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둘로 갈라 논 '포항 수성사격장 권익위 중재안'

입력 2022-01-19 16:24:20 수정 2022-01-19 21:36:42

장기면 마을 대표회의 실랑이·고성…찬반 나눠 갈등 더 깊어져
서로 의견 극명하게 갈리면서 2시간 진행에도 조율없이 끝나
‘권익위가 협의내용 수정 거부했다’ 주민들 서로 책임 추궁에 들썩
중재안 찬성·반대파 갈려 내홍…포항시 ‘중재자 역할하겠다’ 설득

19일 포항시 남구 장기면에서 열린 33개 마을이장 회의에서 수성사격장에 대한 의견이 오가고 있다. 신동우 기자
19일 포항시 남구 장기면에서 열린 33개 마을이장 회의에서 수성사격장에 대한 의견이 오가고 있다. 신동우 기자

"똘똘 뭉쳐 사격훈련 피해를 막아야 되는데 이렇게 우리끼리 싸워서 어쩌나요."

주한미군 아팟치 사격훈련으로 촉발된 경북 포항 수성사격장 갈등(매일신문 1월 13일 보도)을 해결하기 위해 국민권익위원회가 분쟁 조정을 진행 중이지만, 이들이 내세운 중재안에 오히려 주민 간의 갈등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19일 수성사격장이 있는 포항시 남구 장기면에서는 전체 33개 마을 대표들이 모인 이장회의가 열렸다.

이날 포항시 측은 최근 수성사격장 협의체 구성에서 포항시가 제외되고 있는 점을 거론하며, 민·관·군협의체 구성과 향후 갈등 조정에 관한 포항시의 역할을 주민들에게 설득했다.

회의에 앞서 정종영 포항시 장기면장은 시에서 제작한 홍보 팸플릿을 나눠주며 "지금은 수성사격장을 둘러싼 우리의 미래를 결정지을 중요한 시기이다. 쓸데없는 오해와 대립으로 제발 쪽박만은 깨지 말자"면서 "포항시는 100년 대계를 목표로 정책적 도움이 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곧바로 돌아온 주민들의 대답은 냉담했다. 이번 사태가 진행되며 쌓인 포항시에 대한 불신감은 물론, 권익위 중재안에 찬성하는 주민들과 반대하는 주민들 간의 승강이로 회의 내내 고성이 오고갔을 정도다.

한 주민은 "포항시는 '수성사격장이 폐쇄·이전돼야 한다'고 했는데 이것이 확고한 의지냐"면서 "권익위에서 처음부터 '사격장 운영은 꼭 해야 한다'고 했다. 중재안을 통해 해결 방법을 찾지 않고 포항시가 현실성 없는 대안으로 주민들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러한 주장이 제기되자 반대 측 주민은 "일부 주민 대표단이 상식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회의를 열어 권익위의 중재안을 수용했다. 주민 대부분의 의견이라면 따르겠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상처만 남는다"며 "키는 우리가 쥐고 있는데 왜 이렇게 권익위와 국방부의 말을 따르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이 과정에서 지난해 11월 28일 주민 대표단 일부가 권익위의 중재안 수용 여부에 대한 회신 중 '원안(권익위 중재안) 그대로 수용한다'는 공문을 보낸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됐다.

당일 저녁 다른 주민들의 반대로 해당 공문 내용 수정을 요청했으나, 권익위 측에서 "지금은 수정이 조금 어렵다. 별로 중요한 내용이 아니니 차후 회의에서 다시 논의하면 된다"며 거부했다고 주민들은 주장했다.

반면, 권익위는 다음날 '수성사격장 중재안을 주민들이 수용하며 갈등 해결에 실마리가 풀렸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해 반대 측 주민들이 긴급 기자회견을 여는 등 반발을 사기도 했다.

당시 권익위는 수성사격장 중재안으로 ▷민·관·군 협의체 구성 ▷인근 마을 주민 집단 이주 ▷마을별 지원사업 ▷국방부 사격훈련 보장 등을 제시했다.

약 1시간으로 예정된 회의 일정은 이처럼 찬성·반대파의 의견이 극명히 갈리며 2시간이 가깝게 진행됐다. 그러나 별다른 의견 조율을 보이지 못한 채 우선 마무리됐다.

김복조 포항시 남구청장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의견으로 피해에 대응해야 하는데 이처럼 사분오열된 것을 보면 과연 권익위의 조정 절차가 맞는지 안타깝다"며 "중심을 잡고 이번 사태가 해결될 수 있도록 포항시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 달라"고 했다.

한편, 수성사격장은 지난 2019년 4월 주민 사전 협의 없이 갑자기 경기 포천시에서 시행되던 주한미군 아팟치헬기 사격훈련이 옮겨 오며 갈등이 촉발됐고, 현재 국민권익위의 분쟁 조정 절차가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