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우리는 얼마나 다른가

입력 2022-01-19 10:10:23

이근자 소설가
이근자 소설가

겨울에 노천탕에 간 적이 있었다. 호숫가에 있는 탕이었다. 그곳에서는 설산과 황량한 들판, 녹색호수를 가르는 검회색 경계까지 뚜렷이 보였다. 풍경에 감탄을 하면서, 수영복을 입은 열 명의 사람이, 거의 비슷한 시간에 탕 안에 들어가 목만 내놓고 앉았다. 할머니부터 젊은 아가씨들과 내 친구도 함께.

나는 장딴지까지 잠기는 발판에 선 채 너무 뜨겁다고 생각해, 들어갈까 말까 망설였다. 난간에 앉았다가 결국 겨울 대기에 잠긴 몸이 너무 추워서 다른 사람들처럼 물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탕에 꽂힌 온도계는 섭씨 40도를 가리켰다. 온도계가 없을 때 40도의 물을 재는 방법은 팔꿈치를 담가보아 따스하게 느끼는 온도였고, 이는 아기를 목욕시키기에 적당하다는 수치였다. 보드랍고 연한 아기의 살이 견디는 온도였는데. 아무리 기억을 되돌려 봐도 내가 몸을 담근 시간이 20분을 넘기지 않았을 텐데, 밖으로 나와서 보니 내 몸은 온통 붉었다. 아주 빨갛지는 않고 연하게 붉었다.

그 후 서너 시간 동안 나는 온몸을 덜덜 떨었다. 숟가락이 흔들려 음식을 흘렸고 턱이 떨려 말을 하기도 힘들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때 나는 아마 1도보다는 조금 낮은 화상을 전신에 입은 상태였던 것 같다. 얼굴만 빼고. 평소에도 나는 뜨거운 것을 잘 견디지 못했다. 먹는 것도 그랬고 손으로 잡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시어머니가 그것도 뜨겁냐며 냄비 같은 것을 대신 옮겨주었으니.

노천탕에서 돌아온 후 나와 친구는 서로의 살갗이 느끼는 온도 차이에 대해 실험을 하기로 했다. 전기판넬이 깔린 방에서였다. 겨울이었고 옷을 입은 채였다. 우선 방바닥의 온도를 30도로 맞춰놓고 둘이 그곳에 누웠다. 1시간 정도 누웠다가 등의 피부와 느끼는 감각을 서로 확인했다. 그렇게 5도씩 온도를 높여가며 전기판넬의 최고 온도인 40도에 이르렀다. 친구는 최고 온도에서만 뜨겁다고 뒤척인 반면 나는 30도가 적당했다. 40도에서는 등이 온통 빨갰고 한 곳엔 새끼손톱보다 작았지만 물집까지 잡혔다.

젊을 적에 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달리기 시작하면 끝까지 달릴 수 있게 되는 줄 알았다. 아니다. 사실 할 수 없는 게 많다는 것을 알기는 했다. 나는 남보다 잠이 많았고, 기억력이 나빴으며, 생마늘이나 생파로 만든 음식을 잘 먹지 못했다. 하지만 막연하게도 나는 계속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작은 차이를 무시했던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그 실험을 한 후에 나는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깔끔하게 수긍하고 포기하는 것이 좀 쉬워졌다. 주변 사람에게 강요를 하던 것도 좀 줄일 수 있었다. 사람이 얼마나 유한한 존재인지를, 얼굴 생김새만큼이나 서로 다른 존재라는 걸 알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달라도 너무나 다른 70억 명의 사람이 제각기 서로를 이해하려는 작은 손짓들을 더 눈여겨보게 되었다. 그렇다고 지금 나는 뭘 제대로 아는가. 결단코 아니다. 그냥 내 속도대로, 천천히 쉬지 않고 나아가려 노력할 뿐이다.