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정치와 무속

입력 2022-01-19 20:02:37

김해용 논설실장
김해용 논설실장

한 명상 수련 단체의 창시자 A씨를 1990년대 중반에 만난 적이 있다. 추종자들은 A씨가 현상계와 초월계의 이치를 다 꿰뚫는 현인이자 이 시대의 진정한 도인이라고 추앙했다. A씨는 무엇이든 물으면 하늘이 대신해 자신에게 답을 내려준다고 했다. 즉문즉설이 이어졌고 내용 중 일부는 책으로도 나왔다.

이런 질문도 있었다. "성서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의 진실은 무엇입니까?" A씨의 답변은 "경기도 어느 야산에 암매장됐다"였다. 주지하다시피 개구리소년들의 시신은 2002년 9월 성서 와룡산에서 발견됐다. A씨의 대답은 오류로 판명 난 셈이다.

영적으로 깨달으면 무엇이든 다 알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사람들에게 있다. 맹신은 혹세무민의 토양이다. 산 속에서 각고의 수행 끝에 진리를 깨쳤다며 유체이탈을 한다느니, 삼계(三界)를 자유로이 넘나든다느니 믿기 힘든 말을 해대는 사람을 스승으로 떠받드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은 미지에 대한 원초적 불안감을 가진다. 누군가에게 의지함으로써 위안을 얻는다. 그렇게 인지부조화에 빠진다. 무속인들에게 대소사를 의논하는 것 또한 유사한 심리 기제라 할 수 있다. 내가 모르는 미래사를 무속인은 알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과연 그럴까.

이와 관련해서는 고 서정범 경희대 명예교수의 견해를 참고할 만하다. 45년 동안 전국 무속인 3천 명을 인터뷰한 그는 "귀신은 없으며 귀신 체험은 심리적 현상"이라고 결론지었다. 점을 치는 것은 상대방에게 입력된 정보를 읽어내는 일종의 초능력이라고 그는 판단했다. 내가 아는 과거는 잘 맞히지만 나도 모르는 미래는 무속인들도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무속인 중 60%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을 지녔다고 그는 분석했다.

장삼이사들이 점집을 찾는 것은 풍속이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인 또는 고위 공직자들이 나랏일을 무속인들과 의논한다면 차원이 다른 문제다. 대선 후보의 선거 캠프에 무속인이 깊숙이 개입돼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걱정스러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 양자물리학, 뇌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화성에 사람을 보내겠다는 시대에 이런 퇴행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