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만방래조(萬邦來朝)

입력 2022-02-08 20:30:30

김해용 논설실장
김해용 논설실장

올림픽 보는 것 자체가 이처럼 스트레스인 적도 드물다. 1, 2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우리나라 쇼트트랙 선수들이 황당하게 실격 판정을 받고 어부지리로 중국 선수들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온라인에서는 '눈 뜨고 코 베이징 동계올림픽'이라는 밈(유행어)까지 나돈다.

개회식에서 우리 선수단이 전체 91개 참가국 가운데 73번째로 입장한 것을 놓고도 말들이 많다. 이번 대회 개회식의 국가별 입장 순서는 국호 첫 글자의 간자체 한자 획수를 기준으로 삼았다. 우리나라는 국호가 대한민국(大韓民國)이니 당연히 '대'(大)의 획수 기준을 따라야 했다. 하지만 올림픽 조직위는 '한국'(韓國)의 첫 글자 획수를 기준으로 삼았다.

이는 조직위가 결정한 것이겠지만 개최국의 입김이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 국제 스포츠 행사에 약칭을 남의 나라 공식명으로 쓰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중국으로서는 안 그래도 옛날에 속국이었다는 둥 자신들이 소국 취급하는 나라 이름에 큰 대(大)자가 들어 있는 것이 탐탁지 않았던 것일까.

정상급 외빈(外賓)을 초청해 연 연회도 구설에 올랐다. 용의 형상을 띤 물이 휘감아 돌도록 꾸며진 거대 식탁을 사이에 두고 시진핑 주석과 중국 측 인사들이 나란히 앉고 외빈 20여 명은 맞은편에 앉도록 자리를 배치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당나라 시절 주변국의 조공 행렬을 뜻하는 만방래조(萬邦來朝)를 구현한 것'이란 해석까지 나왔다.

근대 이전의 중국은 중화주의를 표방했지만 요즘처럼 심하지는 않았다. 천자국을 자처하는 만큼 황제국으로서의 체면도 신경 썼다. 조선 등 주변 나라들이 조공을 보내오면 그 공물의 몇 배나 되는 값어치의 하사품을 줬다. 조공국들의 군사적 안전과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법으로 중국은 광대한 영토의 제국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산화 이후 유교적 질서가 사라지면서 중화주의는 주변국에 대한 고압적이고 일방적인 국수주의가 됐다. 올림픽이라는 큰 잔치판을 벌여 놓고 손님들을 대하는 중국의 태도에서 극단적 국수주의의 단면을 발견한다. 대국이라고 자칭하려면 그에 걸맞은 행동과 모범을 보여야 한다. 지금처럼 행동하다가는 어렵사리 올림픽을 유치해 놓고 반중 정서만 세계적으로 더 키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