 피해 완화 정책으로 넘어가자는 제안을 한 게 벌써 지난 2020년 6월의 일이다.

문제는 임상위의 제안이 씨도 먹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K방역에 매몰된 정부가 전문가 그룹 의견을 외면했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정부는 여전히 K방역에 매몰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달 7일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서 주재한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 모두발언에서도 "우리는 새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대응 방법과 체계를 보완하고 발전시켰고 세계에서 가장 모범으로 평가받는 K방역의 성과를 이뤘다"고 했다.

오미크론 시대, 확진자 발생 억제에 존재 의의를 둔 K방역을 논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우리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등 국민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K방역에 집착하는 사이, 주요 선진국들은 고위험군에 집중한 현실 방역을 고민했다.

그 차이는 너무나 크다. 하루 확진자가 4만 명 정도까지 줄어든 영국은 이미 1월 말부터 방역패스를 없앴다.

한 달 전 하루 확진자가 80만 명이 넘었던 미국도 22일엔 4만 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뉴욕주는 지난 10일부터 실내 마스크 의무화와 백신패스 정책을 해제했다.

K방역 2년. 팬데믹 초기 성공 모델은 진작에 유효기간이 지났다. K방역을 비판하는 민간 전문가들의 의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정부와 특정 정파의 성과를 과장하는 정치 홍보 수단만이 남았다.

선진국이 '자유의 날'을 앞둔 시점에 매주 확진자가 더블링 수준으로 폭증하는 K-팬데믹의 현실. 이것이 바로 과도한 국가 개입이 빚은 정치 방역의 말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